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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Oct 11. 2022

시작이 없는 하루


백지 위에다 컴퍼스로 동그란 원을 그려 놓고 일과표를 짜면서 하루의 시작을 7시 30분 기상이라고 빨간색으로 써넣는다. 알람도 기상 시간에 맞춰놓고 취침을 하지만 잠이 부족했는지 벌떡 일어나지를 못하고 머리는 방바닥에 처박고 엉덩이는 하늘을 쳐다본 상태로 있다가 몸을 일으켜 세워 보려고 하지만 이내 다시금 드러누워 버린다. 그러면 이차 알람 역할을 해주신 어머니께서 깨어 주신다. 어머니 곁을 떠날 때까지 학창 시절의 하루 시작은 어머니 알람에 많이 의존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결혼해서는 아내 알람이 어머니 알람을 대신해주기는 했으나 이제는 성인이 됐다고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를 않고 내가 알아서 일어나겠노라고 하다가 그만 출근 시간에 쫓겨 전철역에서 부터 회사까지 걸음아 나를 살려다오 하면서 헐레벌떡 뛰었던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하루 시작은 항상 잠이 부족해 아쉬움이 많았고 시간에 쫏겨 허둥대기만 했다.


이제는 학교 등교시간도, 회사 출근 시간도, 사업장 오픈 시간도 없어져 버린 나,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하루는 시작이 어데일까?


이내 몸이 배가 고프니 어서 일어나 아침을 달라고 할 때가 하루의 시작인가?


아니면


아침을 먹고 집안을 돌아다니다 차고가 지저분하여 정리를 한다던가, 화분에 꽃나무 잎이 생기가 없어 화분에 흙갈이를 해주는 등 눈앞에 보이는 아니면 문뜩 떠오르는 일을 그때그때 처리하는 게 나의 하루의 시작인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하루를 살아 보고자  한다.

왜?

출근시간에 쫓기고 일에 얽매인 것에 질려 그 옛것을 훌훌 털어내 버리고 여유와 함께 살고 싶으니 말이다.


기다리고 고대하던 그런 일상 “시작과 끝이 없는 하루”를 살고 있으니 이제는 행복하다고 해야겠지?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을 넘기면서 자꾸만 나 자신에게  “이제 너 행복하니?”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새로운 길을 걷자니 불안해하는 것인지 아니면 익숙하지 못한 길을 걷는 게 낯설어서 인지 모르겠다. 또 한편으로는 긴장감 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산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닐 성싶어 그 옛날을 곱씹어 보기도 해 본다. 그러다  

“아니냐, 너 지금 행복하고 있어”.

어떤 구속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살아보고 싶어 했는데 오늘 그렇게 살 수 있으니 그게 행복한 게 아닌가?


모처럼 행복한 이 순간이 내일도 모레도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욕심도 줄이고 새로운 그 무엇을 목표로 도전을 하기보다는 내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나눔으로 실천하고 주위를 살펴보며 사는 예전과는 다른 앵글이 필요하지는 않을는지.


이제야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도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져 보이는 것 같다. 와이프가 저녁을 준비하면서


@ 여보야, 마켓에 가서 파 한 단만 사다 줄래?

-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녀 오리다


예전 같으면 “파 없어도 괜찮아, 그냥 먹자” 했는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며 뛰쳐나가는 나의 모습. 그뿐인가? 프리웨이에서 운전하다 누군가가 성급하게 새치기를 하면 예전에는 “이 XX 운전하는 꼬락서니 좀 보소” 하며 신경질적이었으나 이제는 “조심해라, 서두르지 말아라 “ 다.


깐깐한 나의 성격 때문에

- 남 앞에서 잘난 체하는 사람들

- 진솔하지 못하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을

여지없이 갈라 치기 해 버렸던 나를 버리고 남의 얘기에 귀 기울여주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마음껏 내뱉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나를 만들어 가고 싶다. 지난날들의 시기, 질투, 증오 따위는 서랍장에 담아서 다시는 꺼내지 못하도록 잠금쇠로 단단히 잡아 매 놓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시작이 없는 오늘 월요일 아침.  예전 같으면 짧기만 했던 주말에 못내 아쉬워하며 다소 짜증 나는 출근길 이련만 주중이 주말같이 여유롭고 주말이 주중 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 나는 일어나 집 주위를 거니는 게 하루의 시작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쏟아져 나와 어디론가 총총걸음이다.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잠이 부족한 사람, 지난 금요일에 상사로부터 줄창나게 깨지고 나서 주말에 분을 삵였지만 아직도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 발걸음이 무거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말 골프 토너먼트에서 일등 상을 차지하고 직장동료들에게 어서 빨리 자랑하고 싶어 발걸음이 가벼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나만을 위한 새로운 삶 안에서 평온함과 여유를 잃지 않는 그저 그러하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그런 하루를 살고있다.


네 살배기 어린애와 함께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한눈에 읽을 수가 있었다.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어린애와 크게 대조된 나. 사람에 시달리고 시간을 다투며 뛰고 달리기만 했던 흔적이 처진 눈꺼풀에 담겨있고 칭찬보다는 따지고, 다투고, 소리 지르고 했던 흔적은 입가 주름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옛것을 지울 수는 없을지라도 눈꺼풀이 더는 처지지 않도록, 입가에 주름이 더 깊게 페이지 않도록 세상을 바라보는 줌(zoom)을 좁혀 네 살배기처럼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봐주고 “mommy, I love you”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읊조리듯이 나도 이제는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런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는 삶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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