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와 도전"
매우 매력적인 말이다
내게는 언제나 "꿈과 희망"으로 다가왔으니까.
또한 이내 가슴을 두드리며 나를 내버려 두지 않고 어디론가 뛰쳐나가도록 충동질을 했으니까.
나는 도전을 하면 "꿈과 희망"이 있을거라 믿고 태평양을 건너 이곳 미국으로 왔단다. 지금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그 꿈을 실현했는지 그건 이제 그렇게 중요 하지도, 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왜?
나름 최선을 다해서 살았으니까?
한때는 좌절을 맛보기도 하고, 올데갈데가 없어 정체성의 혼란으로 방황하기도 했지만 한 해 한 해를 넘기다 보니 이제는 자식들도 성장하여 대학을 마치고, 결혼도 하여, 내게 손주도 안겨준다. 나는 그 손주들을 품 안에 안고서
과연 이 새끼들은 누구 일까? (한국 새끼일까? 미국 새끼일까?)
파란 눈의 며느리는 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그들은 이제 가족과 가정도 있다.
그러나 자식들이 출가하고 이렇게 둥지만을 지키고 있는 나는 오로지 가족만이 있는 듯 허전하기도 하단다.
텍사스에 살고 있는 아들이 오랬만에 전화를 했다. 그들은 살만 했는지 일주일 아니 한 달이 넘도록 전화 한 통 없었는데 오늘따라 안부도 묻고 애교까지 부린다. 한때는 철부지로 부모 속을 썩여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했고, 할 말을 잊을 때는 "저 새끼가 내 뱃속에서 나온 새끼가 맞아?" 하고 탄식도 했지만 이제는 파란 눈의 서양여자와 결혼하여 파란 눈의 자식을 둔 가장이 됐다.
와이프 더러 시카고로 와서 며느리와 함께 며칠간 집을 봐달란다. 직장을 시카고에서 텍사스로 옮기면서 구해놓은 집도 점검해야 하고 새로운 회사직원들과 상견례도 있고 해서 며칠간 출장을 다녀올 계획이라고 한다.
대학졸업 후 벌써 4번째 직장을 옮기고 있다. 나름 실력이 있어서 헤드헌터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는지 아니면 직업선택의 폭이 넓어 가능했는지 모르나 급여도 3배나 껑충 뛰었단다. 한국 같아서는 다니던 직장이 평생직장인줄 알고 앞만 처다보며 머슴처럼 일했던 것과는 크게 대조되어 이곳이 기회의 나라가 아닌가도 싶다.
와이프는
갔다 와도 괜찮겠어? (별일이 없냐고?) 하고 나에게 묻지도 않고
그래, 엄마가 가서 도와줄게 하고 전화를 끝는다.
왜? April (며느리)은 혼자서 집을 못 보나요?
그 집에는 Bella (개)가 있잖아요. 운동도 시켜줘야 하고 똥도 누여야 하는데 태어난지 갓 두 달 된 핏덩이 (손자)를 데리고 이 추운 겨울에 밖에 나갈수가 없잖아요.
사실 부모란 자식들이 필요로 할때 항상 곁에 있어줘야 하는게 아닌가도 싶다.
불러도 메아리가 없는 부모가 아니어서 다행이고
도움을 청하면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는 근거리에 있어서 좋다
그렇게 집을 떠난 와이프는 처음으로 며느리와 단 둘이서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동안은 아들 녀석이 중간에서 통역사 겸 중재자 역할을 해 왔기에 별다른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경이 쓰인다.
영어가 조금은 불편한 와이프와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며느리, 누가 더 불편할까?
소통이 안되면 그들은 어떻게 할까?
와이프는 일주일 동안 집밥 없이 빵만 먹고살 수 있을까?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와이프의 얼굴은 피곤하다기 보다는 속이 상해있는 표정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표정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가 않아요?. 아들, 며느리, 손주를 보고 왔잖아요?
"개 봐주러 갔다가 개 같은 일이 있었어요."
며느리와 와이프 사이에 드디어 사달이 나고 말았다. 돌아오기 전날 집에서 기르던 Bella (개)를 텍사스로 보내야 하는데 시카고 날씨가 너무 추워서 Bella를 비행기에 태워 보내지 못하고 다음 비행기를 찾느라 며느리가 진땀을 빼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출발지나 도착지의 온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개를 태워주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이 타는 비행기에 언제라도 태울수가 없어 여간 신경이 쓰인다.
점심시간이 지나 날씨가 다소 누그러지니 개를 데리고 공항으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서 차량을 불렀다. 그런데 차량 트렁크가 좁아 개집을 집어넣을 수가 없게 됐다. 화가나고 짜증이 난 며느리는 차량 기사를 향해 불평을 하기도 하고 그 큰 개집을 들고서 트렁크에 넣어 보려고 애를 쓰던 차에 와이프가 옆에서
"이 차로는 안 되겠다. 어서 다른 차를 불러라" 했더니
"NO" 하고 괴성을 지른다.
시집온지 얼마 안된 새 며느리로부터 한방 얻어맞은 시어머니---.
당황스럽고 황당한 꼴을 본 시어머니---
그동안 상냥하고 정숙한 며느리의 또 다른 면을 본 시어머니----
지금껏 집안에서 큰소리 한번 쳐 본 적이 없는 와이프는 이게 "무슨 꼴인고" 하고 자탄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끝내는 다른 차량을 불러 Bella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온 April (며느리)은 와이프를 보자마자 꼭 껴안으면서
"어머니 미안해요, 사랑해요"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와이프는 우리가 살고있는(Los Angeles) 집에 돌아올 때까지 속이 덜 풀렸는지 끝내
"어휴! 개 봐주러 갔다가 개 같은 일을 당했어요" 하고 내뱉는다
이에 나는 깔깔 웃으면서
"여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는데---
(서양 애들은) 화가 났을 때 옆에 끼어들면 안 돼
(서양 애들은) 다혈질이라 자기 control 이 안돼
스스로 진정될 때까지 내버려 둬야 해"
나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이런 경우를 자주 봐 왔던터라 익숙해 있지만 와이프는 T.V.,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장면이 눈앞에서 일어났으니 "정말로 개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당신 며느리가 특이한게 아니라 다들 그래" 하고 며느리를 감싸고 있지만 이 또한 "기회 와 도전"을 꿈꾸고 이곳 미국에 와서 살고있는 우리 이민 일세들이 극복 해야할 문화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