제 5화: 내가(남자가) 성형외과를 찾을 줄이야
나는 Los Angeles에서 살고 있다. 이곳은 사막이나 다름없어 연중 내내 고온건조한 날씨다. 스프링쿨러를 이용하여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지 않으면 나무도, 잔뒤도 금방 벌겋게 타 죽어 버린다. 여름철에는 햇볕이 어찌나 강한지 자동차를 옥외 주차장에 2-3시간만 놔두어도 운전대를 만질 수 없을 만큼 뜨겁다. 이런 열대의 지역에서 직장에 출퇴근하느라 180킬로미터를 매일 3시간씩 십여 년 동안 운전을 해야 했다. 이제는 얼굴과 손등이 햇볕에 그을려 구릿빛이 나고 검버섯은 마치 갈색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하다. 거기에다 나이를 먹었는지 눈꺼풀마저 처져 있으니 이 모든 게 삶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한때는 어머니께서 내손을 어루만지며 "내 새끼 손은 선비 손 같이 참으로 곱기도 하여라"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 앞에 서서 손으로 눈꺼풀도 치겨 올려보고, 이마에 굵은 주름도 펴보고, 손등에 검버섯을 쓰다듬으며 "아직까지는 괜찮지?" 하고 거울 속에 그이에게 묻곤 한다. 주위에서 눈꺼풀 성형과 손등 피부관리를 해보라고 권한다. 그러면 이게 나다운 것이라며 자연산으로 이대로 늙는게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고 항변하곤 했다.
지금은 한국에 나와 살고 있다. 2-3년 머무를 계획이다. 지하철, 버스, 도로에서 마주친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나이에 관계없이, 남녀 불문하고 햇빛에 그을린 사람도 없고 얼굴은 잡티하나 없는 고운 피부들이다. 평소에는 피부와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살다가 이곳에 오니 내가 이방인이라는 티가 난다. 누가 봐도 여기 사람이 아니다. 와이프가 나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자기야, 당신 피부와 검버섯이 여기와서보니 너무 흉하다. 사람들 얼굴을 자세히 쳐다봐. 피부들이 깨끗하여 보기에도 좋지 않아? 미용을 떠나서 남들에게 혐오감을 주지는 말아야지. 고집부리지 말고 눈꺼풀과 검버섯 치료를 해보자. 이곳에서는 비용이 미국에 비교하면 1/3 수준이래. 비행기값을 들여 일부러 한국까지 찾아와 피부관리를 하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지.
비용이 1/3 수준이라는 데에 귀가 솔깃했다. 아니 설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불편하여 동네 안과를 찾았다. 엘리베이터 안에 커다란 사진 두 장이 붙어 있었다. 하나는 눈꺼풀 수술 전, 다른 하나는 수술후 였다. 내가 봐도 수술 후 사진이 더 똘똘해 보이고 생기 있어 보였다. 와이프가 기회를 놓칠세라
이 사진 좀 봐 당신 보기에도 다르지? 눈꺼풀을 올리고 나면 시야가 넓어진데. 한국이나 미국에서 눈꺼풀 수술이 의료보험으로 커버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야.
엘리베이터에 사진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는 와이프. 한두 번 이어야지 자주 듣다 보니 이제는 "내가 너무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선수를 링 위에 올려놓고 잽
펀치를 자주 날리면 나중에는 효과가 있더던데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
두 번째는 무 응답,
세 번째는 그런가?
네 번째는 그럴 수도 있겠다.
와이프가 오늘은 성형외과 선생님과 상담이 있어 병원에 잠깐 들르려 하니 함께 갔다가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고 한다. 혹여 나를 꼬드겨 볼 속샘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아니냐고 따져 물었더니 걱정 말란다. 당신이 싫다는 것을 내가 굳이 설득할 생각은 없단다.
