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도 배도 아닌 것이

제 8화: 관찰자로 본 내 조국

by 문 내열

은퇴하고 나서 조국으로 돌아와 내가 본 대한민국은 부러움, 경이, 실망, 걱정 등으로 나를 혼돈케 만들었다.


강남에서 친구와 점심을 먹고 나서 커피숍을 찾았다. 압구정 전철역 근처였다. 평일인데도 커피숍에 빈자리가 없어 이곳저곳을 헤매다 세 번째 찾아간 곳에서 옹색한 자리를 겨우 잡았다. 손님들은 아주머니와 젊은 남녀들이었다. 주위에 손님들을 둘러보며 "대한민국이 참으로 살기 좋은 나라구나" 했다. 집안에 가장 한 사람만 열심히 일해도 나머지 모든 식구가 이렇게도 행복하게 호강하며 살 수 있으니 말이다.


미국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족 모두가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바삐 들 살고 있다. 집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은퇴자들 뿐이다. 모두들 출근하고, 애들이 등원한 후의 마을 대낮 풍경은 적막함 뿐이다. 남편 혼자 벌어서는 생활이 안되고 설령 남편이 돈을 잘 번다 하여도 부인들은 자기 커리어 관리를 위해 집에 눌러앉아 하우스키퍼가 되기를 거부한다. 젊은이들은 분초를 쪼개어 학교공부를 해야 하고 파트타임으로 돈을 벌어 대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겨우 꽃다운 나이 18세 인데도 공부에, 일에 지쳐서 밤늦게 귀가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이들에게 낭만은 사치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게다.


오늘 커피숍에서 본 많은 젊은 남녀들은 직장인인데 월차로 하루 쉬는 걸까? 아니면 돈을 안 벌어도 먹고사는데 걱정이 없는 금수저들일까?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 가는 커피숍마다 젊은이들이 북적거리니 궁금하고 놀랄 뿐이다. 가족 어느 누구도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쫏겨 다른 가족들을 배려할만한 여유가 없이 살고 있는 미국인들에 비하면 내가 오늘 커피숍에서 본 아주머니들과 젊은 남녀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커피숍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몇 시간씩 담소를 나누고 있는 아주머니들의 대화내용이 들린다. 엿듣고 싶어서 들은 것은 아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아주머니들의 얘기가 나에게는 흥미로웠다. 자녀들 결혼에 관한 얘기들이다.


“우리 딸이 결혼하겠다는 남자는 얼굴과 키는 별로인데 반해 남자 집안이 돈이 많은가 봐. 지가 좋다는데 별수 있겠어? 그런데 딸이 시집에 꿀리고 싶지 않다면서 3억 정도 준비를 해주라고 하네.” 나는 한국의 결혼이 남녀 간의 사랑 뒤에 자존심 대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이런 얘기를 엿듣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남자 친구 또는 여자 친구의 부모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자녀들에게 물었다가 "엄마, 아빠는 왜 그런 게 궁금해?"하고 자식들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한다. 오로지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


“우리 딸은 좋은 직장을 잡아서 결혼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써도 될 것 같아. 그런데 아들이 걱정이야. 말은 안 해도 결혼하게 되면 은근히 부모님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 두놈다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느라 나로서는 할 만큼 해줬는데도.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지켜봐야지요. 나도 이번에 이사하느라 대출을 3억이나 받았는데 노후는 언제 준비할 수 있을는지?” 자녀들 결혼을 앞둔 부모면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둔 부모일진대 은행융자를 3억이나 받아놓고 아들이 결혼하면 모른 체 할 수 없다니 도대체 부모의 책임은 어디까지 인지? 당신들 앞가림도 못하면서 아들이 결혼하면 도움을 줄 수밖에 없을 거라는 부모의 이 끝없는 사랑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절제되지 않는 부모의 자식사랑이 혹여 우리를 동물적인 본능으로 매도 하지는 않을련지?


미국에서 젊은이들이 돈을 많이 벌어 40대 초에 조기은퇴한 사람들은 보았어도 금수저들을 본 적은 없다. 부모가 돈이 많아도 학자금 지원을 받은 정도가 전부다. 그 후부터는 나 홀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칠십 대 초반의 아저씨가 내게 다가오더니 나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도 인생을 살만큼 사신 분 같은데 나는 요즈음 산다는 게 참으로 허무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왜 그러세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우리 아들이 나보고 언제 죽을 거냐고 묻네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들이 아버지더러 언제 죽을 거냐고 묻다니요?

그래야 아버지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 이랍니다.


전라도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구청 공무원이 됐단다. 평생 동안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던 죄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은퇴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자식이 부모의 재산을 넘나 보며 던진 한마디는 너무 끔찍했다.


친구는 자기가 살던 집을 큰 아들에게 물려주고 둘째에게는 세간살이라도 장만하여 어서 빨리 기반을 잡으라고 현금 3억 원을 줬다. 아들은 그 길로 나가 머세데스벤츠를 한대 빼서 타고 다닌다고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친구는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어럽게 대학을 마쳤다. 은행 지점장도 했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여 지금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아들들을 적극 돕고 싶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가난의 대물림을 해주고 싶지 않은 부모의 심정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부모가 자식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생선을 잡아서 갖다 바칠 셈인가.


처마밑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재비들도 때가 되면 어미가 먹이를 잡아다 주지 않는다. 스스로 날개를 펴 하늘을 비행하도록 유도하고 새끼들 또한 둥지를 박차고 나가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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