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정도 먹어 보이는 미국 여자 어린이가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수영을 즐기고 있는데 수영장 주변에 있는 우산 밑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아빠가
“Jenny, let’s back home 제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Daddy, five minutes more 아빠 오분만 더”
“Okay 그렇게 하려무나”
그리고 오분이 지나니까
“Jenny, time’s up 제니 시간이 다됐어”
“Daddy, three minutes more pleas, please, please 아빠 삼분만 더, 제발 부탁해요 “
“No, I will give you five counts 안돼, 다섯을 셀 때까지 빨리 나오너라”
아빠는 다섯을 세기 시작하고, 제니는 계속해서 아빠 부탁해요 하고 가엽게 간청을 한다. 마침내 다섯이 되니까 제니는 마치 용수철처럼 물속에서 뛰쳐나온다. 놀랍다. 아빠 뒤를 따라가는 제니의 표정을 보니 아무렇지도 않고 괜찮다. 거기에다 친구들에게 다정하게 인사까지 하고 간다.
우리 집 아들 용만이가 오버랩된다.
다섯을 세는 동안 용만이도 제니와 똑같이 삼분만 더 놀다 가겠다고 하면서 여전히 물속에서 나오지 않고 나에게 따지고, 불평을 한다
친구들과 더 놀고 싶은데 왜 나만 집에 가야 해?
집에 가도 재미나는 일이 없잖아?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인 끝에 용만이도 물속에서 마지못해 나오기는 했지만 나를 따라오는 표정은 제니와 사뭇 비교가 된다
눈을 내리깔고
입은 삐쭉이고
고개를 떨구고
따라오면서 계속 중얼 거린다.
어른이 된 그 용만이가 결혼하여 세 살배기 아들 윌리암을 데리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저녁도 함께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8시가 돼 자기 집에 가야겠단다. 용만이는 그이의 아들 윌리암을 부르더니
“William, it’s a time to go home 윌리암, 집에 갈 시간이 됐다.”
tv 앞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윌리암이
“Papa, I want one more play please 아빠 프로그램 하나만 더 보면 안 돼요?”
“Okay, this is the last play. promise me? 좋아요. 이게 마지막이야. 약속을 지켜줄 수 있겠니?”
용만이는 아들 윌리암과 악수를 한다.
윌리암은 패밀리룸에서 tv를 계속해서 보고 나는 리빙룸에서 용만이와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십 여분이 지났을까? 윌리암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만
“I am done 저 집에 갈 준비됐어요”
놀랍다
나는 그들을 배웅하면서 용만이의 어릴 적 수용장 얘기와 오늘 저녁의 윌리암 얘기를 하면서 세 살 먹은 아니 세 살 육 개월 된 어린애가 어떻게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
용만이 처럼 애걸하지 않는지?
너무도 많이 다른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더니만 용만이 왈
“용만이 부모는 정이 많은 한국 사람 이어서 생떼를 썼을 것이고, 윌리암 엄마는 미국 사람 인지라 약속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지켜야만 한다는 교육을 받아서 아닐까요?”
글쎄, 정이란 약속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가는데 필요악인지?
내 마음을 헤아려 주고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슬픔을 달래주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정은
그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아름다운 것.
@ 친구가 약속 시간에 삼십 분 늦게 나타나도
@ 동료들과 친선 축구경기를 하다 친구의 실수로 우리 팀이 졌을 때도
“그놈의 정만 아니었다면 너는 이미 잘린 건데” 하면서 정으로 나를 다스리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법, 과학, 실용주의가 뿌리 깊은 이곳 마국에서 정에 의지하고 사업을 하다 끝내는 모든 것을 잃고 지금은 행방마저 묘연한 지인도 있었단다.
그이는 주유소 사업을 하면서 쿠바 출신의 종업원을 고용했는데 오랫동안 정이 들어 마치 막내 동생처럼 아니 자식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고향 쿠바를 방문할 때면 종업원 부모님께 드릴 선물 꾸러미도 준비해주고 금일봉도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다 어찌하여 헤어지게 됐는데 바로 그 종업원이 미국 국세청에 사업 비리를 신고하고 노동청에는 임금착취라는 프레임을 씌워 소송을 했으니 이를 감당치 못한 지인은 사업체를 내팽개치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는 신세가 돼버렸다.
그놈의 정이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덮어줄 거라고 믿었던 그이에게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그 무엇”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잔인했다.
오랜 미국 생활에 익숙해진 나 자신도 사업을 하면서
종업원과의 관계에서 정과 약속을 넘나 들면서 혼란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단다.
일을 함께 하다 보면 퇴근시간에 (오후 5시) 2-3분 지체되는 경우가 있는데 타임 체크카드에 5시 3분이라고 기록하면 “우리가 함께 일해온 세월이 5년인데 3분도 용납이 안되는구먼 참으로 야박하다” 고 서운해하다가도 “아니냐, 이곳은 마국이야” 하면 금방 정리가 된다.
그렇지만 어느 날은 종업원이 손을 크게 다쳐 내가 봐도 한 손으로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 보여 “당분간은 집에서 쉬면서 치료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더니 “당신 혼자 여기에 남겨 둘 수가 없다” 는 소리를 들었을 땐 감동 그 자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정이 많이 들었구나 하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정을 다시금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