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다 보니 한때는 주재원이었다가 이제는 교포가 돼버렸다. 오랜만에 아니 정말로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키 위해 이른 아침부터 공항 가는 길을 재촉이고있다. 손에 선물 보따리는 없지만 시집간 딸이 친정집을 찾는 기분 이라고나 할까? 설레고 들뜬 기분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시골 고향은 내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저 먼발치에 서 있다. 한때 정들었던 그곳이 왜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을까?
고향에 가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던 놀이터도 옛날 그대로이고 초등학교 때 심은지 얼마 안돼 막대기에 잡아 메인체 어렵사리 서있던 정자나무도 제법 자라서 이젠 중년의 자태를 자랑하고 있으나
그 옛날 개구쟁이 친구들은 모두들 이곳을 떠났고, 명절이면 소고기와 과일을 사서 양손에 움켜쥐고 “어머니” 하고 소리 지르면 문을 박차고 맨발로 뛰쳐나와 “내 새끼 어서 오너라” 하고 반기면서 내 얼굴을 당신의 가슴에 묻었던 어머니도 이제는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옆집에 살았던 친구 “자옥”이 부모님마저도 돌아가시고 낯선 50대 부부만이 들락 거리고 있다. 마을어귀를 돌다 마주친 주민들 마저 낯설어 고개가 숙여지지 않고 도시 길거리에서 처럼 얼굴만 쳐다보며 지나치니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고 정감이 넘쳤던 내 고향에 그 옛날 나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떠나고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옛날 시골집을 찾을 때처럼 은 아니지만 오늘 집을 나서는 색다른 이 기분 이제는 고국이 내 고향 같은 기분이다.
비행기 안에서는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직장 동료들이 아른 거리고 대학교 다닐 적에 막걸리 마시면서 밤거리를 휘청 거렸던 친구들 근황도 궁금 해지기 시작하니 말이다.
명륜동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공항버스를 타고 가다 광화문역에서 내렸다. 그동안 3-4일 일정으로 집안일 때문에 잠깐 들른 적은 있으나 여유를 갖고 고국을 찾은 것은 7-8년 만이다. 오랜만에 서울에 오니 옛날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회사 근처 그 맛깔난 복어집은 여전할까? 점심시간이면 거의 매일같이 찾았던 삼계탕집은? 볽아라 지저라 하면서 삼겹살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놀았던 그 고깃집은…. 마치 십여 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그 옛날이 금방 손에 잡힐듯하다.
광화문역 앞에서 택시를 타야 하는데 설마 10년 전에 와 같이 길거리에서 손들고 있다가 택시를 타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UBER 앱을 이용하면 5분 거리 식당이든, 40분 거리 공항이든 목적지만 입력하면 서너 종류의 차종이 가격별로 차등화되어 뜨고 그중 타고 싶은 차종을 선택하면 차량번호 와 운전자 이름이 뜬다. 곧바로 차량의 동선이 나타나면서 내가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걸리는 시간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IT 산업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대한민국인데 모르면 몰라도 미국에 비교하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시스템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화문역 앞에서 어느 젊은 여자분에게
어데서 택시를 타야 합니까?
아무 데서나 타세요
하고 냉큼 가 버린다.
예전과 달라진 게 없구나 하고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들고 있으니 내 앞에 멈처선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많이 듣던 인사말이다. 나는 숙소 주소가 적힌 메모를 기사분께 드렸다.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무슨 이런 주소가 다 있어요?
왜요?
그는 대답이 없다. 그러면서 전화기에다 무언가를 입력하더니
이곳으로 모셔다 드리기만 하면 됩니까?
예
내 메모지에 주소는 Airbnb에 있는 주소를 그대로 옮겨 적다 보니
“121-1, 성균관로 3길, 명뉸동, 종로구, 서울” 로 돼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3분 지났을까? 기사분께서 다시금
이 주소를 누가 적었어요?
제가 적었습니다
보아하니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가 않으신데 어쩌면 글씨를 이렇게도 못써요? 90 먹은 할아버지 같이 썼어요.
오랜만에 찾아간 내 고향 에서의 첫날은 당황과 무안함이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숙소 근처에 도착하니 기사분은 좁은 골목길을 곡예사처럼 운전 하면서 깊숙이 들어가고 있어 이러다 마주 오는 차라도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 조마 했다.
기사님. 거의 다 왔으면 내려 주세요. 제가 걸어서 찾아보겠습니다.
그러실래요?
한 손에는 짐 가방을 끌고 다른 한 손에는 주소가 적힌 메모를 들고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으나 건물 앞 대문에는 주소들이 없다. 밤거리를 10여분 헤매다 하는 수 없어 지나가는 대학생에게
실례합니다. 여기를 찾고 있는대요
예! 바로 저 건물입니다
좁은 골목길에 서있는 5층빌딩을 지척에 두고 헤맸던 것이다. 빌딩을 쳐다보니 5층 꼭대기에 BUTLER LEE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빌딩 정문을 열고 들어가 3층 방문을 열려고 하니 Key pad에 스트린이 나타나지를 않는다. 10분, 20분을 방문 앞에서 헤매다 하는 수 없어 빌딩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안 받는다. 텍스트 메시지를 보냈는데도 여전히 답이 없다. 방문 앞에서 헤매는 시간이 얼추 30-40분. 이번에는 혹시니 하고 Airbnb 본사로 텍스트 메시지를 보냈더니 곧장 답이 와 다행히 다른 호텔로 임시투숙을 해야 하는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 그러나 들뜬 마음으로 찾아온 친정집 방문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당황해하고 있다.
다음날 7시 30분쯤 아침식사를 위해 길거리로 나가 이곳저곳을 끼웃 거리며 식당을 찾았지만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어렵사리 스타벅스를 찾았는데 그나마 8시에 오픈한다고 문 앞에 쓰여있어 기다려야만 했다. 미국에서는 24시간 영업을 하는 패스트푸드 샵이 지천이다. 24시간은 아니더러도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도넛 샵이나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국밥집을 이른 새벽에 찾기는 그리 어럽지가 않다. 그뿐인가 새벽 5시에 프리웨이에 들어서면 벌써 차량들이 북적거려 교통체증이 시작되는데 내가 찾아온 서울에 이른 아침 거리는 한산해 적막하기까지 하다. 조금은 낯설다. 예전에도 내 고향이 이러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