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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Nov 17. 2021

여섯 세트의 포크와 나이프

말이 없는 조용한 사랑


지금은 아내가 나를  “여보”라고 부른다. 결혼 전에  데이트 할시에는 무어라고 불렀을까?  


자기야?

길남 씨?


나를 불러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없다. 아마 구태여 호칭이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만나면 우리는 껌딱지처럼 붙어 있거나 서로 마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

고 얘기한 적은 있었나?  이 또한 기억이 없다. 아니 말한 적이 없었던 게  확실하다. 나는 그 한마디를 듣고 싶어


@. 조용한 야외로 나가  같이 걸어보기도  하고,

@. 걷다가 해가 저물면 잔디밭에 누워 밤하늘에 별도 세보고

@. 사랑을 속삭이던 젊은이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영화 러브스토리도 보러 가보고

@. 러브 스토리 주인공 올리버와 제니 같이 눈밭에  궁굴지는 못하더라도  오는 밤거리를 걸어도 보고

@.  오는  우산   연인이  껴안고 걷고 싶어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데이트도  봤지만


내가 기다리는

 “사랑한다”

는 말은 없었다


나를 “자기야”하고 살갑게 불러준 적이 없고, “사랑한다”는 한마디 없는 이 여인이 나를 그녀의 사랑 속에 가두어 버린 것이 무엇일까?

 

말이 없는 조용한 사랑.


날씨가 쌀쌀한데도 허접하게 옷을 입고 다니면 그녀는 손수 만든 목도리를 목에 걸어준다. 그녀의 온기가 겨울 내내 나를 따뜻하게 지켜준다. 백화점에서 수십만  주고  목도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훈훈하다.


길거리를 같이 걷다가 그녀가 내게 묻는다

 “여기 어때?”

스테이크 하우스다.

나름 분위기를 고르는 것 같다.  식사하면서도 이렇다 할 수다도 없고, 오손도손 달콤한 얘기도 없이 그냥 내가 맛있게 먹고 있으면 그것으로 오늘 테이트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보인다


말이 없는 두 연인의 사랑은 남들이 봤을 땐 무슨 재미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만날 때 얼굴 표정만 보면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고 헤어질 때는 두 사람이 얼마나 아쉬워하는지를 읽를수가 있었다.   


그녀는 우리의 사랑에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도 달랐다. 친구들 민정이, 기옥이, 옥주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단다. 이제는 주위에 우리 사이를 공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녀의 친구들과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그녀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도 확인하게 된다.  

"우리 희정이가 그렇게도 좋아한 남자 친구를 만나 뵐 수 있어 반가워요"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놀라지도 않는다.

언제?

두 달 후

준비할게요

우리의 화법은 마치 변호사 나 형사들과도 같았다. 미사여구도 없고 포인트만 주고받는다.


아내가 준비한 결혼 선물 중 가장 특이하고 궁금한 게 6세트 포크와 나이프였다. 6세트의 수저와 젓가락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포크와 나이프다. 왜 6세트를 준비했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대답 대신 지긋이 웃는다. 다른 일 같으면 다그쳐 묻는데 망설여진다. 여기에도 분명 말수가 없는 그녀의 메시지가 있을 거라는 생각 에서다.


추측해본다.

우리 가족을 위한 준비라면 자녀계획이 4명?

아니면 스테이크 파티에 초청 부부는 2 가족으로 한정?

그러나 좀처럼 그녀의 속내를 헤아릴 수가 없다.


국민학교 시절을 더듬어 옛 친구들 얘기를 하다

그녀가 포크와 나이프에 대한 얘기를 시작한다.


어느 날은 스님이 시주 차(당시에는 쌀을 스님에게 주는 것을 시주라 함) 그녀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어머니를 쳐다보면서


"이 애는 나중에 시집가서 여기서 살지 않고 외국으로 나가서 살 것입니다"

했다는 것이다.


결혼 살림살이를 준비하신 어머니께서


"희정아,  오늘은 특별한 너의 결혼선물을 사주고 싶구나, 나와 함께 가지 않을렴?"

 "엄마 웬 포크와 나이프야?"

"스님이 너에게는 이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더구나"


그런데 왜 6세트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나도 당신과 똑같이 궁금했어"


친정어머니께서는 대답을 않고 빙그레 웃고만 말았단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난 후 친정집에 가서


"엄마, 우리는 애를 너 낳을 계획이 없어" 했더니

"내가 사준 포크와 나이프는 6세트였는데" 하시더란다.


두 모녀의 속내가 풀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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