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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Oct 06. 2021

나에게는 그게 바람이었네

전에 못 보던  여직원이 우리 부서에 은영이를  찾아와 둘이서 한참이나 얘기하면서 나를 간간히 쳐다본다. 내쪽을 향해 턱을 쳐들고 가리키고 있는 게 나를 지칭하는 듯 싶다. 신입사원 인지라 궁금할 수도 있겠지 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내게 다가오더니만


"안녕하세요? 새로 오신 분인가 봐요? 저는 향미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잘 부탁해요."


앞으로 볼일이 있을는지?  나와 업무 연관이 있을는지? 새로이 인사하는 회사 내 모든 직원들에게는 “잘 부탁합니다” 하고 항상 덧 붙인다. 뒤돌아서 가는 보습이 매우 활기차 보인다. 키도 크고, 얼굴도 그 정도면 괜찮다.


"은영 씨, 그 여직원 누구세요?"

"향미 언니는 우리 대 선배 이셔요. 여직원들 군기반장이고요."

"터프가이로 안 보이던데?"


고개를 꺄우뚱 거리면서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계속했다. 다음날 아침 향미라는 그 여직원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내게 오더니만 옆자리에 있은 의자를 끌어다 나와 마주 보고 앉는다.


"고향이 어디세요?"

"학교는 요?"


출근한 지 며칠 안돼 매사가 조심스럽고 신경도 곤두 서 있는데 저돌적인, 아니 성급한 신상파악에 조금은 당황했다. 나도 모르게 묻는 말에 머뭇거림 없이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커피 두 잔을 들고 나를 만나러 온다.  향미가 옆 자리에 의자를 끌고 와 버려  앉을 데가  없는 옆 부서 직원이


"그게 내 의자인데……"

"알아요. 가서 커피 한잔 하고 오세요"


어? 은영이 말이 맞은 것 같은데?  군기반장? 그래도 나와 함께 대화할 때는 매우 예의 바르고 명랑한 숙녀다. 시간이 갈수록 향미와 대화하는 게 청량제 와도 같다. 묻는 말과 대답이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하기 때문이다. 거침이 없다. 내 뒤에 앉아계신 과장님도 우리 사이를 시샘하신다.


"향미 씨 내 커피는 없어요?"

"은영아 너네 과장님 커피 빼다 드려라"

"녜, 언니"


우리 과장님, 부장님과도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화한다. 나는 부장님이 호출하시면 “예” 하고 마치 논산 훈련병처럼 박차고 일어나 차렷 자세로 지시사항을 받드는데 향미는 나와 크게 대조된다. 괜찮다. 회사 내 여장부가 나를 콕 집어 좋아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삼사 개월 지나니까


"사귀는 사람 있으세요?"

"임자 있은 몸인데요."

"아! 여자 친구가 있으시구나"

"아니요. 결혼했다고요"


향미의 얼굴이 순간 정지 화면처럼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고 충격을 받은 듯하다. 오랜만에 사귀어 볼만한 남자를 찾았는데 사람 볼 줄 아는 어느 여인이 벌써 자기 것이라고 침을 발라 버렸다니 이게 웬 말인가 싶다. 그러나 곧바로 정신을 차리더니


"음, 그러면 내 오라버니 해 주세요"

"그래요.  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걸…  그러면 우리가 호칭도 바꿔야지요? 이제부터는 그냥 향미라고 부르지."


향미는 어제 받았던 충격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커피를 들고 나를 찾아온다. 오라버니 모닝커피 가져왔어요. 이제는 나에 대한 호칭이 “오라버니” 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마치고 인근 동산을 함께 걸어 보기도 한다. 특별한 얘깃거리도 없지만 만나면 반갑고,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퇴근길에 둘이서 맥주집을 갔다.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우리 둘 사이의 대화 내용은 여느 회사 동료들처럼 부장님 흉보기, 주의 동료들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는데 향미가


"오라버니. 언니 한번 보고 싶어요"

"그래?"


