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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Oct 30. 2022

사적인 질문을 싫어하는 미국 사회

남들이 보기에 나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왜냐면 비록 지방대학 출신 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문학을 전공했고 이름 있는 큰 회사의 해외영업 부문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해외출장도 다니고 해외 거래선들이 회사를 방문하면 그들이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밤낮으로 시간을 함께 했으니 주위에서 보기에는 못하던 영어도 잘할 수밖에….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없거나 해외를 다녀온 적이  없는 사람들에 비하면 영어에 대한 울렁증이 조금은 덜하여 그것만으로도 영어에 대한 실력 차이가 난다고 해야 할는지?


그러나 대화 내용을 들여다보면 매우 제한 적이고 수준이 초급중에서도 초초급 영어다


내 이름은 “현수 김”이고요

나이는 32세 입니다 (아무도 내 나이를 묻지 않았다)

내 고향은 “천안” 입니다 (어느 누구도 내 고향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았을 터이고 천안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저는 이 회사에 9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식사는 잘하셨는지요?

오늘은 여러분을 모시고 오전에는 공장 방문, 오후에는 경주 유적지를 들러 볼 계획입니다


일 년에 대여섯 팀의 해외 거래선들이 방문하여도 그들과의 대화 내용은 판박이다. 그 가운데서 지금 생각해봐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무례했다고 생각되는 것 들은 거래선들에게

나이가 몇이냐?

결혼은 했느냐?

자녀는 몇이냐?

는 식의 personal 하는 질문을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짧은 영어로 대화를 해보려고 하다 보니 또 대화도 없이 입을 다물고 다니면 거래선이 지루할까 봐 무슨 대화를 하긴 해야 하는데 할 수 있는 영어라고는 물어서는 안 될 사적인 질문들을 쏟아냈던 것이다. 많은 시간들이 지난 지금 에서야 회사 선배들, 해외생활을 10여 년씩 하고 왔던 그들이 “외국인과 대화할 시 personal (사적인) 한 질문을 해서는 안된다” 는 가장 기초적인 가이드라인을 왜 주지 않았는지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운이 좋아서인지, 해외 거래선 접대를 잘해서였는지, 아니면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상사로부터 인사고과를 잘 받아서인지 마국으로 지사 발령을 받았다.


회사에서는 나를 보조해줄 미국 여직원을 채용하겠다면서 인터뷰에 참석하란다. 중년의 아줌마, 모델 같은 훤칠한 키에 미모의 젊은 여성 등 대여섯 명을 인터뷰했다. 그러고 나서는 나더러 어떤 후보자가 마음에 드냐고 묻길래


첫 번째 중년 아줌마는 40 대 후반으로 보이지요? 나이가 몇 살이나 될까요?


하고 상사에게 물었더니 “잘 모르겠단다”  여기서는 인터뷰할 시 나이를 확인할 수 없다 한다. 이런 질문을 했다가 면접에서 탈락되면 “나이가 많아서 차별대우를 했다” 고 age discrimination으로 소송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두 번째로 인터뷰한 모델과도 같은 미모의 젊은 여성은 결혼했을까요?”

하고 물으니 이 역시 알 수가 없고 물을 수도 없단다. 왜냐면 업무 적성, 능력 평가와는 무관한 사적인 질문 (personal 한 질문)을 하여 후에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 이란다. 한국과는 크게 대조된 환경이다.


한국에서는 거래선과 자리를 함께하면 앉자마자 첫 일성이


몇 년생 이셔요?

40입니다

제 형님 뻘 되시네요


어디에 사셔요?

상계동에서 삽니다

전철로 출퇴근하시겠네요?


나이를 확인하여 형님, 동생 하면 쉽게 친숙해질 수 있어서 일까?

강북 상계동에서 산다면 강남에 살고 있는 나를 추겨 올려볼 속셈에서 인가?

업무와는 상관없는 사적인 문제들을 정리하고 나서 본 업무에 들어가는 우리의 속성은 어데서 온 것인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마국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나이가 50 이면 어떻고, 결혼을 했으면 어떠하리. 그저 우리 회사에서 일을 잘할 수 있는 적임자면 그만 일진 대.  last name (성) 도 모른 채 10여 년 동안 절친하게 사귀어 오고 있는 두 미국 친구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나면 반갑고 시간을 함께하면 즐거운 이들 에게는 그 이상 그 이하도 궁금할 게 없었을 것이다.


