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500킬로미터 북쪽에 Redwood라는 국립공원이 있는데 이는 세계 10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 공원에는 천년송(천년이상 자란 나무)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하늘을 찌르듯이 키가 크고 두세 사람이 겨우 아우를수 있는 굵은 나무들은 감탄을 연발하기에 충분하다. 숲속을 걸으면서 그 웅장한 자태에 놀라 "우와"하면서 한참을 걷다보면 나 스스로 "이제는 우와 소리도 안 나오네" 할 정도다. 거기에는 9그루의 나무가 함께 자라 밑둥은 하나가 되었고 위에는 9그루가 서있다. 이 나무를 tree of mystery 또는 Cathedral tree 라 이름 하였다.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 앞에 새겨있는 문구를 읽는다.
"This is their temple, vaulted high
이곳은 지붕이 높은 성지라네
And here we pause with reverent eye,
우리는 놀란 가슴에 할 말을 잃고
with silent tongue and awe-struck soul,
경건하게 쳐다보며 잠시 멈추었노라
For here we sense life's proper goal
우리 인생에서 찾고져 하는 것을 음미하면서
To be like these, straight true and fine, 이 나무들과 같이 참되고 고상하게 되어
To make our world, like theirs a shriner 이 세상을 그들과 같이 성지로 만들고 싶다.
Sink down, Oh traveler on your knees, 행자여 여기에 무릎을 꿇고 앉아라
God stands before you in these trees, 주님이 이 나무사이에 있는 당신 앞에 계시나이다
환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집안에서 자랐다가 우리 집에 새 식구가 된 며느리나 사위는 이곳에 서있는 9그루 나무의 어린 시절과 같이 한 지붕 아래에 한데 묶여 있으나 마음은 늘 따로 였을지 모른다. 이 집안에 이방인처럼 모든게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그이도 결혼 전에는 눈에 콩깍지가 씌어 모든 것들이 마냥 아름답고 멋있어 보이기만 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는 예전에 안 보이던 것들이 하나씩 껍질을 벗고 드러나면서 서로 다투고 예전에도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놀래는 자신에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거기에다 시집이나 처갓집 어르신들까지 신경을 써야하니 무엇하나 쉽지는 않다. 예전과 같이 무게 잡는 시어머니나 시아버지가 없는 세상이라지만 아무려면 자기 부모만 할까? 늘 조심스럽고 눈치도 봐야하고 때로는 마음에 우러나오지도 않지만 안부 전화까지 의무적으로 해야하니----
그래도 한국 시부모는 새 며느리가 맘에 들고 사랑스러우면 내 딸이라고 부르면서 사랑의 표현울 아낌없이 할 수 있으련만 파란 눈의 며느리를 맞이한 우리는 그런 여유나 정을 주기가 싶지만은 않단다.
며느리와 시간을 함께 보낼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때면
행여 불편한 것은 없는지
음식은 입에 맞을는지
대화중에 결례는 없었는지에 더 신경이 쓰인다
한국에서와 같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허물없이 살고 싶지만 서양문화의 결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신경이 쓰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우리 집을 찾는 날이면
집안에서 된장국 냄새라도 날새라 창문을 열어젖혀서 환기를 시키고
반바지에다 셔츠 차림의 편안한 복장에서 나름 정중한 복장을 하고 그들을 맞이하곤 한다.
벨을 누르고 집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며느리를 보면
"애야 어서 오너라"가 전부가 아니고
와이프 뒤편에 서서 파란 눈의 며느리로부터 허그 순서를 기다리곤 한다. 눈도 마주쳐줘야 하고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도 빠뜨리면 안 된다. 그들은 마음과 마음으로 인사하는 것보다는 반드시 입으로도 반갑다고 확인을 해줘야 하니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부엌에서 살갑게 대화를 하면서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찌개를 끓이면서 간이 맞는지 맛도 보고 무엇을 더 첨가해야 하는지 상의도 하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니라 어머니와 딸이 돼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집 풍경은 크게 다르단다. 시어머니가 부엌에서 만드는 음식이 파란 눈의 며느리에게는 늘 신기하기만 하고 보지도 듣지도 못한 식재료들 “.멸치젓갈, 들깻가루, 된장”들에 마치 외계인처럼 놀라기만 하니 말이다.
