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며느리 April은 결혼 전에 각각 동거자가 있었다. 아들은 Bella라는 숫 사냥개, April 은 Jenny라는 암 고양이.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살았으니 얼추 7년간 동거를 한 셈이다. 결혼하면서 결국은 두 쌍이 (어른들 한 쌍, 애완동물 한 쌍) 한 집에 살게 됐다.
서로 대화도 하고, 함께 운동도 하고, 일상의 생활 중에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개와 고양이들은 사랑받는 가족의 일원이다. 나도 개를 기를 적에 모임에서 귀가시간이 늦어지면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 저녁도 먹이고, 대 소변도 누여야 할텐데 하고 초조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치 두세 살 된 어린애 하나를 기르는 것과 맞먹는다.
며느리가 데리고 온 고양이 Jenny는 털이 없는 스핑크스다.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 E.T 와도 같아 원시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고 주름이 많은 피부에 윤기마저 흘러 "세상에 이런 고양이도 있나?" 했다. 털이 없는 대머리에 커다란 둥근 눈은 나를 노려보는 듯하여 처음 만났을 때는 다소 경계심을 갖기도 했다. 밖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추운 겨울에 만났던 터라 얼마나 추울까 염려했는데 나름 보온을 유지코져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진 집에서 종일 내내 웅크리고 있다.
며느리 April은 처녀 때 사랑하는 지금의 남편과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선
"Jenny냐 나는 그 사람이 좋아. 결혼하고 싶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하고
인생상담도 했을 테고, 언짢은 일로 다투고 집에 돌아올 때는
"Jenny냐 그 사람은 이게 나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하고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대화를 하며 살았을 것이다.
서로 의지하며 산다는 것은 한 가족이었기에,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나를 가장 잘 헤아려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며느리 April이 우리 집에 들르면 나는 그녀의 자식 "Jenny 도 잘 있느냐?"라고 묻곤 한다. 오늘도 저녁 늦게까지 놀다가 9시 넘어서야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한 시간여 지났을까? 아들이 전화해서
엄마, 우리 집에 기르던 Jenny 가 조금 전에 갑자기 죽었어
왜?
모르겠어. 우리가 집에 들어오니까 Jenny가 식탁 밑으로 내려가더니만 토하고 신음하다 죽어 버렸어.
지금 April 이 울고불고 난리야
당황한 아들은 시체가 집안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고양이를 서둘러 주차장 밖으로 끌어내고 고양이 집, 고양이 밥그릇, 옷가지 등을 쓰레기 통에 내다 버렸다. 우리는 그 사이에 인터넷에서 고양이 시체를 24시간 받아주는 곳을 찾았다. 다행히 그들이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들이 전화했더니 두 시간 만에 Jenny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Jenny의 죽음에 며느리가 이토록 슬퍼하는 또 다른 이유는
@ Jenny 가 그동안 아팠을진대 이를 살펴보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 숨을 거두기 전에 엄마에게 작별인사라도 하려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나를 기다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나의 어머님이 나를 기다리셨듯이. 투병 중이시던 어머니께서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나를 만나고 나서 다음날 바로 돌아가셨던 적이 있었다. 슬피 우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시던 큰어머님께서 “너의 어머님이 여태껏 너를 기다리셨나 보다” 하고 나의 등을 토닥거려 주셨다.
일주일 후에 우리 집에 다시 찾아온 며느리를 보고서 Jenny 얘기를 해야 하나 망설였다. 그래도 위로의 말은 해줘야겠다 싶어
“Jenny가 갑자기 곁을 떠나서 많이 슬프겠구나? 우리는 만났다가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하니 잘 극복하길 바란다."
며느리의 눈가에는 벌써 눈물이 촉촉해져 있다.
아들에게 April이 잘 극복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충격이 너무 큰 것 같아요. 처녀 때부터 함께 살았으니까요. 며칠 전부터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고 있어요.”
베이비 Jenny를 입양해 엄마와도 같은 정성으로 키웠을진대 갑작스러운 죽음은 남편의 위로로도 충분치 못했을 것이다. 감당키 어려운 슬픔의 충격을 극복키 위해 스스로 정신과 의사를 찾았다는 게 서양 며느리에게서나 있을법한 일이다. 한국 같아서는 정신과 하면 행여 누가 알세라, 행여 누가 볼세라 꼭꼭 숨기고만 싶었을진대 그들은 살면서 필요로 하는 치료 요법 중의 하나로 생각하니 말이다.
이별도 시간이 지나고나면 잊혀져 돌이키면 "그래 그때는 많이 슬펐어" 하고 얘기할 수 있게 된다. 서너 달 지났을까? April도 많이 회복됐다.
이번에는 아들이 데리고 온 Bella 가 늙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다리를 절뚝 거린다. 오랫동안 함께 같이할 수 있어 보이지가 않는다. Jenny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던 며느리가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다.
Bella 가 몇 살이지? 아들에게 물었다.
10살 이에요. 사람으로 치면 80살 이지요
너무 늙었구나.
사냥개는 일반 애완용 견에 비해 수명이 짧대요
지난번 Jenny의 죽음으로 April의 충격이 컸으니 죽기 전에 Bella를 shelter로 보내는 게 어때?
저도 April에게 똑같은 얘기를 했지요. 그랬더니
"당신도 내가 늙어지면 버릴꺼야?"
하고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사랑스러운 가족의 일원이라고 하면서 헤어짐이 두려워 Bella를 shelter로 내 보내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지 않았나 싶다.
며느리는 슬픔을 잘 극복하고 지금은 두 아들을 돌 보느라 잠시라도 엉덩이를 어디에 붙일 겨를이 없이 바쁘게 잘 살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