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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Apr 01. 2022

걱정도 팔자야


“고백합니다. 저는 걱정 이라는 녀석과 동거를 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합의해준 적도 없고 초대한 적도 없으니 이는 분명코 불청객 이죠? 떼어내 버리려고 부단히 노력도 해보았으나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나를 늘 피곤하게 합니다.”


대학을 마칠 때까지만 해도 걱정이라는 게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이후 결혼생활, 직장생활도 힘겹기는 했을지언정 걱정은 여전히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때는 걱정이라는 놈이 내 근처에 얼씬 거리지도 않다가 이제 와서 내 주위를 맴돌면서 나를 피곤하게 괴롭힌다.


돌이켜보니 그때는 부모님의 커다란 우산 밑에서 보살핌을 받아 부족하거나 불편한 게 없었던 것 같다. 도움이 필요할 때면 부모님은 항상 내 곁에 있었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 모두 다 받아서 담아 주셨으니 걱정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하등에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즐기면서 꿈과 낭만을 먹고사는 행복 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렇게 영원할 줄만 알았다. 집안에 무슨 걱정거리라도 생기면 해결사는 언제나 부모님의 몫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새집을 사서 이사를 가려는데 돈이 부족하면 자금을 대출해주는 은행 역할까지도 부모님은 마다하지 않으셨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부모님이 들고 있는 우산과 똑같은 그런 우산을 움켜쥐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우산 밑에는 내 새끼들이 어우러져 있다.


먹고사는 문제는 이제 우리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다. 예전처럼 절박하지도 않고 열심히 노력하면 대가를 보상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시간에 형제들로부터 전화가 오면 왠지 섬뜩한 기분이 스친다.

이 시간에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그러나 "주말에 얼굴이라도 보자고 연락했다"라는 말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예전 같으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고 반가워하련만 지금은 마치 군인들이 “비상 대기” 훈련이라도 하듯 긴장을 내려놓지 못하고 신경을 곤두 세우며 살고 있단다.


자식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첫마디부터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왜? 별일 없지?"  확인 사살부터 먼저 한다.

손자가 어데 아프기라도 하는지?

와이프와 다툼이라도 있었는지?

그들도 이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가장인데 왜 이런 부질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지 정말 오지랖이다. 잠자리에 들면서 베개 밑에 걱정을 깔고 자는 사람이 돼가고 있다. 이런 내가 싫다. 예전처럼 장난기 섞인 아니 여유와 익살스러운 대화였으면 좋겠다.

"웬일이야? 전화를 다 하고?  


언젠가는 TV 앞에 앉아서 대통령 선거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저 후보가 당선되면 잘할 수 있을까?” 괜스레 걱정이다. 예전에는 담대했다.

“잘할 거야. 대단하신 분들인데”


미국에 금융위기가 닥치자 기업들이 직원들을 빗자루로 쓸어 버리듯이 혹독한 해고를 할 때에 와이프가 “두 아들 녀석들이 직장에서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하면서 걱정을 태산같이 하면

“여보 걱정 마오, 다 능력껏 산다오. 나는 그들을 믿습니다.”


앉았다 일어나는 뒷자리를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못된 버릇이 생겼듯이 TV 속에 그 대통령 후보를 쿨하게 믿어주지를 못하고 자꾸만 곱씹어 보는 유약한 사람이 돼가고 있다.


살면서 주위에서는 나더러  “당신은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칭찬과 부러움을 숨기지 않은데도 예전과 같은 행복의 진미를 느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허리띠를 풀어 제치고 느긋하게 삶의 여유를 만끽하고 살면 안 되는 것인지?  걱정한다고 해서 오늘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나 같은 이를 일컬어 “걱정도 팔자야”라고 부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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