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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Jan 22. 2022

돈 벌 줄 모르는 맹꽁이

회사에서 저녁회식을 하면 오랜만에 목구멍  빼고 광내는 날이다. 몸이 버텨 주기만 하면 고기와 술을 실컷 먹고 마시면 행복했던  옛날 얘기다.


낮에는 인기척이 없는 골목길이 밤이 되면 우리와 같이 직장에서 업무에 혹사 당하고, 상사로부터 시달리고 난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술을 진창 나게 마신 샐러리맨들이 밤거리에서 휘청 거린다


술에 취해 긴장이 풀리고 흥이 나면 상사를 껴안고

“I love you, my boss. 선배님 사랑해요”

동료나 후배들과는 친구와 아우가 돼 허그도 하고 볼에다 뽀뽀도 하곤 한다. 멀쩡한 정신에는 가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애교다.


그러다 다음날 아침에 직장에서 마주친 어제저녁에 그들은 다른 사람이 되어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가 간밤에 술을 함께 마셨던가 하고 의심할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다.


밤과 낯이 전혀 다른 세상을 살면서 시간이 흘러 한 해가 저물면 나는 아니 우리는 그동안의 업무 능력을 평가받기 위해 줄 서기를 해야만 했다. 이를 일컬어 인사고과라 부른다.


실탄 없는 전쟁을 치르고 나면 연말 아니면 새해벽두에 성적표와 더불어 훈장(직급 승진) 수여자 명단이  사내 전 직원들에게 회람된다.


어쩌다 기쁜 소식을 접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역시 와이프다.


“여보야 나 승진했어”

“축하해요..  급여도 많이 올랐겠네?”


와이프 역시 급여봉투가 두툼해져 살림살이가 나아졌으면 하는 기대를 숨기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면 생활이 늘 팍팍했으니까. 조그마한 연말 선물도 주는데 얄밉게도 허리에 차는 벨트(허리띠) 란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 들고 회사를 비아냥 거리곤 했지


급여를 많이   없으니 허리띠를 졸라 매라고…”


친구들은 직장생활을 해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 못한 나는 와이프에게 늘 미안해 나 자신을 "돈도 못 버는 맹꽁이 녀석” 이라고 자책하곤  했다. 그러면 와이프가 옆에서


얼마 버느냐도 중요 하지만 돈을 어떻게 쓰느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해하고 나를 위로해준다.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됐고 녀석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눈앞에 둘 정도로 성장했는데도 맹꽁이의 생활은 크게 나아지지를 않고 있으니 초조하고 답답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식구들과 길거리를 걷다 길거리 행상이 바나나 한송이를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오래된 바나나는 겉모양 색깔이 노란색이 아니라 시꺼먼 색깔로 변해버려 지금 같아서는 그냥 줘도(무료로 준다 해도) 먹을 것 같지가 않지만 애들은 그 바나나를 처다 보면서 혀를 날름 거리며 먹고 싶단다. 맹꽁이 아빠는 애들의 손을 끌어당기면서

“애들아 가자”


그래도 회사 이름 두자만 대면 모두가  아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데도 맹꽁이의 급여봉투는 항상  빈약했다. 이를 일컬어 " 좋은 개살구"  던가?


그게 전부였으면 좋겠지만


주먹 크기만 한 우유통이 매일 아침 문 앞에 배달되는데 이를 받아 쥔 애들은 단숨에 마셔 버린다.

“더 없어요?”

하고 성화를 댔으면 가슴이 덜 시리리만

“우유를 더 마실수 있으면 좋겠다”

는 소리는 희망을 포기하는 듯이 들려  서글픈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맹꽁이는 언제쯤이나 팔자가 좋아 질려나 계산을 해본다.

급여의 절반을 저축했을 시 내 집 장만은 언제쯤?

아니다, 절반은 불가능해

삼분의 일반 저축하면?

이십 년이 돼도 맹꽁이는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셋방살이를 해야 하는 신세다.

그때도 지금도 미디어들은 맹꽁이와 같이 계산을 하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좌절과 분노를 느끼게 하는 기사를 쓰곤 한다.


너무 막연한 맹꽁이는 직장선배에게 하소연해본다. 대답 또한 참으로 막연했다


“나도 당신과 같이 계산이 안되더니만 세월이 다 해결해 주더구나”였다


그 말을 믿고 살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생각됐다. 가뭄에 시달리는 농부가 하늘도 무심하다면서 한줄기 빗방울을 기다리는 꼴이다.


무엇인가를 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새로운 도전 결심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퇴사를 하고, 마국으로 이주를 하여 새로운 길을 걸어 보기로 결심을 하게 됐다.


대학 문턱을 밟아본 적도 없는 맹꽁이

직장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는 맹꽁이

말도(영어도) 어눌하게 하는 맹꽁이

라고 나 자신을 정리해보니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허세와 허황으로 포장된 나

부모의 기대꺾기 두려워하는 

주위의 달콤한 칭찬에 메어있는 나

를 포기하면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도 깨달았으니


맹꽁이는 돈 버는 재주는 없어도 세상 살 줄을 아는 착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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