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해맑은 미모의 서양 여성.
코는 우뚝 섰고,
긴 속눈썹에 보름달 같은 둥그런 눈,
금발의 머리카락을 길게 떨어 뜨리고
내 앞에서 대화라도 함께 하면 아저씨가 돼버린 나는 괜스레 벅찬 감정을 느끼는데 딱히 무어라고 설명이 안된다.
하이웨이에서 젊은 미국 백인 여성이
선글라스를 쓰고,
은빛 색깔의 긴 머리를 모아서 (야구) 모자 뒤꽁무니로 빼내고,
하얀 어깨살을 드러내 놓고,
빨강 색깔의 오픈카를 몰고 내 옆을 지나가면 영화 속에 한 장면이 연상돼 나도 모르게 내 자동차의 가속 페달을 밟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나란히 같이 달려 보기도 한다.
하얀 피부에 구슬 같은 눈동자의 서너 살 돼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장난감 가게에 진열된 바비 인형이 진열장에서 뛰쳐나와 돌아다니기라도 하는 듯 착각할 정도로 예쁘고 귀엽다.
우리 조상이 서양에 뿌리를 내렸다면 나도 저토록 바비인형과도 같은 어여쁜 딸아이를 가질 수도 있으련만 하고 허황된 꿈을 꿔보기도 하고 조물주는 왜 서양 사람들에게 예쁜 얼굴, 커다란 키, 좋은 머리 이 모든 것을 다 주셨을까 하고 불평도 해본다.
미모의 서양 여성들에 대해 그토록 죽고 못살던 예찬론이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퇴색해 가는 나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직장에서 업무로, 비즈니스로 의견 충돌이 몇 번 있었는데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화가 나거나 본인 뜻대로 일이 잘 안 풀리면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 소리 지르고,
* 손에 잡힌 물건도 집어던지고
*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면
틀림없이 맹수와도 같다.
소름이 돋는다. 부모도, 친구도, 어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참하고, 온순한 우리 한국 여성분들을 생각하면 착한 정도가 아니라 천사에 가깝다고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화가 나도 장소와 상대방에 따라 자신의 분을 삵이고, 그도 감당이 안되면 소리 없이 조용히 혼자서 눈물을 훔치는 게 한국의 여인상이다. 옛날에는 울고 싶어도 눈물을 보일 수 없어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잠자리에서 옷깃을 적셨던 어머니는 훗날에 가슴앓이로 병을 얻어 고생했다는 얘기는 서양 여성들과 비교하니 착하다기 보다는 바보 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곳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세월이 많이 흘러 자식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다 보니 그들의 결혼 상대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집 새로운 식구는 누가 들어올까? 한국인? 동양인? 서양인? 흑인? 그래도 왠지 히스패닉이 올 가능성은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주위에서 히스패닉과 결혼한 사례가 흔치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한국에서와 같이 학벌, 집안 배경, 직장 따위는 따질 겨를이 없고 피부 색깔이나 출생 성분(국가)이 더 큰 관심사다. 주위에서 어쩌다 한국 며느리를 맞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참 잘됐네요, 축하해요”라고 인사한단다.
아들들이 여자 친구가 있는지 궁금해도 다그쳐 묻지를 못하고 있다. 오랜만에 집을 찾아온 자식들 인지라 그들이 직장생활에 만족하고 있는지, 옛 친구들과는 지금도 자주 소통하고 있는지, 돌아오는 추석에는 가족모임을 어디서 무엇을 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서 얘기한다. 여자 친구가 있어 부모에게 소개할 때가 되면 오죽이나 잘 알아서 알려줄까.
하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너의 국민학교 동창이 지난달 결혼했는데 엄마, 아빠가 초대받아서 다녀왔다고 넌지시 한마디 던지고선 혹시라도 무슨 얘기가 있을까 하고 귀를 곤두 세운다.
“나는 한국 여자와는 결혼 안 할 거야”
뜻하지 않는 폭탄선언에 나는 아내의 얼굴을 먼저 처다 보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순간 분위기 반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 그러면 여자 친구라도 있니?”
“아니요. 생각이 그렇다는 거예요”
아내가 끼어든다
“야! 너 서양 여자들 만만치 않아. 얼굴만 예쁘지 살아보면 골치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냐. 결혼은 너 인생의 중차대한 결정이니 잘 생각해”
이제는 아들이 당황해한다
“아빠도 같은 생각이야?”
“나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면 아무래도 괜찮아”
허지만 나는 엄마를 빌어서 왜 한국 여자였으면 좋겠는가를 설명하기 시작하고 있다.
“ 너의 와이프도 우리 가족이니 다 같이 모이면 오손도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어울려야 하는데 엄마 아빠가 영어가 짧아 속 깊은 얘기를 할 수가 없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기 때문 이란다”
그렇게 긴장된 시간이 지나가고 난 후에 아내는 나를 향해
“당신도 한국 며느리를 원하는 게 아니냐? 왜 좋다, 싫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나에게 총대를 지우지?”
“여보. 아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시간을 갖고 얘기를 계속해봅시다”
이제야 우리 주위에서 자녀들을 결혼시켰던 사람들이 가시권에 들어와 그 집 며느리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시부모와는 잘 어울리는지, 손주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 진다.
