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화: 인증제도가 주는 소외감
내 친구는 아들이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가 마음에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요즘 세상에 자식들의 결혼 상대를 놓고 부모가 맘에 드네 안 드네 하고 질척 거리는 게 새삼스러운 일이 돼 버렸다. 하지만 친구는 그래도 이거는 아니다 싶었던 모양이다. 이유는 여자가 술집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키 크고 아름다운 겉모양에 우리 아들이 그녀를 좋아하게 됐구나 생각하고 시간이 지나면 정신을 차리겠지 했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는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고 이제는 결혼을 하고 싶다고 엄마 아빠를 설득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술집여자라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아들을 여러모로 설득도 해봤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 간극만 깊어져 가고 있다.
친구는 아들에게
“나는 대학 나온 여자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어엿한 직장여성을 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고등교육만 마쳤으면 족하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있는 평범한 가정이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더니 아들이
“아빠, 그런 조건이라면 나 결혼할 수 없어".
아빠가 말하는 그런 평범한 가족 찾기란 싶지 않다고 아들은 항변했다.
나도 사람들이 모두 평범하게 사는 줄만 알았다. 친구 아들 얘기를 듣고 나서 내 주위를 살펴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별거한 부부, 병고와 사고로 사별한 부부, 이혼한 부부가 차고 넘친다. 내가 평범하니 모두들 다 평범하게 사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이곳 사람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살아보려고 하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남들은 인터넷으로 열차 예매도하고, 쿠팡멤버십에 가입하여 원하는 물건도 배달받고, 여행사에 예약하여 여행도 다닌다. 그러나 나는 인증이 안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인증이 안된 이유는 2년간 한시적으로 머무르고 있다가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더니 조카가 자기 명의로 등록돼 있는 안 쓰던 전화기를 줬다. 처음에는 내 조카만이 이런 호의를 베풀 수 있다고 감사했다. 그러나 조금씩 적응해 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인터넷을 사용하여 편리한 생활을 누려 보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열차표 예매를 하려고 했으나 인증이 안된다는 이유로 실패했다. 지방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서울역에 나가 표를 예매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구경삼아 서울역에 다녀오곤 했으나 횟수가 잦다 보니 이제는 짜증이 난다. 남들은 다 할 수 있는데 나만이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극명하게 다르다. 외국에서는 돈만 주면 표를 살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인증을 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표를 산다는 것은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돈으로 자리를 산다는 의미다. 여기에 인증을 요구하고 있으니 중국여행을 연상시킨다. 중국에는 열차표를 구매하면 표가 없다. 대신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증으로 열차의 객석을 인증하는 제도다.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동선을 추적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인증제도가 혹여 중국의 동선을 파악하는 시스템의 일환이 아닌가 의심도 해본다.
우리 옆집은 생활용품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다음날 배달되는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데 나는 인증이 안된다는 이유로 G마트나 쿠팡멤버십에 가입할 수가 없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매장에 직접 나가 물건을 사서 들고 와야 한다. 차도 없어 매장에서 물건을 사서 양손에 들고 길거리를 걷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 평범하게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는 한국생활이다.
내가 살았던 나라이지만 관공서 문을 열기 위해서도 본인 인증이 필요했고 인증이 안돼 문밖에서 서성이다 돌아 나오는 컴퓨터 스크린 버튼을 누를 때마다 문전박대를 밭는 기분이다. 아직도 모국어를 쓰고, 조국에 산천을 기억하고, 계절의 변화를 몸이 먼저 알아채는데도 인증을 요구하는 화면 앞에선 괜스레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그러나 누구도 나를 배척한 적이 없기에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세상 어떤 인증 절차도 어떤 서류도 내가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온 시간들보다 나를 더 잘 증명하지 못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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