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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Jul 03. 2022

나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제3화: 나를 사장님이라고 불러준다

내 기분에 따라 날씨를 보고 느끼는 감정의 기복이 있듯이 인생살이도 그때의 상황에 따라 밝은 앞날이 성큼 다가온 듯싶다가도 상황이 반전되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암울할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서있는 이 길목에서 웃다 울다를 반복하면서 증권시장의 주식처럼 널뛰기를 하고 있단다.


자동차 매연 점검 자격증을 따겠다고 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한 끝에 학원 사무장이 나를 불러 “당신은 학업성적이 출중하여 시험에 합격한 거나 다름이 없다” 고 칭찬할 때는 “내가 누구여? 문 씨 가문에 짱이여!” 하고 마음속으로 의기양양했는데 막상 정부에서 치른 시험에 세 번 떨어지고 나니 다시금 먹구름이 앞을 가린다.


-  한국에서 가져온 7만 불도 반토막이 나버리고,

-  그동안 창고나 공장에서 막노동하는 일자리도 알아봤으나 아무도 받아주지 않고

-  삼 개월 치 우리 집 생활비를 투자하여 학원을 다녔는데 자격증 시험에 세 번이나 떨어지고


코가 석자나 빠져버린 나. 이제는 어깨마저 처져 나만 쳐다보고 있는 저 제비 새끼들을 어찌하면 좋을는지. 그들은 착하고 공부도 잘했는데. 한국이나 미국 그 어디에도 기댈 곳 하나 없는 우리는 어쩌면 홈리스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시작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신앙심도 깊지 않고 봉사활동 한번 해본 적이 없어 성당 내에 교우들이 나를 들러리 신자라고 비아냥 거리곤 했는데 나도 모르게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다.

“ 주님, 이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네 번째 시험을 보러 가는 날 심난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며 배웅하는 와이프에게 이번이 마지막 시험이라고 했는데

-  노력의 대가였는지?

-  끈질기게 도전한 결과인지?

-  성당에서 기도빨이 먹혔는지?

합격했다.


나는 이제야 미국이 대단한 나라임을  실감했다. 매연 점검 자격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3년의 실무경력이 있거나 컬리지에 가서 자동차에 관한 수업을 1,000시간을 이수하도록 권장하고 있는데 돈벌이가 된다기에 막무가내로 학원을 쫏아 갔으니 너무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시험 내용이 실무경험이 없이는 답하기가 난해했다.


살면서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가슴 조이며 초조하게 살아야만 하는 비굴함을 맛보았다. 반면에 최선을 다하는 나를 보고 놀라기도 했다. 이제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오늘따라 날씨도 왜 이리 쾌청한 지 그리고 고속도로 차량들도 내 뒤를 따라 행렬을 하는 듯 온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듯싶다.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겨울잠에서 깨어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한 마리 곰처럼 나도 이제 먹잇감을 찾으러 나서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3-4 개월 동안 준비를 마치고 샵을 오픈하던 날 주변에 지인들을 초청했는데 모두들 나를 “문 사장”이라 불러준다.


그러나 무엇하나 쉬운 게 없다. 그동안은 마음고생이 많았다면 이제는 육체적인 고통의 연속이다.  어떤 날은 비즈니스가 바빠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퇴근하고 양발을 벗으려고 하는데 발바닥에 붙어 떨어지지를 않는다.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그러다가도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에 움츠렸던 일들을 돌이키면 마음이 다잡아진다.


매일 새로운 도전이다.  

젊잖은 백인 중년 남자의 차량을 매연 점검했는데 떨어졌다. 손님 얼굴 표정이 굳어지더니 나더러 이유를 설명해보란다. 한참이나 듣고 나서는 내 영어를 못 알아듣겠다면서 너 그 엉성한 영어로 어떻게 감히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느냐고 냉소적이다. 인종차별을 처음으로 당한 것이다. 말 한마디 못하고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멍하나 앉아 있으니 서류를 집어던지고선 가버린다. 비슷한 수모를 몇 번 겪고 나니 나름 요령이 터득되어 이제는 제법 차분하게 응대한단다. 그들의 인종차별 수법은 대체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 “그래요? 나는 지금 당신에게 영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내 영어를 못 알아듣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요. 미국 정부로부터 자격증을 받고 정부를 대신해 당신 차량을 점검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하면 그들은 이제는 줄행랑을 친다.


인도계로 보인 젊은이의 차량이 불합격했다. 손님은 돈을 지불할 수 없다 한다. 대체로 이런 경우는 손님들이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욕설을 하는데 그이는 아주 차분하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하기에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도리가 없어 경찰을 불렀더니 경찰 앞에서는 대꾸 한마디 없이 돈을 내니 너무도 얄밉다. 그리고 2주 후에 재 점검을 위해 다시 찾아왔으나 역시 불합격이다. 이번에는 손님이 경찰을 불러 “자기 차량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2번이나 떨어 뜨리고 돈을 받아간다”라고 신고해야겠단다. 미국 경찰은 참으로 착하기도 하여라 이런 엉터리 같은 경우에도 출동하여 하소연을 들어주니 말이다.


이번에는 멕시칸 젊은이다.  정부기관에서 사람이 나와 “고객 불만 신고”가 접수됐단다. 사연인즉 3개월 전에 매연 점검에서 불합격됐는데 내가 테스트를 잘못하여 떨어졌으니 돈을 돌려받아 달라는 내용이다.  테스트 리포트를 보더니만 자기가 보기에도 차량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한다. 나더러 돈을 돌려줄 의향이 있느냐고 묻길래 “택도 없다 (forget it)"고 했더니  그렇다면  당신 생각에는 왜 손님이 이런 불만을 제기했겠냐고 묻기에 “아마도 빵값이 없어 어디에서 돈 뜯어 낼 데가 없나 하고 궁리한 끝에 이런 치졸한 방법을 찾은 것 같다”라고 했더니 빙그레 웃고선 돌아선다.


앞만 보고 언덕을 오를 때에는 언덕 뒤에 내리막길이 있을 거라는 것을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어느 날 내 발걸음이 가벼워 뒤돌아보니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이제 힘들어하는 이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과거 추위에 떨던 날들이 생각나 주저하지 않고 도움을 주기도 한단다.


어떤 아주머니는 싱글맘 이라면서 좋은 가격을 달라기에 반 가격으로 할인을 해줬더니 나를 껴안고서 고맙다는 인사를 세 번이나 하는 걸 보고 $30-40  많지 않은 금액으로 한 사람을 이토록 기쁘게 해 줄 수도 있다는 것에 조그마한 보람도 느끼면서 살고 있다.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살과 하얀 머리카락을 쳐다보면서 우리 집 제비 새끼들이 “이제는 됐으니 편안하게 좀 쉬라고”  위로 섞인 제의를 하면

“그래, 이제는 나에게도 휴식이 필요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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