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미국에서 살다 5-6개월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되짚어 보면서 기행을 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미국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 대한 내용입니다.
23년 전 한국에서 대기업 간부급으로 근무할 때 남보기에는 그럴싸했고 그 어디를 가더라도 목에 힘주고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됐으나 살고 있는 꼬락서니는 2층집 단독주택 1층에서 4 식구가 월세살이를 하고 있었으니 겉과 속의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남들같이 주식투자를 했다거나 도박판에 뛰어들어 털린 것도 아니고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받을 시 살던 집을 팔아 신생 백화점 점포 분양을 받았다가 백화점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가지고 있는 재산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돼버렸기 때문이었다. 주재원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결국은 월세살이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게 어때서 할는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무일푼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더라도 회시생활을 20년 가까이하면 30-40평 아파트 한채 정도는 장만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회사에 간부급이 자가용을 운전하면 회사에서 기름값도 보조해 주고
회사 주차장도 무료 파킹이 가능했으나
나에게는 자가용이 그림에 떡과도 같은 것이었다. 4 가족이 외식을 위해 또는 친지방문을 위해 이동을 하려면 길거리에 나가 손들고 있다가 택시를 타곤 했다. 아마 회사 간부급 중에서 월세살이를 하는 그리고 자가용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출퇴근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창피하고, 쪽팔려 친구들과 술 마시다 기분이 우울해지면
미국으로 가서 살고 싶다
미국에 개새끼도 이 보다는 더 잘 산다 고
신세타령을 하곤 했는데 회사에서 감원을 하기 위해 명퇴 신청을 접수한다기에 아무런 대책도 없는 봉급쟁이가 몇 푼이라도 더 챙겨볼 속 샘으로 사표를 내 던지고, 짐을 싸서,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난 지가 23년이 됐다.
이제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목주름도 생겨버린 23년짜리 미국시민이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해버린 긴 세월을 미국에서 살면서 이곳 교포들과는 달리 백인 밀집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가 비즈니스를 하면서 검정머리에 노란 피부의 미국시민이 돼 보려고 무척이나 발버둥 쳤던 것 같다. 이제는 병원, 관공서, 공항 출입국 그 어데를 가서 대화를 해도 언어의 불편함이 없을 만큼 어엿한 미국사람이 됐다.
이민 초창기에는 영어가 미숙하여 당황과 두려움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러는 당신네들은 나만큼 한국말을 잘할 수 있어?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똥배짱으로 코를 씩씩 거리며 살다 보니 실력도 늘어 이제는 미국사람들을 제법 여유 있게 마주칠 수 있으니 가끔은 내 피부가 하얀색인양 착각을 하며 살기도 한단다. 그뿐인가 내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이 친구가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 하는거야 아니면 삐꾸(모자란 사람)인 거야?” 하고 오히려 역정을 내기까지 한다.
문화의 차이? 몇십 년이 됐어도 낯설고 익숙하지 못해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심전심이란 게 없고 꼭 구두로 확인이 필요한 사회다. 부부간에 사랑, 친구의 우정, 자식사랑, 연인 간의 사랑 우리는 말이 필요 없다. 왜냐면 우리는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를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한국부부는 "여보야 갔다 올게, 응 그래 잘 다녀와" 하며 헤어진다. "여보 사랑해" 하면 닭살이 돗는다고나 할까? 우리는 마음속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 필요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부부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키스를 하며 "I love you, honey" 하고 사랑에 대해 확인사살을 해줘야 한다. 심지어는 전화 통화 후에도 전화기에다 키스를 하며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구두로 확인을 해주는 문화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부부는 친구이자 파트너 같은 존재다. 우리말에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했던가? 몸과 마음이 하나. 그러다 보니 결혼하면 경제, 재산, 집안일, 가족관계 등 모든 게 한 basket에 들어가 당신 것과 내 것의 구분이 없어지고 우리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사회는 부부일지라도 당신 것과 내 것의 구분이 명확하고 조금이라도 미심 적으면 묻고 확인하여 그 한계를 분명히 하는 사회다.
남편이 물건을 사다 갖고 있는 현금이 부족하면 부인한테 꾸면서 집에 가서 갚겠다고 할 땐 "당신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당신 돈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나는 "저들이 부부사이가 맞아?" 하고 반문해 보기도 했다. 부부간에도 돈을 별도로 관리하면서 집세, 공공요금과 같은 공통부문만 합의하에 분담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돈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를 모르고 산다. 집안에서나 밖에서 상대방을 부를 때에도 자기야, 여보, 은영이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 John, Steve, Stella와 같이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준다. 우리와 같이 결혼하면 이름도, 성도 사라져 버리고 단일체가 되는 게 아니고 서로의 조건과 뜻이 같아 함께 살고 있는 파트너다. 심지어는 결혼하고 애를 둘이나 기르고 있는 부부지만 와이프의 아버지가 안 계시는데 이혼을 했는지 일찍이 사별을 했는지를 묻지 않고 살고 있는 그들을 보면 부부사이라기 보다는 친구나 파트너와 같이 보인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완전한 독립체가 된다. 한국은 부모가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억척이다. 대학까지 부모가 도와주는 게 사회 현실에서 불가피하다고 치더라도 성인이 다된 자식들 결혼비용, 세간살이 집 장만까지 해주고 있다. 그래 거기까지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들이 자녀를 가지면 친정 엄마는 보모 신세가 되어 자칭 “돌아온 은수저”라고 푸념들 한다나?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자식에게 대학을 갈 계획이 있냐고 묻는 부모를 보면 마치 남의 얘기처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극히 일부 부모들만이 대학진학을 위해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고 대부분은 본인이 정부로부터 융자를 받거나 돈벌이를 하면서 대학을 다니기 때문이다. 은행 대신 부모로 부터 대출을 받아 대학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돈을 부모에게 갚는 경우도 봤다. 그래도 부모는 이자를 받지 않는 것만도 대단한 배려로 자랑이다.