아내와 상담을 마치고 나온 의사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더니만
안녕하세요? 우리 사장님은 검버섯이 심하시네요? 눈꺼풀도 많이 쳐졌고요. 이런 검버섯은 미용을 떠나 나중에는 피부함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어 예방 차원에서 치료를 권장합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아무런 항변도 못하고 버벅거리면서 "그래요? 나는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요?" 와이프말에는 당당하고 단호했던 사람이 의사 선생님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진다. 병원에서 가운을 입고 있는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는 무게감이 달랐다. 그동안 와이프도 검버섯이 피부암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몇 번이나 경고를 했으나 이에 대해 콧방귀도 안 뀌던 사람이 선생님 말씀에는 "이대로도 괜찮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게 와이프가 계획했던 덫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와이프 제의에 병원을 따라나섰다가 엉겁결에 눈꺼풀과 검버섯 치료를 받기로 예약을 해놓고 병원문을 나서고 있다. 남들이 얼굴에 성형수술을 했다고 하면 비웃기라도 했던 사람이 성형외과 병원을 찾을 줄이야.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더니 이를 두고 하는 듯싶다.
마침내 병원을 찾는 날 행여 누가 볼세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눈꺼풀 수술은 통증 없이 쉽게 끝났다. 이어 검버섯 제거 수술을 하는데 살을 태우는 냄새가 너무 역겹고 통증이 심했다. 선생님께 고통스럽다고 했더니 진통제 주사를 주셨다. 5분, 10분이 지나도 통증은 차도가 없다.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더니 이번에는 혈관주사로 진통제를 주입하셨다. 그래도 별반 차도가 없다. 신장결석을 4번이나 생식기로 빼냈던 고통과 별반 차이가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후회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인 줄 알았더라면 완강히 거절할걸. 속았다는 생각에 와이프가 얄밉기까지 했다.
작업을 마친고 난 의사 선생님이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만 "내 이 병원에서 20년 됐습니다만 이럴게 검버섯이 많은 손은 처음입니다. 혹여 야외에서 힘든 일을 하셨나 봐요?" 표현을 젊잖게 했을 뿐이지 그동안 막노동일을 하지는 않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순간 나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어졌다. "그래요 그동안 길바닥에서 고생을 많이 했지요, 열대의 사막에 살면서 매일 3시간씩 고속도로를 달렸으니 어이 말로 위로가 되겠어요?
수술 후 첫 일주일은 거울 앞에 서있는 내 모습이 너무 미웠다. 눈은 퉁퉁부어있고 얼굴과 손등은 다 헤집어 놨으니 말이다. 그러나 일주일 후 눈꺼풀에 실을 제거한날 와이프가 나를 쳐다보더니만 "자기야 속눈썹이 세상 밖으로 나왔어. 아유 신기하기도 해라. 내가 뭐랬어. 당신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거울 앞에 서있는 횟수가 많아진다. 아침, 저녁 세안후 거울을 들여다본 게 전부였는데 이제는 얼굴에 얼음팩과 온열팩을 마치고 나서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대화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지?
병원에서 치료받느라 고생 많았는데 상응하는 보상은 받아야지?
예뻐진다는 게 쉬운 게 아니야 지극정성을 쏱아야 해!
병원을 다녀온 지 두 달이 다됐다. 손등과 얼굴을 처다볼때마다 소녀 같은 감성들이 꿈틀 거리기 시작한다.
"그것 괜찮네, 사람들이 돈을 들여 피부와 얼굴을 관리하는 이유가 있구먼."
초롱초롱하고 말똥말똥한 눈매,
눈꺼풀 수술후 갑자기 사라진 이마 주름살,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사라지는 검버섯 딱지들.
이제는 눈밑에 눈물주머니를 제거하지 못한 게 "옥에 티"라고 한 술 더 뜨고 있으니 내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가고 있다.
대학 후배와 통화 중 성형외과를 다녀왔다고 자랑했더니 화상통화로 얼굴을 보여 달란다.
와우, 얼굴이 완전히 달라 보이네요. 10년은 더 젊어 보여요. 저희 모임에 멤버로 초대하고 싶어요.
나도 내가 이렇게 잘생긴 인물인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단다. 내가 봐도 이제 한 인물 한다
나도 그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야겠어요. 병원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