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며느리와의 오해와 진실

첫 만남과 당혹

by 문 내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 녀석이 부모님 집을 다녀 가겠다고 전화가 왔다. 비행기로 5시간 반 거리라 일 년에 기껏해야 두세 번 정도 만나는데 의외다. 출장차 잠깐 얼굴이라도 보고 갈 계획 이러니 했는데 뜻밖에 반가운 소식을 알려왔다. 여자 친구를 소개해 주겠단다. 살면서 아들들에게 사귀는 여자 친구는 있는지, 결혼은 언제쯤 계획하고 있는지를 물어본 적이 없다.


여자 친구는 한국계 2세인데 한국말을 못 한단다. 하필이면 한국말을 못 하는 여자 친구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다. 왜냐면 우리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젊음이 들을 보면 싱글족 혼밥족 하면서 결혼에 미온적이고 T.V. 를 보면 “나 혼자 산다, 돌싱 맨”이라는 프로그램 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으니 결혼하겠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


약속된 장소를 찾아가면서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 그녀의 성품은?

@ 그녀의 외모는?

@ 어떤 환경에서 자랐을까?


식당에 도착하니 아들 녀석과 함께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 아가씨가 악수를 청하면서

“ Hello, Mr. Moon, nice to meet you. My name is April”

나도 영어로

“Glad to see you”


며느리와의 첫 대면은 문자 그대로 “당혹”이었다. 하마터면 놀라 뒷걸음질 할뻔했다. 동네 이웃들도, 사업장의 손님들도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데 그녀의 첫 일성이 “hello “ 라니. 식당을 찾아가면서 마음속으로는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한국말로 하겠지 했는데 뜻밖이다.


그렇게 “당혹”으로 만난 우리 네 사람은 대화도 없이 각자 자기 음식만 먹고 있다. 짧은 영어로 무슨 재미나는 얘기를, 아니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재치 있는 얘기를 한다는 게 나에게는 처음부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외모는 분명 한국 여자인데 내 앞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 이분이 미국 여자라니 믿기지가 않다.


아마도 오늘 점심식사는 그녀가 준비한 것 같아 보였다. 영어가 짧아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녀가 아들에게 오늘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물으면서 솔직히 대답해 달라고 하는 것을 보니 남자 친구의 부모님 입맛에 맞았으면 하는 눈치다. 아들 녀석에게 묻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내가 “음식 맛이 별품 이군요” 하고 대답해 버렸다. 내 진심 이라기보다는 벌써 그녀의 눈치라도 보는듯 그녀의 결정을 칭찬해주고 싶어 하니 말이다.


삭사를 마치고 문밖으로 나와서는 후식(desert)을 먹으러 가자면서 인근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핑크베리” 로 안내한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들었지 언젠가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매우 기뻐하는 나의 표정을 본 아들이 “아빠가 핑크베리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April 이 사주고 싶다” 고 했단다. 우리 둘 사이는 벌써 점수를 따고 싶어

- 음식 맛이 별품이라고 칭찬을 주저하지 않고

- 핑크베리 아이스크림을 찾아서 사주고


한국계 2세들 중에는 한국말을 못 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런 사람이 우리 집 며느리가 될 줄이야….. 친구가 며느리를 맞았는데 한국말이 서툴다면서 어느 날 저녁은 며느리가 서재에 있는 자기를 찾아와

“아버지 밥 먹어라” 하기에 “아버지 식사하세요”로 바로 잡아 줬다고 한다. 그래도 그 친구의 며느리는 절반은 한국 며느리라고 불러주고 싶다.


@. 첫 만남에서 무엇을 물어볼 수 있는지?

@. 물어서 결례가 안될는지?

@. 물을 수 있는 게 어디까지 이고 물어서는 안 되는 선이 어디까지 인지?

그래도 아들 녀석한테는 무례한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우리 부부의 역할은 “아가씨가 좋아하는 찰스의 엄마 아빠는 이렇게 생겼다오” 가 전부였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자식들을 결혼시키는 것도 처음에는 서툴고 낯설기만 할 텐데 이곳 미국에서 그것도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며느리를 맞아들이는 우리는 이렇게 시작을 한 것이다.


미국 며느리도 뜻밖이지만 결혼식 또한 조금은 이색적이다. 미국이 아닌 크로아티아에서, 결혼식은 성당에서, 피로연은 요트 3대를 빌려 일주일간 크루즈 여행이었다. 우리 가족 전용으로 한대, 사돈 내 한대, 그리고 신랑 신부 친구들 용으로 한 대씩 나누어 타고서 밤에는 술 마시고 노래하고 낯에는 스노클링, 카누잉, 수상 오토바이 제트 타기, 관광 등으로 70-80 명 되는 하객 전원이 마치 “우리 에게는 내일이 없다” 고 즐기고 왔으니 이것도 미국 며느리 덕택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미국 며느리와 첫 만남부터 결혼식 까지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롤러코스터 그 자체였다. 이제부터는 일상으로 돌아가 한 가족으로 살아야 하는데 어떤 파노라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는지 사뭇 궁금하기만 하다.


결혼식이 끝나고 한 달여 지나서 아들 내 부부를 집으로 초대했다. 여기서는 초대라는 말이 더 걸맞다. 한국 같이 보고 싶을 때면 언제나 찾아가고, 어디 다녀오는 길에도 들르곤 하는 사회가 아닌지라 초대라는 형식으로 저녁을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마국 며느리를 맞아들인 주위 지인들을 보면 무작정 찾았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하고, 반드시 예약을 하고 찾아 달라는 주위를 받기도 했단다.


저녁 식탁에 앉아서 식사하는 그녀의 입은 그래도 한국 여자다. 차려준 음식들이 맛있다면서 잘도 먹는다. 그러면 그렇지 엄마 아빠가 한국인 1세인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어? 그러다가도 밥상에서 우리의 대화 내용을 아들이 며느리에게 영어로 통역을 해주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금 헷갈린다. 통역을 대동하고 식사를 하는 가족모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바로 오늘 우리 집에서 그런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단다. 헤어지면서는 내게 다가와 허그도 하고 간다. 그동안 와이프와 두 아들 녀석들과 허그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또한 익숙해져야 하는 새로운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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