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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Nov 11. 2021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사람들

코리아 타운

우리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도전을 한다. 그 삶의 목표가

-  명예를 위한 것일 수도 있고

-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일 수도 있고

-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어도 모두들 장밋빛 희망으로 도전을 하는 것이다. 낯선 세계로 장소를 옮겨 도전을 하는 사람들을 이민자라 일컫는다. 그들의 도전장에는 꿈과 희망 이었지만 낯선 이국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공항 검색대에서부터 두려움과 당황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기 시작한다. 그러다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면 도전이라는 말이 무색 하리만큼 움츠려 들어 어데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래서 우리 이민자들 사이에 회자되는 우스게 소리가 있다. 이민자들의 직업선택은 공항에서 누가 픽업해주느냐에 의해 결정된다고.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모든 게 새롭기만 하기에 먼저 온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일 수밖에. 그것도 세상사는 요령 중에 하나 일진 대 아무래도 괜찮다.


갓 태어난 아이도 3-4개월이 되면 뒤집기를 시도하고 일 년이 되면 홀로 일어서기를 시도한다. 그렇게 훈련이 끝나면 걷고 뛰는 게 성장이라고 하던가? 삶에도 성장 이란 게 있다. 이민자들도 주위의 도움으로 걸음마를 시도해 보지만 홀로 일어서지를 못하고 거기에 멈추어 서 있어 보인다. 그들이 뛰고 달리지를 못하고 발목이 잡혀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어용기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상대방이 내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의사표현이 안되어 쩔쩔매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래도 이들은 용기 있는 사랄들이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영어권과는 벽을 쌓고 아예 부딪쳐 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살고 있는 곳이 있다. 우리는 그곳을 코리아타운이라 부른다. 이 타운에서는 24시간 365일 영어가 필요 없다. 마주치는 사람도, 거리에 간판도, 생활정보를 접하는 신문, 라디오 도 모두 모국어다.  여기서 영어를 사용하면 오히려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타운의 영역은 세를 확장하고 사람들의 숫자 또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꿈과 희망을 갖고 미국을 찾아온 우리는 홀로 서기, 홀로 걷는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 모여 살면서 서로 물고 뜯기는 웃지 못할 진풍경들이 있단다.


한국에서 간호사를 하다 미국으로 이주 미국 간호사 자격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영어 시험에 번번이 실패하여 조그마한 한국인 의사 오피스에서 간호사가 아닌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면서 저임금으로 생활고에 허덕이는 사람들.


영주권이 없어 고용주 밑에서 머슴처럼 기약 없이 일하면서 행여나 고용주로부터 내 팽개쳐질까 두려워 두 발을 뻗지 못하고 잔뜩 움츠리고 사는 사람들


봉제공장이나 식당에서 일하면서 최저임금도 못 받고 임금을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미국 사회에서 코리아타운이나 가능하지 않을까? 조금만 용기를 내 주류사회로 눈을 돌리면 기회와 가능성이 무한한 곳이 바로 이곳 미국 일진 대.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사람 사는 세상 그렇게 어렵지 만은 않다.

나는 영어가 미숙해도 영어권 의사를 선호한 편이다. 왜냐면 다녀올 때마다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환경도 깨끗하고 의사 선생님이 항상 약속된 시간에 만나주고 환자와 충분한 시간을 함께하며 귀 기울여 들어주고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려고 무척 애를 쓴다. 혈당이 높아 테스트를 해보고 싶으나 “혈당”이라는 용어를 몰라 더듬거리며 “test, blood” 두 마디 했더니 의사 선생은 금방 알아차리고선 “you need bloodsugar test? 당신 혈당 검사를 해보고 싶다는 얘기 이군요?” 하고 엮어준다.  “오늘은 pneumonia 폐렴 주사를 맞아야겠어요” 한다. 나는 pneumonia 뜻을 못 알아듣고 “그게 뭐지요?” 하니까. lung 폐에 관련된 백신이란다. 영어가 미숙해도 이처럼 사는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벌써 나는 오늘 하루에만 새로운 단어 두 개를 배워왔다 - bloodsugar, pneumonia.

용기? 무슨 대단한 것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 새로운 것에 부딪혀도 보고 

@.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쓰며 살아왔던 우리의 생할습관도 과감히 벗어던져 버리고 

“아무려면 어때” 식으로 살아볼 필요가 있다.


어느 날 미국 초등학교에서 3분 스피치가 있었는데 미국 어린이들은 한결같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발표를 하는데 반해 한국계 어린이들은 삐쭉 거리며 수줍어하는 걸 보고 이게 문화의 차이가 아닌가 싶었다. 도전장을 들고 낯선 세계로 발을 내디딘 이상 언제까지 움츠리고 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편하고 쉬운 것에 안주해버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울타리) 안에 가두어 버릴 수도 있다. 수만 아니 수십만의 직장인들이 “퇴사하여 자기 사업을 해보고 싶다” 고 들 하지만 오늘의 이 편리함에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한해 한 해를 지체하다 정년퇴임이라는 것이 우리를 울타리 밖으로 내동댕이 친다. 나도 그들과 같이 20년을 우리 안에 갇혀 살다가 뛰쳐나왔으니 말이다. 동물원에 갇혀 사육사로부터 얻어만 먹고 자란 곰이 훗날 방생됐을 시 사냥하는 방법을 몰라 적응을 못했다고 한다. 나에게는 참으로 가슴에 와닿은 얘기다. 나도 세상사는 요령을 터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으니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싶다면 내가 서있는 곳을 박차고 나가 도전을 해볼 필요가 있다. 도전 이란 게 위험도 따르게 돼있다. 높은 절벽에 있는 둥지에서 알을 깨고 태어난 매(새 종류) 새끼들도 때가 되면 홀로서기 위하여 그 높은 절벽 아래로 비행 연습을 시도한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를 위하여, 홀로서기 위해서는 도전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결코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일이 오면 엄마 매도 더 이상 먹이를 물어다 주지 않고 나머지 새끼들과도 헤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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