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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Jun 28. 2022

나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제2화: 대기업 간부에서 자동차 정비소 도우미로 추락

20년 근무하고 받은 퇴직금 7만 불이 전 재산인 나는 이를 들고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동안 술과 업무에 골병이 든 몸과 마음을 추스르면서 주위에 지인들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조언을 들으려고 한다.


가깝게 지냈던 지인을 찾아가 “이제 주재원이 아닌 교포가 됐으니 앞으로 많은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했더니 그의 첫마디가

“ 당신 잔디 깎는 일을 할 준비가 돼있어?”

“ 그런 막노동은 좀 그렇습니다”

“당신 아직 멀었어”

대기업 팀장이었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아직도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는데 잔디를 깎을 수 있냐는 그이의 말.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의 냉혹함을 맛보는 첫 일성이었다.


지출도 최소화하기 위하여 two bedroom 아파트 에다 자동차는 제일 싼 걸로 리스를 하고 냉장고 1대를 구매한 것이 전부였다.  T.V. 소파, 식탁은 우리의 필수품이 아닌 사치품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인 큰 아들과 중학교 2학년인 둘째 아들은 종일 내 말 한마디가 없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긴장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주재원 근무 6년간 마국에서 교육을 받은 그들은 부모가 경제능력이 없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온 가족을 조각배에 싣고 망망대해를 나선 기분이다. 한 손에는 핸들을 다른 손에는 나침판을 움켜쥐고 있는 나는:

최종 정착지가 어데 인지?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는지?

연료와 식량은 항해를 위해 충분한지?

가늠할 수가 없다. 많이 답답할 뿐이다.


먹고살만한 게 있는가를 찾기 위해 이력서를 십여 통 만들어 미국 회사와 한국계 회사에 제출해 봤지만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내 딴에는 대기업 해외영업부문에서 20년 동안 일했고 매출 4억 불 이상의 시장을 관리한 경력으로 나름 자신감이 있었으나 퇴사를 하고 미국에 와보니 모든 게 허당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밑천도 없으면서 비즈니스를 해보겠다고 시장에 나와있는 사업체들도 찾아다녔으나 진전이 없이 일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나 자신에게 물었다.

@  네가 제일 잘 아는 게 뭐지?

-   자동차 타이어.

@  네가 제일 자신이 있는 게 뭐지?

-   자동차 타이어

@  답답한 친구야 그렇다면 제일 자신 있는 것을 해야지  않겠어?


자동차 정비소를 찾아가 타이어 샵을 운영해볼 계획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러면 우리 샵에 와서 고객 서비스와  타이어 교체하는 방법을 배워 보란다. 뜻밖의 호의에 매우 놀랐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일이지만 내가 대기업에서 퇴사한 사람이라고 하니 한국에서 수십만 불을 갖고 왔을 것으로 짐작 향후에 자기 비지느스를 나에게 팔아볼 심산이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시작한 첫날 주인장은 종업원 용으로 준비해둔 작업복을 건네주면서 입으란다. 내 체구에 비해 너무 커서 헐렁한 게 꼴불견이다.  아무려면 어때. 찬밥 더운밥을 가릴 겨를이 없는데. 주인과 다른 종업원은 종일 내 바삐 움직이는데 나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괜스레 빗자루를 들고 길거리 청소도 해보고 주인장을 따라다니면서 그분의 연장을(tool) 걸레로 닦고 정리정돈을 하는 것 그리고 점심을 마치고 오시면 커피도 끓여 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때로는 주인장이

" 여보게 문(Mr. Moon) 거기 plyer(집게) 가져오게나"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벌떡 일어나 주인장 연장 박스로 (tool box) 달려가

"이것 말씀이에요?"

"자네 plyer 뭔지 모르나?"

신경질 적이고 실망한 눈초리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주인장이 자동차 엔진오일을 교환해 보란다.

"가리켜만 주신다면 하겠습니다"

익숙하지 못해서 오일이 얼굴과 어깨로 흘러내려 범벅이 돼버린 나.

집으로 귀가하니 문을 열어준 아내가 "초라하게 망가진 내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나를 꼭 껴안고 한참이나 붙들고 있다. 순간 그녀의 감정이 무너짐을 직감할 수 있었고 눈가가 촉촉해진 그녀는 나를 바라보면서

@. 당신은 미국이 그렇게도 좋아요?

-   내가 지금 하는 일에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요. 아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글쎄? 그녀 앞에서만은 씩씩한 척하면서 나를 거짓으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못 마땅해한다. 아니 몇십 년을 함께 살았지만 나를 이해할 수 없단다.


때로는 주인장의 심부름을 다니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다른 정비소 주인을 서너 번 마주쳤는데

@. 미스터 문, 영어 할 줄 알아요?

-   예, 그런대로 합니다.

@.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자동차 매연 점검 자격증을 따 봐요. 괜찮은 비즈니스입니다.


세상에는 가끔 good guy 도 있다. 묻지도 않았는데 길을 인도해주는 길잡이가 나타났으니 말이다. 나는 그분이 주신 주소를 갖고 매연 점검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찾았다. 그동안 회사에서 했던 일들을 말씀드렸더니 적성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한 시간에 걸쳐서 테스트를 하더니만

#. 당신은 미국에서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의 수준은 됩니다.

@ 그래서 학원에 등록하면 자격증을 딸 수 있다는 얘기인가요?

#  그걸 내가 어떻게 “예, 아니오” 하고 답할 수 있겠소, 당신 하기 나름이지

당신 적성과는 너무 동떨어져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수업 첫날, 30여 명이 참석했는데 그들은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마치고 곧바로 학원을 찾아온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러 왔다기보다는 현장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다. 나만 메케닉 출신이 아니라는 게 극명하게 티가 난다. 깔끔하게 하고 앉아 있는 게 학교 선생 아니면 공무원 같은 모습?  나이도 제일 많아 보인다.


자동차에 “자” 자도 모른 내가 엔진에 대한 원리를 공부하고 있는데 모든 용어들이 생소해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며칠을 앉아 있으니 마치 별나라에 (외계인) 와있는 기분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이해를 못 하면 손을 들어 선생님께 질문을 하고 또 했다. 주위에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무슨 “돌아이”가 와서 저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느냐고.  그렇지만 나는 이해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선생님은 나를 도와주고 싶었나 보다. 휴식 시간이면 내게 다가와 이해를 하고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마지막 학과를 마치던 날 office manager(사무장)가 나를 찾아와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기에 아직 자격증을 따지 못했다고 하니 “당신은 학업성적이 출중하여 자격증을 딴 거나 다름이 없단다”.  지난 6개월간 머리를 싸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퇴사하고 미국에 온 이후로 내가 맛본 첫 기쁨이다. 마치 긴 터널의 끝에서 가느다란 희망의 빛을 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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