자식들 결혼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이 남자 (여자)와 결혼하고 싶습니다"가 아니라 "우리 결혼할 거야"라는 식의 일방적인 통보다. 부모가 자식의 결혼에 간섭을 할 수 있는 틈이 없다. 부모가 삐집고 들어갈 수 있는 부문이 결혼비용과 세간사리 집 장만인데 이마저 스스로들 해결을 한다
돈을 잘 버는 남자(여자)는 결혼비용 전액을 부담하면서 사랑하는 이에게 나와 결혼해 달라고 하고
그럴 형편이 안되면 서로의 빛(부채)이 얼마인가를 확인한 후에 빛은 당사자들이 살면서 해결하고 결혼비용은 서로 반분한다.
그도 형편이 안되면 두 사람이 법원에 가서 판사 앞에서 결혼서약을 하고서 "우리 결혼했어요" 하고 주위에 알리면 그만이다.
이런 사회에서 부모의 역할은 식장에 나타나 우리가 신랑신부의 부모라고 얼굴을 내미는 정도가 전부다. 신혼집 구하기? 여기는 한국과 같이 전세라는 게 없다. 모두 월세다. 집도 소유 개념보다는 거주 개념이고 투자는 더더욱 없다. 한국에서 이민온 이민 일세들이 일부 부동산에 투자하여 집을 2-3채씩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돈벌이는 글쎄다.
나이 개념이 없이 차별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사는 곳이다. 장유유서 하면서 윗사람은 어른 행세를 하려고 하고 젊은이들은 나이 먹은 사람들을 꼰대라고 부르면서 그들과는 벽을 쌓으려고도 한다. Z세대들은 한 달 차이도 새대차 가 있다고 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주위와 단절시키려고 안달이다.
이런 눈으로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모두가 나이가 같거나 나이가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사업자가 종업원을 고용할 시 나이를 묻지 못하는 사회다. 나이로 인한 차별은 위법이기 때문이다. 그저 현재의 능력을 중시하고 직시할 뿐이다. 70, 80 먹어서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에 직장에서 꼰대라고 쫓겨나 길거리를 헤매는 한국 중년들을 보노라면 안타깝다.
이민 초기에 공원에서, 골프장에서, 사업장에서 20대 젊은이들이 나를 보고 “hey friend”라고 부르면 “내가 어떻게 네 친구냐? 싹수가 없구먼!” 하고 투덜거렸지만 이제는 나를 친근감 있게 불러 주는구나 하고 아무렇지도 않다. 몇십 년의 나이 차이에도 우리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이곳은 “어르신”이라는 게 없다. 조심스럽거나 깍듯한 예우를 해주고 싶을 때면 “sir”를 붙여주면 그만이다.
70대 노인과 초등학교 1-2학년이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울 보고 저들 사이에 무슨 대화가 가능할까 반신반의했는데 들어보면 초등학생의 질문 같지 않는 질문에도 노인은 성실하고 진지하게 대답을 해준다. 한국 에서의 그 옛날이 생각난다. “애야 너는 아직 어려서 몰라. 나중에 크면 알게 될 거야” 하고 대화를 묵살해 버린 어른들. 여기서는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가 우리의 진지한 대화 상대다.
일상의 생활이 신뢰, 믿음, 의리가 아니라 법대로 살고 있다. 한국 거리의 간판에서 많이 본 것 같다. "신뢰받는 경찰" 우리는 경찰로부터 신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law를 enforcement 하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 들이다. 분쟁의 현장에 출동하여 법의 잣대를 대면 그만이다. 후진국의 전형이 무엇인가? 법이 없는 게 아니라 있는 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법도 돈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강자들에 의해서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종업원과 주인이 다투다 언쟁의 끝마무리는 언제나 I will sue you (나 당신 고소할 거야) 다. 병원에서 수술 후 부작용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 병원 “sue 해버려”. 살면서 걸핏하면 sue (소송) 하겠다는 소리를 듣었을 땐 이 나라는 sue 하다 망할 거야 하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만들어놓은 법대로 살다 보니 매사가 원칙대로 움직이고 공평하고 언어, 문화, 피부색깔이 각각 다른 수천만명의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이 나라가 경이로울 만큼 잘도 돌아간다.