손자 생일이라고 아들이 우리 부부를 초대해서 방문했는데 이웃집에 한국 부부가 살고 있단다. 매우 착하고 친절하게 해 줘서 며느리가 한동안은 이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


그래 잘됐다. 좋은 이웃을 만났으니…..

남자는 뭐 하는 사람인데?

잘 모르겠어요. 나와 비슷한 investment (투자)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여자는?

병원에서 일하는 것 같아요.

의사야? 간호사야?

아무튼 잘 몰라요


미국에서 살만큼 살았는데도 아직도 사적인 것들이 궁금하고 그런 류의 질문이 거침없이 나오니 언제나 미국 문화에 적응이 되려나…… 이곳 문화에 깊숙이 젖어들지 못하고 물 위에 기름처럼 떠 있는 이민 일세의 미국 생활은 여전히 한국식으로 진행형이다.


personal 한 질문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아들 부부는 옆집 남자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서는 안 되기에 모르는 것인지 굳이 좋은 이웃이면 그만이지 그 사람들의 직업이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회사를 그만두고 조그마한 자영업을 하면서 그동안 나와 함께 일했던 종업원을 세어보니 줄잡아 20여 명이나 됐다. 인터뷰할 때 지참하고 온 이력서를 보면 한결같이 나이. 결혼. 자녀에 대한 내용은 없었고 과거 직장에서 일을 매우 잘해서 승진도 했고 관리. 영업. 고객 서비스 마인드가 탁월하다고 자화자찬하는 내용 일색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의 사적인 면이 궁금했다.

결혼해서 안정적인 생활은 하고 있는지?

결혼했다면 부인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지?

왜냐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돈에 연연하지 않을 테니까.

물어서는 안 될 사적인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 서 있으나 대놓고 물을 수는 없었다.


나와 함께 했던 그 많은 종업원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일했던 “마리오”에 대한 얘기다. 그이와는 5 년간 함께 일을 했지만 그이의 집안 사정을 다 파악하지 못하고 해어졌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본인 스스로 부인 얘기를 하는데 “wife” 라 부르지 않고 “girl friend “라 부른다. 그래 너희들은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고 있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 미국에서는 자녀가 몇 명이던, 몇십 년을 살았던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살면 “girl friend” 다. 마리오의 첫 번째 양파 껍질이 벗겨지는 순간이다.


내일 아침에는 아들 학교에서 인터뷰 (학부모님과 상담)가 있어 출근시간에 늦겠단다.


아니? 지난번에 데리고 왔던 너의 아들이 아직은 초등학교 다닐 나이가 아닌 것 같던데 무슨 인터뷰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큰 애가 중학생인데 자기 “girl friend”가 데리고 온 아들이란다. 이제야 부인 에게는 두 번째 결혼이고 데리고 온 자식이 있다는 양파 껍질이 벗겨지고 있다.


본인 스스로가 사적인 얘기를 하지 않으면 몇 년을 함께 살아도 알 수가 없는 사회. 스스로 껍질을 벗기 전 까지는 궁금해하지도, 알려고 하지도 말라는 얘기가 조금 이나마 이해가 될성싶다.


마리오의 어머니에 대한 얘기는 5 년 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자동차 타이어를 교체하기 위해 우리 비즈니스를 몇 차례 방문하여 인사도 했건만 어머니 얘기는 입밖에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엄마가 재혼하면서 자식을 버리고 갔을까?

엄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까?

지금 아빠하고 함께 사시는 분이 생모일까?


아무리 사생활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 많은 종업원 중에서 가장 책임감이 투철하고 성실하다 보니 자연 그 어머니는 어떤 분 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본인이 어머니에 대한 양파 껍질을 벗겨주지 않으니 나는 마리오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궁금증만 안고서 헤어져야 했다.


사람에 대한 “배경” 이라는 용어가 “나이, 결혼,  출생성분, 경제적 수준” 등 극히 사적인 것이 아닌 “능력” 하나만을 잣대로 평가받는 실용적인 세상 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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