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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Nov 03. 2021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생을 마감하고 저 세상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서 지켜보는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나누는 대화를 유언이라 한다.  이 유언은 생을 정리한 집약된 마지막 한 마디 일진대 동양과 서양이 다를 수 있을까?. 또 시대의 변천에 따라 내용들이 달라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은 이 에게는 생뚱맞은 얘기이고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인생에서 다운힐(내리막길)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냥 흘려버리지 않을 것이고 환갑을 넘긴 인생 후반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평생을 술과 여자로 방탕하다가 저 세상으로 가는 남편은 임종을 지켜보는 부인에게

“ 여보, 당신을 너무 힘들게 해서 미안하오 다음 세상에서는 좋은 남자를 만나구려”


평생 동안 술독에 빠져 살아온 남편이 못 마땅해

“ 귀신은 무엇하느라 저 인간을 안 잡아 가는지… 조상님들은 참으로 무심도 하시구려”


그러나 부인은 그동안의 투정이 현실로 다가오자 남편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철구 아버지, 철구 아버지….”


그다음 말이 없다. 만감이 교차한 것이다. 맞선을 봤을 때 훤칠한 키에 빼어난 인물에 이 아낙 내의 가슴이 심쿵 거려 숨쉬기가 곤란했던 순간들, 결혼할 날을 잡아놓고 하루하루가 어찌나 길었던지,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는 가정도 팽개치고 망나니처럼 살더니만 이젠 먼저 간다면서 저 세상에서는 좋은 남자 만나라고?


여기에 홀로 남은 부인을 외롭지 않게 하고 이 세상을 달리 한 마국 할아버지 얘기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는 감동적인 것을 넘어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미국에서는 매년 자동차 등록 갱신을 해야 하는데 6년 이상되는 차량은 매연 점검에서 합격을 해야만 등록 갱신이 가능하다. 어느 날 하루는 팔십이 넘은 백인 할머니께서 20년 된 낡은 픽업트럭을  끌고 매연 점검을 하러 왔다. 젊잖은 할머니께서 이런 낡은 차를 운전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물었다.


“ 당신이 이 트럭을 직접 운전하시나요?”

“ 아니요 저 트럭이 우리 영감님이에요”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말이


“ Honey, i don’t care about you. Take care of my truck 나는 당신이 어떻게 살던 개의치 않아요. 내 트럭을 잘 부탁해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굴리던 트럭을 잘 관리하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매년 등록 갱신도 해야 하고 2년에 한 번씩 자동차 매연 점검도  받아야만 했다.


오늘도 할머니는 할아버지 트럭애 대한 등록 갱신 통보서를 받아 들고서 할아버지와 대화를 한다.

“여보 오늘 DMV (차량 등록국) 에 가서 당신이 일 년 더 사시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등록을 마치고  왔소”


며칠 만에 세차도 하면서

 “ 영감, 오늘 때 빼고 광을 내니 아직 까지는 제법이요”


매연 점검을 위해 우리 비지네스를 향해 집을 나서면서

“ 영감, 오늘은 당신 건강진단을 받으러 갑니다. 겉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별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네요”

 

내가 서명하여 준 매연 점검 합격증을 서랍 속에 넣으면서

“ 영감, 당신 건강 하다내요.  앞으로 이년(2 years) 간은  의사 선생님을 찾아뵐 일이 없을 것이요. 다 내 덕인 줄 아세요. 축하해요”

  

영감이 보고 싶거나 할멈의 마음이 울적하면 트럭으로 가서 자동차 앞유리에다 크레용으로 스마일 얼굴을 커다랗게 그려놓고

“당신 웃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한결 좋아졌소”


한평생을 함께 살다가 떠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이 노 부부에게서 봤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은  "This is my buddy 이차는 나의 절친한 친구” 라고 부른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곁을 떠났지만 분신을 남겨두고 가셨으니 서로 대화도 하고 가끔씩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바람도 쏘이며 사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저 세상으로 떠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의. 마지막 한마디는 대체로 지난 세월을 아쉬워하거나, 후회하거나, 남겨두고 간 가족들을 걱정하는 내용인데 반해 이곳 서양 사람들은 조금은 다르다. 할아버지와 같이 로맨틱한 얘기는 아니더라도 대체로 “ I love you honey”  그러면 떠나보내는 가족들은 “God bless you”  나는 당신과 함께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이제는 하느님 곁으로 가 편안히 쉬기를 기원해준다.

그들은 일상생활이 하느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크게 놀라면

“Oh my God 하느님 맙소사”  

우리는 “엄마야”다,


반갑거나 기쁜 일이 있으면

“ Thanks God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어머나 . 이게 웬일이야?”


심지어는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끝맺을 때

“ God bless you.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우리는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심지어는 고속도로 출구에서 구걸하고 있는 홈리스에게 오 불짜리 지폐를 줬더니

“Thank you. God bless You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십시요”


이렇듯 서구에서는 일상이 하느님과 함께하고 았어 저세상으로 가는 사람도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모두 다 하느님 곁으로 간다고 믿기 때문에  마지막 고별사가 우리와 같이 미안, 후회, 걱정과는 다르다.


이제 우리도 죽음이 삶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연장선상으로 믿어봄은 어쩔는지? 그렇다면 떠나는 이들의 마지막 한마디도 달라지지 않을까?


임종을 지켜보는 배우자나 가족들 에게

“ 나는 우리 가족들과 참으로 행복했소. 이제는 주님 곁에서 좀 편히 쉬고 싶소”


떠나보내는 우리는 가시는 분에게

“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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