법 집행도 철저하게 약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집행되고 있다. 예컨대
child abuse (아동학대)
자녀의 훈육을 위해 때리는 것도 용납이 안 되는 사회다. 애들에게 손짓을 하다 자녀의 신고로, 학교 선생의 신고로 심지어는 이웃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혀 가는 한인들도 있었다. "내 새끼 잘못된 버릇 내가 아니면 누가 고친다는 얘기냐"라고 항변해 보지만 법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도 하나의 인격체이기에 신체적인 학대가 아닌 “말과 벌”로 다스리라는 것이다. 잘못했을 땐 경고를 주고 그래도 경청하지 않을 땐 다음 단계로 어떤 처벌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고 이를 엄격하게 실행하는 문화. 나도 이곳에서 애들에게 경고를 두 번이나 줬는데도 귀담아듣지 않아 끝내는 일주일간 tv를 못 보게 하는 벌을 (미국에서는 이를 ground 라 부른다) 준 적이 있다. 그 당시에 그들이 tv를 일주일 간 못 본다는 것은 상당히 가혹한 벌이었다. 물론 부모도 함께 일주일간 tv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racial discrimination (인종차별)
피부색깔이 달라도 우리는 모두 평등한인격체라고 법은 일러주고 있다. 우리같이 보잘것없는 이민자들도 어깨를 펴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엄격한 법 집행 덕이다. 어느 날 사업장에서 거래선 영업사원과 의견차이로 심하게 다투다 그 친구가 답답했는지 “우리 중간에 통역사를 두고 얘기해야겠다” 기에 “당신 이것 인종차별인 거야” 했더니 잘못했다고 5번이나 싹싹 빌면서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매달린다. 이를 그 친구의 회사에 문제 제기를 하면 바로 해고된다. 가끔 미디어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해프닝이 보도 돼지만 이 복잡한 사회에서 그마저 없다면 그것은 유토피아라고 불러주고 싶다.
Sexual harassment (성희롱)
나약한 여자들을 조롱하고 희롱하면 엄격한 잣대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법이 제대로 작동되기 때문에 여성들의 행동반경도 넓어지고 사회생활도 적극적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의 유리천장도 걷힌 지가 오래다. 아름다운 여성분을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것마저도 때와 장소를 잘 분간하면서 해야 한다. 듣는 상대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 자체가 sexual harassment 다. 심지어는 인형같이 귀여운 동네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도 아니 참으로 귀엽다고 한마디 하고 싶어도 상대방 부모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몰라 조심스럽다. 회사 높은 지위에 있는 상사가 여직원의 어깨를 다독 거리다 sexual harassment로 쫓겨나는 사례를 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child support (자녀 부양)
철없는 나이에 결혼하여 애를 낳고 기르다 애기엄마에게 모든 것을 떠 넘기고 종적을 감쳐버린 남자,
자식을 낳고 살다가 다른 여자에 눈이 멀어 부인과 자식들을 놓고 이혼해 버리는 남자 들
에게는 그 자식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법이 그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자식을 부양토록 하고 있다. 한때의 불장난 일지언정 법은 이들에게 관용이라는 게 없다. 일용직으로 일을 하든, 최저 임금의 노동일을 하든 현금이 아닌 체크로 받기 때문에 정부는 고용주에게 임금의 일정부문을 떼어 자녀 부양으로 납부토록 하고 있다. 나약한 여성들이 사회에서 희생양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single mom 이 남 부끄럽거나 감출만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은 당당하고 떳떳하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이따금씩 여자분들이 싱글맘이니 가격을 잘해달라고 부탁하면 호의를 베풀어 주곤 했다.
Privacy를 지켜줘야 하는 사회다. 이 부문이 살면서 많은 갈등을 느끼게 한다. 아니 적응하기가 싶지 않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의례히 궁금한 게
나이는 몇 살일까?
결혼은 했을까?
고향은?
학교는?
상대의 신상털이 부터 먼저 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대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이가 더 많으면 깍듯이 예의를 갖추려고
고향이 같으면 친근감을 더 할 수 있고
학교 후배면 내리사랑을 해주고파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다르다. 예의도, 내리사랑도 필요 없다. 지금 나와 대화하고 있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뜻이 같고 취향이 맞으면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즐기면 된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속삭이고, 서로 돕고, 매사를 서로 분담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한국처럼
경재권은 누가? 물건을 사는데 왜 나와 상의도 없이 결정했느냐
처가가 먼저냐 시집이 먼저냐?
왜? 나만 밥 짓고 집안 청소를 해야 하느냐?
그러나 그들은 배후자가 자기 돈을 어떻게 쓰던, 무엇을 위해 쓰던, 누구를 위해서 쓰던 일절 관여치 않는다.
처가와 시집의 우선순위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질문을 하면 무슨 의미 인지도 이해를 못 한다. 그들은 서로의 시간과 스케줄을 확인 후 최선을 결정하지 우리같이 자존심, 권위, 홀대 따위가 없기 때문이다.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존중해 주면서 대화로 일을 분담하고, 불편하면 언제든지 이의 제기를 하여 개선책을 찾는다. 상대방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선을 넘지 않고 존중해 주는 것이 privacy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