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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May 30. 2023

외국인이 돼서 고국으로 돌아와 한달살이

은행에 갔더니 나더러 사망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외국에 나가 살다가 고국으로 다시 돌아와 지낸 지난 한 달은 여러모로 낯설고, 당황스러웠고, 때로는 예전에도 우리가 이렇게 살았던가 하고 자문해 보기도 했다.


미국을 출발하기 앞서 한국에 가서 머무를 수 있는 숙소를 찾기 위해 airbnb라는 웹을 열심히 뒤지고 있는데도 와이프의 반응이 별로다. 나중 에서야 알게 됐다.  한국에 가면 동생들 집에서 며칠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한국 정서에 맞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불편을 줘서는 안 된다는 미국생활에 익숙해진 나는 섬뜻 이해하기가 난해 했으나 한국정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는다고 하니 낸들 도리가 없다.


먼저 첫째 동생 집에서 며칠, 다음에는 둘째 동생 집에서 며칠. 이것도 순서가 있어야 하는가 싶다. 여장을 풀자마자 새로운 학습이 시작됐다. 아파트 입구에 붙어있는 키패드 사용법, 다음에는 집 대문에 붙어있는 키패드. 단독 주택에서만 살아왔던 터라 이 또한 익숙치 못하고 숫자들이 쉽게 외워지지 않아 여간 불편하다. 짧은 시간에 두 집 키패드 넘버를 네 개나 외워야 하니 메모를 하지 않고서는 감당이 안된다.  


식구들 차에 얹혀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 우리 스스로 버스도 타고, 택시도 타면서 움직일 수 있도록 오늘은 은행을 다녀와야만 했다. 현금을 인출코져 예전에 만들어 두웠던 통장과 도장을 들고서 집 근처 은행을 찾았다. 안으로 들어서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상황을 판단키 위해 한참이나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입구에 앉아있던 안내원이 내게 다가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기에 


예, 돈 찾으러 왔습니다

저기 가서 번호표를 뽑으셔요


예전에도 이런 게 있었나?  번호표를 뽑아서 손에 쥐고서 앉아 있으니 안내판에는 예상되는 대기시간이 1시간 30분이라고 뜬다.  사람들이 1시간 30분 정도 묵묵히 기다려줄 수 있다는 것이 다소 놀라웠다.  미국에서는 손님이 밀려오면 은행창구를 추가로 열어 대기 시간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 준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됐다. 상냥하고 아름다운 여자분이 반겨준다.  로버트와도 같이 무표정으로 손님을 맞아주는 미국과는 대조되어 기분이 상큼하다. 찾고자 하는 금액을 알려주고 통장과 도장을 건네주니 여직원이 컴퓨터를 한동안 들여다보다 


 예금주 문 XX 씨는 사망하셨는데요?

예? 제가 문 XX입니다. 살아서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는대요

신분증을 주시겠어요?


미국 여권을 내밀었더니 


"여기 사람이 아니네요?"

"예, 물 건너온 사람입니다"


엉겁결에 황당한 소리를 듣는지라 여직원에게 "내가 왜 사망했냐?"라고 묻지를 못하고 나름 추측을 해봤다. 주민등록이 말소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놀라웠다.  국적이 상실되고 주민등록이 말소되니 나와 관련된 정보가 대한민국 그 어디에도 업데이트되어 있다는 사실.  심지어는 내 이름으로 되어있는 은행 계좌마저 "주민등록 말소"로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은행 여직원은 이 손님이 해외로 이주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사망의 경우에 있었던 사례를 중심으로 말했을 것이다. 


어디론가 전화를 하여 상의를 한다. 짐작건대 직장 상사 아니면 본사로 전화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예금주의 이름을 한글이 아니라 여권상에 있는 영문으로 바꿔야 한단다.  다소 혼란스러웠다.  영문으로 된 도장이 없으니 앞으로 도장 없이도 예금을 인출할 수 있으려나? 한참을 기다리니 내 앞에 놓여있는 조그마한 스크린에 내가 요청했던 금액이 뜬다. 여직원이 금액을 인증해 달라기에 은행에 가면 숫자대신 한글로 쓴다는 생각에 500,000 대신에 오십만이라고 썼더니


그렇게 쓰지 마시고 스크린상에 있는 대로 덧쓰세요


우리는 서로 한국말을 하고 있는데도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했다. 당황스럽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얘기해 주시겠어요?

아!  한글로 쓰지 마시고 스크린 상에 있는 숫자 위에다 그대로 한번 더 써주세요


이게 인증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싸인이라면 몰라도 숫자 위에다 덧쓴다는 게 인증이라고 할 수 있는지?

현금을 건네받으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미국달러로는 400불에 상당하는 금액인데 오십만 원이라니 엄청 큰 금액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지다, 이 돈이면 한참을 쓸 수 있겠구먼. 


한국에서 살려면 현금 대신 카드를 사용하면 여러모로 편리하니 카드도 만들어 오라는 식구들의 권유다. 교통카드까지 겸한 체크카드를 즉석에서 만들어 준다나.  집을 나서면서


오늘은 제가  교통카드와 체크카드를 만들어 자생력을 갖추는 날입니다. 


현금 인출 후 체크카드를 신청했더니 


당신의 카드는 본사를 경유하여 발급되오니 일주일 후에나 가능합니다

현재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전화가 본인 명의가 아니고 조카 명의의 전화 (임시변통으로 조카 여유분 전화기를 사용하고 있어) 이오니 거래내역을 통보받을 수가 없습니다 라는


여직원의 통보에 이 또한 외국인의 신분으로 돌아온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어 다소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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