향미가 왜 언니를 보고 싶다고 할까?  

같은 여자로서 언니, 동생 이 쉽지 않을텐데?

향미도 여자로서 자존심이 있을 텐데?


아니다. 향미는 여장부라 뭇 여성들과는 달리 오라버니와 동생 사이로 지극히 순수한 마음 일거야. 만나면 오라버니가 돼버린 사연을 가감 없이 얘기할 여자야. 가족처럼 만나면서 살자고 할 거야


"기회를 한번 만들어 보자꾸나."


그 뒤로도 몇 차례 맥주를 마시면서 시간을 함께 했는데도 더 이상 언니 얘기는 꺼내지를 않는다. 그러나 언제부터 인지는 몰라도 술을 마시고 길거리를 겉노라면


“오라버니” 하면서 팔짱을 살짝 껴안았다가 풀어준다.


"향미야!"

"네. 오라버니?"

"너도 나만한 사람을 빨리 만나야지?"


대답이 없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둘 사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안 보면 보고 싶고, 궁금했다면 내가 향미를 사랑하기 시작했나 의심도 해 보련만 며칠만에 만나도 어제 만났던 것처럼 왜 그동안 조용했느냐고 따지지도 않는다.


오늘은 만난 지 처음으로 내가 향미에게 전화를 했다.


"향미야”

"무슨 일이니. 오라버니가 전화를 다 주시고"

"저녁에 내가 맥주 살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그 맥주집으로 오너라"


앉자마자. 궁금해한다.

"무슨 일 있어요?"

"맥주로 목부터 축이고 보자꾸나."

"빨리 얘기해봐요. 아이 궁금해라"

그때는 영락없는 철부지 소녀와도 같다. 혹시 그녀와도 관계되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소녀처럼.


"나, 해외지사 발령 받았어"


오라버니 축하해요. 인사를 기대했는데 아무런 말이 없다.

"야, 축하할 일 아니니?"


대답 대신 그녀의 눈물을 본 것이다. 맹꽁이 같은 놈눈치가 없는거야? 순진 한거야? 나는 자책을 한다.어찌 남여관계가 오라버니와 동생으로 지속될수 있단 말인가. 향미가 나를 많이 사랑 했구나. 이를 어쩐담. 향미는 채 일분도 안돼 마음을 추스르더니


 "자, 축하하는 의미에서, 오라버니 앞날을 위해서......"

 

향미는 그날 저녁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이(2) 차를 가잔다. 그녀가 술을 사겠단다.

이(2) 차에서도 향미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계속 술을 마신다. 11시 가 다 되어가는데도 집에 갈 생각을 않는다.


오늘 처음 본 향미의 눈물에 나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이다. 그렇게 호탕하고 직설적인 그녀도 사랑 한다고 생각하는 그 남자 앞에서는 조약돌처럼 작아져


좋아 한다고 말을 못 하고,

주위만 맬돌다가,

지켜보기만 하다가


오라버니가 곁을 떠난다는 얘기에 눈물을 보이니 말이다.


그녀가, 내가 했던 얘기들이 하나씩 음미되기 시작한다.


"언니 한번 만나 보고 싶어요"

내 사랑에다 먼저 침을 발라버린 그녀는 어떤 여자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향미도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야지?"

오라버니는 아직도 내 마음을 몰라줘요.  나는 오라버니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요.


한국을 떠나기 하루 전날 전화가 왔다. 나하고 커피 한잔 하잔다

"오라버니 지갑 줘 보세요."

"왜 여비라도 보태 줄려고?"

그녀는 사진 한 장을 꺼내더니 내 지갑 속에 넣어준다.  마치 70, 80연대에 연애하는 시골 젊은이와도 같이

그토록 명랑하고, 똑똑하고, 저돌적이고, 자타가 인정하는 회사내 군기반장도 사랑 앞에서는 맥을 못추고 바보가 돼 눈물만 흘리다니….

이내 그녀가 결혼 했다는 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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