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슬픔이 나의 우울이 되었을 때 대처하는 방법
정신과 병원 진료실. 초조한 눈빛으로 허벅지를 연신 쓸며 선생님께 물었다.
"친구네 커플이 헤어졌는데 제가 계속 우울하고 눈물이 나요. 막 가깝고 자주 보고 그런 친구들도 아니었는데 왜 그런 걸까요?"
가뜩이나 불안, 우울, 수면장애로 병원을 들락날락하고 있던 와중에 잠 못 들게 하는 사건이 또 하나 터져버린 것이다. 잘 만나고 있던 친구네 커플이 돌연 헤어진, 하나의 빅 이벤트였다. '5년이나 만났다고 했는데', '결혼할 생각으로 아파트까지 같이 장만했다고 했는데', '몇 주 전 집들이에서도 그런 낌새 없이 다정해 보였는데'. 가장 최근에 다 같이 만난 건 그 커플이 마련한 집들이 자리에서였는데 술잔을 앞에 두고 서로의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던 그 커플의 모습이 여전히 계속 아른거렸다.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의 특성상 당사자들에게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물을 수도 없었다. 궁금증에 던진 질문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그때의 상처를 들추는 것 이상으로 또 다른 종류의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몇 날 며칠밤 그들이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납득시키느라 도무지 잠에 들래야 들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어여쁘다 할 한쌍이었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든 그 둘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그런 '완벽한' 한쌍이 각자의 우주로 돌아간다니. 드라마 <지붕뚫고 하이킥2>의 회색빛 결말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결혼'이라는 엔딩을 해피엔딩이랍시고 결말로 둔 여느 드라마의 남주와 여주처럼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그렇다, 나는 이들의 러브스토리가 얼마나 달콤하게 시작되었는지에 눈이 멀어 너무 이른 결말을 적용해왔던 거다. 그래서 이렇게 뒤통수 맞은 기분이리라. 그래도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호텔 델루나>를 보면서 이렇게 우울하고 화가 나지는 않았는데. 만약 이 커플의 드라마에 시청자 게시판이 있었다면 나는 이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으로 게시판을 말 그대로 폭파시켰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오지랖 넓은 말도 안 되는 주접을 두고 '쓸데없다'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둠을 덮은 채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던 말던, 새벽을 끌어안고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상상하던 말던, 그들은 헤어졌으니까 말이다. 내가 슬퍼하든 말든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침착하게 나의 주접 그득한 이야기를 들으시고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던져주셨다.
"소라 씨가 그 커플을 되게 예쁘게 보셨나 봐요. '내가 예쁘게 만나듯이 저들도 예쁘게 만나고 있구나, 나랑 비슷하네?'하고 생각했을 텐데 그런 커플이 헤어졌다고 하니 '어쩌면 나도 헤어질 수 있는 거구나'하고 느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마치 내가 헤어진 것처럼 슬프고 우울하고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그럴 땐 이렇게 해보는 것도 도움이 돼요. '아 내가 연인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이렇게 우울한 거구나'하고 그냥 흘려보내는 거예요."
머리를 한 대, 두 대, 아니 세 대는 제대로 맞은 듯했다. 지금껏 마음이 아플 때엔 마음속만 들여다보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막상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내 마음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봐보니 내가 왜 마음이 아픈지 선명해지는 것이었다. 그건 바로 내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아뿔싸, 이 자명한 원리를 이제야 깨닫다니. 이제는 어떤 일이나 누군가로 인해 마음이 아프고 기분이 나쁠 때 그 감정에 몰두하기보다 한 발자국 물러서서, '내가 지금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고달픈지' 환기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물론 쉽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은 밀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물러나고 바라보고 물러나고 바라보고... 반복하다 보면 어느샌가 덩어리째 정체 중이었던 감정 찌끄러기들이 순순히 흘러감을 느낀다.
오늘도 나는 별것 아닌데 비아냥 거리는 듯한 우리 엄마 아들의 말에 기분이 상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아, 내가 동생이라는 작자와의 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기분이 나쁘구나. 쩝, 곰곰이 두고두고 생각해본다. 마지못해 인정한다. 그건 또 맞지, 하면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점심시간에 흘린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며 마음이 이상해진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아, 내가 일에서 찾는 효능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두고두고 걸리는구나. 또 마지못해 인정한다. 오늘도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 그리고 그 앞에서 들키지 않게 꽁꽁 숨기는 나의 마음을 앞에 세워두고 배워나간다. 그렇게, 또다시, 마음의 찌끄러기들이 유유히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