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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Dec 03. 2021

다양성이 수용되는 미국 사회

초등학교 오픈하우스가 있는 날이다. 학부모를 초청해놓고 선생님이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는지를 보여줄 모양이다.


십여 명의 학생들이 교실 바닥에 앉아있고 그 뒤에는  학부모들이 의자에 앉아있다

선생님이 종이컵을 학생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고 나서 컵에다 팝콘을 채우도록 지시한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이 칠판에다

“팝콘은 XXX 모양이다”

라고 써 놓고선 맨 왼쪽 학생부터 팝콘을 하나씩 집어 어떤 모양인지를 발표토록 한다.


제임스?  팝콘은 (꽃) 모양이다

제니?  팝콘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 모양이다

알렉스?  팝콘은 (호박) 모양이다

조셉?  팝콘은 (설탕과자) 모양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답한 내용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칠판에다 적어준다. 십여 명이 팝콘을 보고 느낀 내용이 모두 다르고 어느 한 사람도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알렉스가 답한 호박모양은 좀 그렇다. 너무 벗어났다고 생각되는 답은 한 번쯤 집고 넘어 가련만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아니 선생님은 모든 학생들의 답을 깎듯이 존중해준다.


나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래 이런 것을 일컬어 “다양한 사고”라고 정의해야겠지?


한국에서는 어떻게 했을까?

선생님은 칠판에

“팝콘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 모양”이라고 쓰지 않았을까?


50명의 학생들 에게는 팝콘의 모양이 모두 같은 것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교육을 받았으니까.


알렉스가 답한 “호박 모양”을 그대로 넘겼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묻기라도 했다면

학생들은 모두 소리 내어 웃었을 것이다

이내 알렉스는 조롱거리가 되고, 심지어는 집에 가서도 부모님 앞에서 알렉스의 답이 우둔하다고 다시 한번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다양성과 창조성이 요구되는 시대적 요구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살고 있는 이웃 동네 Rossmore라는 조그마한 동네는 전체 가구수가 5,000 가구인데 모두가 custom house (잡 주인의 취향에 맞게 지은 집)로 같은 모양의 집 구조가 단 한 채도 없다. 사람들의 얼굴과도 같다. 조금씩은 다르면서도 눈, 코, 귀, 입을 다 갖추고 있다.


겉모양부터 내부 구조에 이르기까지 개개인의 취향을 살려 자기만의 둥지를 만들었으니 이를 일컬어 보금자리라  한다.  나 같은 사람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단다. 집주인이 이 세상을 달리할 때만이 집이 팔리기 때문이다.


어디 그게 집뿐이겠는가?

몸속에 흐르는 사람들의 피도 다양하다.

당신은 히스패닉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저의 피는 25% 만이 히스패닉입니다

무슨 의미이지요?

할아버지는 독일인, 할머니는 아이리쉬, 어머니는 히스패닉 이니까요.  나머지 25%는 누구의 피라고 정의해야 하는지? 아무래도 괜찮다. 무엇하나 잘하는 게 있다면 누군가의 25% 피가 기여했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똑같은 색깔의  머리카락, 피부 거기에다 피기 섞이지 않는 단일민족.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고 해야 하나?  


심지어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다양성 그 자체다. 아침에 가벼운 식사를 위해 같은 메뉴를 주문해도 각자의 취향에 맞춰준다.


빵은?  white, wheat, or sourdough bread?

달걀은?  scrambled or sunny side up?

감자는?   french fried, hash brown, or mashed patato?


각자의 취향을 요구하고   다양성에 맞추어 사는 사회 그게 미국 이란다.


이를 처음 겪는 나는 매우 불편했다. 간단한 아침  끼를 하자는데 뭐가 이토록 복잡하지? 적당히 알아서 만들어오면  되나? 했다.


육개장 하나

곰탕 하나

백반 하나 주문하면


짜고, 매운맛을 알아서 잘도 해온다.

신통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입맛이 표준화됐다고 해야 할는지?


그러나 이곳 생활에 익숙해진 나는 식당에  때마다 매번 기분이 좋다. 나만을 위한 아침 한상을 만들  있으니 말이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 다양한 사고로 자유분방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곳 미국인들이 무질서해 보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였으나 이제는 그 다양함이 오늘의 위대한 미국을 만들었지 않았나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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