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이 결혼을 하면 양가 부모들의 상견례가 있고, 예물을 준비하고, 친척과 친지들을 초대하여 성대하게 아니면 조촐하게라도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집에 들어가는 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첫출발이다.
아들 녀석이 일 년 전에 파란 눈의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서 우리는 앞으로 결혼할 사이라고 소개해 주고 가기에 언제 청혼을 하려나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임신 팔 개월 된 만삭의 배불때기를 만들어 가지고 다시금 찾아와서
"엄마, 아빠, 손주를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 앞에서 아들도 당당하고, 여자 친구도 당당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황당할 뿐이다. 한국 같아서는 혼전임신이면 집안 망신 이라며 행여 누가 알까 두려워 쉬쉬 하련만. 거기에다 한술 더 떠서 배 속에 아기가 아들인지 딸인지 를 점춰봐야 한다면서 우리 집 앞마당에 있는 올리브 나뭇가지에다 커다란 풍선을 달아 매놓고 이 풍선을 터뜨려서
파란색의 색종이가 나오면 아들이요
핑크색의 색종이가 나오면 딸이란다.
풍선을 터뜨리기 전에 기념사진을 찍잖다. 엉겁결에 끌려나간 우리 두 부부는 하얀 이빨을 드러 내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진을 함께 찍었다. 사진 속에 네 사람의 모습이 그야말로 가관이다. 165 센티미터의 엄마옆에는 195 센티미터의 장신 아들이 서 있고 168 센티미터의 아빠 옆에는 180 센티미터인 파란 눈의 여자가 하이힐을 신고, 임신복이 아닌 꽉 쪼인 옷을 입고 서 있다. 말 그대로 우리 두 부부는 고목나무에 매미 격이다.
막대기로 풍선을 터뜨리니 파란색의 색종이들이 마치 스포츠 경기장에서 챔피원을 축하라도 하듯 쏟아져 내린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
손자가 곧 찾아오네요. 축하해요.
살면서 며느리가 임신하면 아들, 며느리에게 "축하한다"라고 부모가 인사를 하련만 그들이 우리를 축하하고 있다. 마음속으로만 "일의 순서가 이것은 아니잖아?" 하고 못마땅해하고 있는데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너무도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다. 미국 사람들은 아니 요즘 미국 젊은이들은 이렇게도 사는가? 아무리 격식을 중요시하지 않고 실용적으로 산다고들 하지만 이건 자기들 멋대로 사는 것 아닌가 싶다. 2개월 후에 아이가 태어나면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벌써부터 난감하다.
그들은 우리 집에서 3 일간 머물다 떠났지만 향후 결혼에 대한 어떤 계획도 언급이 없었다. 나 또한 마냥 행복해하는 두 사람을 보고서 선뜻 묻고 싶은 용기가 나지 않고 물을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이제는 성인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만
이게 흔히들 말하는 동거인가?".
우리 아들은 아기 엄마를 wife 가 아니라 girlfriend라고 부르면서 살 계획인가? “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면 자녀가 있을지라도 girlfriend 라 부른다)
시대의 흐름과 문화의 차이를 감안한다 할지라도 예의, 품행, 가풍 등에 대해 교육을 받고 자랐던 나와 와이프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엄마에게 전화해 2-3 주간 산모를 돌봐 달라는 부탁을 한다. 얄밉고 엉뚱한 데가 있긴 하지만 우리 집에 새 생명이 찾아온다니 거절을 할 수가 없다. 와이프는 2-3주 산모를 돌봐주고 나는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둘러보고 올 계획으로 우리는 시카고행 비행기를 타고 아들집을 찾았다.
두 남녀가 초라한 아파트 단지에서 어린애들 소꿉장난 식으로 살림살이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살겠지? 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시내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그것도 야경이 매우 아름다운 곳에서 제법 폼나게 살고 있어 적잖이 놀랐다.
“어쭈 제법인데?
파란 눈의 그녀가 깔끔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집안은 나름대로 품격이 있어 보였다. 취향도 와이프와 너무나도 흡사했다.
여보 당신 스타일이야
와이프는 실내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주위 사람들로 부터 모델하우스와도 같이 집을 꾸며놓고 산다고 칭찬을 많이 듣곤 한다.
파란 눈의 그녀가 우리 두 부부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다 말고 집안을 구경시켜주고 싶다면서 안방, 화장실에 이어 walk-in closet (붙박이 장롱?)을 열어젖히니 우리 눈을 어리둥절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 안에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사서 모아둔 소품들 신발, 핸드백, 드레스, 코트등이 명품으로 한가득 진열돼 있었다
여보야, 저 배불때기가 명품녀야
아들을 향해
야, 너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그녀가 웃으면서 걱정 말란다. 이젠 아기도 곧 태어날 터인데 이런 것들을 살 겨를이 없을 거란다. 유아교육도 준비해야 하고 우리 세 식구가 살 집도 장만해야 하니 갈길이 멀다나? 듣는 중 반가운 소리다. 불과 2달 전에 배불때기로 우리 집을 찾아왔을 때만 해도 철없는 두 남녀로 생각했는데 달리 보이기 시작하니 말이다.
저녁상이 나왔는데 된장국에 김치, 나물은 아니지만 음식 솜씨가 제법이다. 아들이 요리를 좋아해서 이 모든 게 아들이 준비한 식탁 이려니 하고 누가 요리를 했냐고 물으니 야채샐러드만 아들이 만들었고 나머지는 자기가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엘에이(L.A.) 집을 나서는 시간부터 만들기 시작했으니 오늘 7시간에 걸쳐 손수 준비한 음식 이라고 한다. 살다 보니 이제는 파란 눈의(서양) 며느리로 부터 밥상도 받아본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을 권하면서 저녁이니 커피보다는 차를 마시는 게 좋겠단다. 차도 우리를 위해 인삼차, 녹차, 메밀차 등 을 준비해 놨다. 오늘 저녁 식탁에서 thank you라는 인사를 벌써 몇 번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차를 마시면서 곧 태어날 아기, 아니 손주 이름은 지었냐고 물으니 우리더러 한국 이름을 지어 달란다. 아기 middle name으로 한국이름을 넣어주고 싶단다. 예상치 못했던 생각이다.
좋은 생각이다
그래 아기 last name (성)은 누구 것으로 할 거야?
"당연히 내 last name이지요" 하고 아들이 당당하게 대답 하기에
그렇다면 두 사람이 그렇게 합의한 거야?
그렇지 않아도 우리 두 사람은 내일 court(법원)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려고 예약을 해 놨어요
다음날 두 남녀가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더니만 판란눈의 그녀가
어머니, 아버지, 우리 결혼했어요
제 이름은 이제 April Moon이에요
무슨 얘기야?
판사 앞에서 우리 두 사람은 혼인선서를 하고 왔어요
서너 시간 외출을 하고 오더니만 부부가 되어 돌아온 아들과 며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