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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Oct 18. 2021

일상의 소중함

산다는 게?

매달 20일이 되면 통장으로 급여가 입금된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짜임새 있게 계획을 세워 오랜 시간 생활해 왔기에 산다는 게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이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뜻하지 않는 사고로, 실직으로, 무모한 모험으로 가진 것을 모두 잃었을 때 평상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가를 실감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소중함을 오래오래 지키기 위해서 나름 애를 쓰지만 우리의 의지와 무관할 때가 있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한들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어제 까지는 꿈이었다. 깨어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치타와 같이 수컷은 교미만 해주고 출산과 양육을 암컷에 떠 맞기는 인생 이어서도 안되고,  암컷은 알만 낳아주고 수컷이 곁에서 꼬리를 흔들어 알이 부화토록 최적의 조건을 만들다가 알이 부화하면 생을 마감하는 물고기 가시고기와 같은 인생 이어서도 안될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함께해온 반려자도 있고 책임져야  할 부양가족도 있으니 말이다.


인생의 반전을 꿈 구면서 새집을 짓기 위해 기둥부터 세우는 새로운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어제의 나를 버리고 주위의 시선도 무시하고 오로지 나만 이어야 한다. 직업이 무엇이든 임금이 얼마이건 상관이 없다. 3D 업종에 대한 취탁, 최저임금에 대한 투정은 아직도 배가 따뜻한 것이다. 아니 지금 서 있는 곳이 밑바닥이 아닌 것이다.


미국에서 자동차 타이어 비지네스를 하고 있는데 한국분이 찾아와서 가격이 제일 싼 제품으로 교체해 달라고 한다. 이윽고 타이어 교체 작업도 끝나고, 돈 계산도 다 됐는데 가지 않고 머뭇 거린다.  


"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

" 예, 일자리 하나 만들어 주실 수 있어요? "


일자리 가 있느냐고 묻는 게 아니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내용인즉 한국에서 온 지 한 달 남짓 됐는데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란다. 그 소리를 듣고 나니 얼굴에서 무엇엔가 쫏기는 다급한 사람의 표정을 읽을 수가 있었다.


한국에서 잘 나가는 S기업에서 근무하는 기러기 아빠였는데 와이프가 스트록을 맞아 전신마비가 돼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주했단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람이기에 취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할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심부름이든, 청소든 무엇 이든 취탁 하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걸 날벼락이라고 한다.


나는 이 손님을 보내고 나서 종일 내  

� 산다는 게 무엇인지?

� 돈이라는 게 무엇인지?

� 가족이라는 게 무엇인지?

를 되씹고, 또 되씹었다.


이분을 위해 일자리 하나를 만들어 줄 수 없는 내 처지 가 새삼 무능함을 자책해 보기도 한다. 혼자서 그분에게 얘기하고 있다


사는 입에 거미줄 치지 않습니다.

길게 보면 인생에서 스쳐간 회오리바람일 것입니다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제비 새끼들도 당신의 마음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인생선배로서 같은 어려움을 겪어본 유 경험자로서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지금은 그 어떤 얘기도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그러했으니까요.


내 형편이 어려워 지니까 그동안 어깨동무하며 지냈던 친구, 옛 직장 동료들은 한 달이 가고 반년이 가도 전화 한 통 없다. 먹고살고는 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찾아가 만나도 싸늘하다. 내가 그들을 미워해야 할 하등에 이유가 없는데도 서럽기만 하다.


평생 동안 전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본 적이 없다는 직장동료들을 예전에는 금수저로 비아냥거렸으나 이제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처럼 보인다. 어지간한 충격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 이기에 서서히 금수저가 부러워진다.


그래도 나는 초토화된 빈터에 새집을 짓기 위해 기둥 하나를 일으켜 세워 보려고 오늘도 새벽을 깨우는 한 마리의 수탉과도 같이 어둠을 가르고 일터로 향한다. 예전 같으면 아직도 포근한 잠자리 일진 대 일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런 행복은 색다르다..


내가 노는 물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크리스털 같이 맑은 물이었다면 지금은 흙탕물이다.

논리와 상식을 무시하는 망나니, 법과 질서를 비웃고 돌아다니는 사기꾼, 우리가 차려놓은 밥상에 왜 숟가락 들고 나타났냐고 비아 양 거리며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법이라는 것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흙탕물 속에서 살아보니 누군가가 참으로  잘 만들었다. 질서가 유지되고 나와 같이 유약한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으니 말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눈높이도 맞추어야만 했다.. 이쪽에서 "아"하면 저쪽에서 "어"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다 똑똑한 줄만 알았다. 외모는 성인이나 정신연령이 유치원 수준인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래도 이들은 우리가 살아 가는데 소중하고 절대 필요하다는 것도 새삼 깨우쳤다. 온실에서만 살다가 유리창을 깨고 바깥세상으로  나와보니 세상이 참으로 오묘하고 절묘하다. 또한 매우 거칠고 하루하루가 전쟁터와 다름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가족이 고마운 줄도 알게 됐다. 예전에는 나 덕택에 우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당신들 덕택에 내가 오늘을 버텨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온 가족이 웃음을 잃은 지도 오래됐다. 어서 빨리 그들에게 웃음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새집을 짓기 위해 마지막 남은 기둥 하나를 세우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드디어 해 냈다는 대견함과 나와 함께해준 가족들이 이토록 행복해하는 것도 처음 봤으니 말이다.


그동안 잔뜩 움츠리고 잘돼야 할 텐데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제비 새끼들도 서서히 비행을 할 준비들을 는 하는 것 같다,  큰 놈은 대학을 갈 준비를 하고 둘째 놈은 자동차 운전 면허증을 따겠단다. 조만간 자동차도 기대하는 눈치다.


오늘의 절박함이 "한바탕 할퀴고 간 회오리바람" 이듯이 바람이 그치고 평온한 날은 반드시 찾아오게 돼 있다. 그렇게 일 년이 가고 또 한 해가 지나니 새집이 지어지고 나에게도 예전의 일상이라는 게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와이프와 마주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올여름휴가는 어디로, 다음 주말에는 여고동창 순이네를 불러 바바큐 파티라도.  떠난 줄만 알았던 친구, 옛 직장동료들이 하나둘씩 연락을 한다. 골프 라운딩이라도 같이 하잖다. 내가 언제 그들에게 서운해했던가 싶을 정도로 스스럼없이 같이 웃고 즐긴다.


그들은 나의 집 짓는 얘기를 해주면 흥미로운 듯이 듣고,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왜냐면 그들은 운 좋게도 평온한 일상이 깨지지 않고 여태껏 유지해 왔으니 가슴에 와닿지 않았을 것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그들과는 달라진 게 있다. 이제는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똘똘해졌고, 맷집도 생겼고, 삶의 지혜도 갖췄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이 소중 한지도 몸소 깨우쳤으니. 거기에다 우리 가족들은 도전이라는 보다 값진 것을 함께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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