오늘 저녁상에는 김치, 소갈비찜, 잡채, 생선 매운탕 등으로 진수성찬이다. 시어머니는 파란 눈의 며느리 입맛에 뭐가 맞을지 몰라 이것저것을 만들어 식탁에 올려본다. 온 가족의 눈은 그녀의 숟가락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조기 매운탕에 있는 생선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조기라는 영어 단어를 몰라 그저 fish라고만 대답한다. 무슨 고기 인 줄도 모르고 먹을리가 만무하다. 그나마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가 너무 매워 혀를 댓 자나 내밀고 부엌으로 뛰어가는 며느리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는 당황 그 자체다. 이제는 잡채를 권해본다. 그 둥그런 눈을 크게 뜨고 미소짓는 며느리의 얼굴을 보면 "다행이야" 하고 안도를 한다. 먹을 게 없었는지 아니면 입맛에 딱 맞았는지 잡채 한 접시를 개눈에 눈 감추듯이 감쪽같이 먹어 치운다. 더 먹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please (부탁해요 어머니)"가 아니고 "sure (당근이죠)"하고 기뻐하는 파란 눈의 며느리. 우리는 이제부터 며느리가 먹을 수 있는, 좋아하는 메뉴를 하나씩 하나씩 모으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집 밥상의 메뉴가 예전에 비해 달라져 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아니 며느리가 우리 집을 방문하는 날이면 시어머니는 아침부터 부엌에서 일손이 바빠지고 있다. 며느리를 위해 잡채, 생선 전, 김밥을 만드느라 부엌이 한가득이다. 오늘은 과식을 하여 허리띠를 풀어야겠다는 소리를 듣는 시어머니의 얼굴에는 피로보다는 내 딸로 다가오는 며느리에 흐뭇해하고 있다. 식탁에 앉으면 그녀는 먹을것이 없어 밥상에 구경꾼 이었던게 엇그제 였는데 이제는 함께 즐기면서 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저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며느리에게 너가 좋아하는 음식이 남았는데 싸 주라냐고 물으면 주저없이sure(당근이죠) 한다.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우리 부엌에서 며느리 혼자서 요리를 하고있다. 이 집에 주방장은 어디 갔기에 너가 우리 부엌에서 혼자서 요리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나를위해 너무 고생 하셨다" 면서 오늘은 어머니에게 보답키 위해 시장을 봐다가 손수 요리를 하고 있단다. 메뉴는 야채 샐러드에 국수 요리를 하였는데 제법이다. 맛있어 너무 개걸스럽게 먹고 있으니 나를 처다보며 여분의 음식이 있으니 천천히 즐기란다.
잊혀지지 않는 또 다른 밥상은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 왔는데 와이프는 약속이 있어 외출중이었고 며느리는 애를 돌보고 있었다. 부엌으로 가서 와이프가 차려놓고 간 밥상을 맞이하려고 식탁에 앉았다. 며느리가 이층에서 황급히 내려 오더니만 “아버지 잠깐만, 5분만 기다리셔요” 하고서는 내 밥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가 스팀으로 밥을 데워 가지고 와서 ”이제 됐어요, 드셔 보세요“ 한다. 마이크로웨이브가 아니고 스팀으로 밥을 데워주는 며느리를 처다보며
“놀랍구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어머니께서 이렇게 하라고 일러 주신거야?
아니요, 이렇게하면 맛이 더 좋을것 같아서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부엌에서 정겹게 요리하고 있는 모습을 볼수있는 한국 가정은 아니지만 대신 시어머니 밥상과 파란눈의 며느리 밥상이 어우러져 우리 식탁은 동서양을 넘나 들면서 Redwood 공원에 Cathedral tree 의 밑둥처럼 하나가 되어가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