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노 부모는 육십이 넘은 자식을 애(아기)라 부르고 육십이 넘은 부모 또한 삼십 대 자식을 옛날 품 안에 어린애처럼 “애야, 운전 조심해라”
이처럼 부모와 자식 간의 극성맞은 염려와 사랑으로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상대에 대해 무한한 믿음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혼기가 다된 자식들의 결혼 문제도 이와 크게 다를 것 같지가 않다. 부모는 자식에게
“결혼해야지?”
“늦기 전에 결혼해라”
자식들에게 결혼을 다그치면, 부모가 성화를 대면 결혼을 서두를까? 부모는 어느 정도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결혼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자식들을 다그쳤으니 그냥 흘리지는 않겠지.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려서라도 고민하겠지 하면서 뭔가 진전을 기대하는 심정 에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으로 참견할 수 있는 선은 여기까지였으면 좋겠다. 지나친 자식 사랑 때문에 수많은 젊은 남녀가 사랑앓이를 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것도 타협의 여지가 있는 게 아니라 맞춤형을 요구하는 어리석은 부모의 집착은 결국 젊은 남녀의 사랑 훼방꾼이 되고 만다.
젊은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는데 조건이나 이유가 없단다.
@ 사랑하는 이와 시간을 함께하면 그냥 행복하고
@ 나를 쳐다보고 웃는 그이의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마치 토네이도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느껴지고
@ 잠자리에 들면 그녀의 속삭임이 귓전에 맴돌고
@ 하루하루 생활이 예전과 다를 바 없는데도 주위 사람들은 요사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고 묻곤 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에 부모는 결혼 조건이라는 잣대를 드리 대면서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집어던진다. 이유도 황당하다
* 종교가 달라서
*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마마보이라서
* 상대방의 부모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우리와 너무 기울어서
결혼을 반대한단다. 누가 누구와 결혼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자식은 부모에게 이해를 구걸하지도 않고 반항하지도 않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든 걸 포기하고 예전과 똑같이 살아갈 수 있다.
부모의 세대는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를 설득도 해보고, 시간을 갖고 대화도 시도해 보지만 지금 당신의 자식들은 옛날의 당신과 같은 젊은이가 아니란다.
당신은 학교를 마치면 취업을 하고, 취업을 하면 결혼을 서두르고, 그러고 나면 애를 낳아 기르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으나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자식은
@ 꼭 결혼을 해야 하는지
@ 결혼해서 애를 갖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고 있는데 부모가 나서서 참견을 하니 그럴 바에는 그냥 이대로가 좋단다.
자식들로부터 언제나 좋은 소식이 있을까 하고 기다리다 시간이 많이 지나 혼기를 놓치면 부모의 결혼 잣대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결혼만 해줬으면 하고 먼발치서 가슴앓이를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당당하고, 높은 콧대는 찾아볼 수 없고 풀이 죽은 부모는 세상사는 재미가 없다고 한숨을 쉬는가 하면
친구들 모임에도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 기피하고 있으니 가련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혼밥족, 싱글족, 이혼족이 많아졌다고 위안이라도 주고 싶지만 그래도 내 새끼만은 결혼을 해야 한다니 어떤 말인들 소용이 있으리오?
왜 젊은 남녀의 사랑에 참견했었냐고 물으면
+ 내가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 부모인 내가 지켜줘야 하니까
+ 결혼은 양가가 합하여 새로운 가족이어야 하니까
그들도 이제는 성인이 됐으니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믿고, 존중해주고 곁에서 묵묵히 지켜 봐주는 그런 부모가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할 줄 아는 부모가 아닐는지?
똘똘하고 현명한 젊음 이가 된 당신 자식들은 되려 돌부처처럼 변하지 않고 저만치 뒤에 처져 있는 부모를 오히려 걱정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