아내가 미세스 김 내 둘째 아들 얘기를 꺼낸다. 중국계 여자와 결혼했는데 아들이 밥 짓고, 청소하고, 직장 나가고 마치 머슴처럼 살고 있다나요? 아들만 보면 내가 낳아서 키웠던 새끼가 맞는지 의심이 간다면서 그 중국년은 집에서 아무것도 않고 공주처럼 산다지요?
여보!. 그 친구 장가 잘 간 것 같아. 모르면 몰라도 그 친구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일거야. T.V. 드라마도 안 보셨나요? 사랑하는 연인에게 청혼을 하면서
“자기야 나와 결혼해줘, 평생 동안 자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공주처럼 받들어 줄 거야”
미세스 김 내 둘째 아들은 연애할 때 한 언약을 몸소 실행하고 있잖아요. 왜 남의 자식이 그렇게 하면 눈요기가 되고 자기 자식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거요?
미세스 김 내 둘째에게 엄마가 했던 얘기를 해 보세요.
“우리 엄마가 아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할 거요”
그래요? 그렇다면 닥터 김 며느리는 어떻게 생각해요?
큰 며느리로 미국 여자가 들어왔는데 언젠가 아들 집을 찾았더니 며느리가 정색을 하며 자기들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달라면서 앞으로는 예약 없는 방문은 허락할 수 없대요. 그리고 주말에는 자기들도 휴식이 필요하다면서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하니 결론은 오지 말라는 거지요.
참으로 답답들 하십니다. 자식이 커서 자기 짝꿍을 만나 깨가 쏟아지게 잘 살고 있는데 왜 찾아가 끼웃거려요? 왜? 미국년이라 밥이라도 해 먹고 있나 궁금해서요? 그 집 아들은 이제 빵이 밥보다 더 맛있다고 할 거요. 잊었나요? 우리 신혼 때 친정 엄마 나 시어머니가 우리 집을 들락 거리면 어떠했나요? 우리 둘만의 시간이 최고였지요. 이제 결혼해서 자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 궁금해하지도 말고 그냥 옆에서 지켜보라고 하세요.
우리 부부는 찹찹한 심정에 서로 위안이라도 받고 싶어
“여보 우리가 최선을 다해 키워놓은 자식이니 아들을 믿고 기다려 봅시다. 며느리가 서양 여자든 동양 여자든 우리 아들이 선택한 사람이니 그 선택이 최선, 최상이라고 믿고 싶어요.”
설마 흑인 며느리가 들어오는 일은 없겠죠? 와이프가 자조 섞인 어조로 혼자서 중얼거린다. 내가 말했잖아요. 아들을 믿어 보자고.
그러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났는데 아들 녀석한테 전화가 왔다. 주말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집으로 오겠단다. 그동안 별일 없었느냐고 안부도 묻지 않고
“한국 여자니?”
서둘러 묻는다
“아니요, 미국 여자입니다”
궁금하다.
머리카락 색깔은 금발일까?
눈 색깔은 파란색?
키는?
성격은?
설렌다
첫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정도면 괜찮을련지
내 흰 머리카락은 염색을 하고 만나야 하는지
언젠가 아들들이 했던 얘기가 떠 오른다. 자기들은 결혼 상대의 부모가 누구든, 어떻게 살든 그런 것들은 게의치 않고 그냥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결혼한다고.
토요일 오후에 와이프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들이 집에 왔노라고.
“ 그래 어떠하던가요?”
“ 일찍 귀가하여 당신이 직접 보시구려”
집에 도착하여 벨을 눌렀다
예전 같으면 와이프가 반기면서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구려 해야 하는데 파란 눈에 키가 큰 미국 여자가 문을 열어 주면서
“ 안뇽 하..세…요? glad to meet you Mr. Moon”
“ 그래요. 반가워요. 벌써 한국말을 배우셨네요. 우리 제임스가 좋아하는 숙녀가 참으로 아름다우시군요. 당신 집처럼 편안하게 머무르세요.”
궁금한 게 많았는데 막상 마주 보니 물을 게 없다, 나이는, 학교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 이냐고 묻는다면 프라이버시한 질문 같고 마치 면접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우리 집에 처음 찾아온 손님, 아니 미래의 며느리에게 아무런 얘기도 않고 있노라면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 것 같아 조금은 답답하다.
“제임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세요”. 그게 전부였다.
다음날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같이 하는데 제임스가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로 결정했다”라고 통보를 한다. 드디어 파란 눈의 며느리가 우리 가족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런 기분 도대체 뭐지?
분명 우리 부부 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기대와 염려가 파노라마와 같이 스쳐간다
조금은 긴장했는지 나도 모르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
허지만 내가 순간 무엇인가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제임스가 내 품에서 자라 한국 새끼인 줄 알았는데 줄곧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주위에 친구들이 모두 미국애들이라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제임스가 왜 맘에 들 던가요?
“He is handsome and smart, 멋있고 머리가 좋잖아요”
제임스는 재키의 어떤 점이 가장 좋았어요?
“ She is so lovely and takes cake of me. 재키는 매우 사랑스럽고, 항시 나를 잘 보살펴줘요”
다시 한번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요.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