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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족이 되는 시간 Oct 07. 2021

헤어지기 위해 가족이 되었습니다

3. 엄마도 둘, 아빠도 둘

“은지야! 준비됐어?”


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제주 가정위탁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들리자마자 은지에게 휴대폰을 건네고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은지예요. 저 여덟 살 됐어요! 음…, 그런데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어요. 

저 낳아주신 000 엄마(친엄마) 만나고 싶어요!”


은지는 또박또박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갓 여덟 살이 됐는데 자기소개를 하고, 부탁이 있다고 얘기하고, 

친엄마 이름을 말하고, 만나고 싶다고 하는 게 다 큰 아이 같았다. 너무나 반듯하고 밝은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2015년 10월. 낮잠자는 은지

 

요즘 계속해서 은지의 출생과 성장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잠자리에 누워 어깨를 토닥이며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고 있다. 아기 때 토끼 똥같이 동글동글한 똥을 눈 이야기, 처음으로 엄마를 그렸는데 삐뚤빼뚤 해님 같이 그렸던 이야기….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는데도 은지는 여전히 재미있어한다. 

밤마다 더 길게, 더 자세하게 해 달라고 조른다. 이야기를 우려내고 우려내던 날, 은지가 친엄마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럼 엄마가 내일 가정위탁센터에 전화해 줄 테니까 은지가 부탁해 볼래?”
“네! 좋아요!”


 은지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친엄마를 한번 만나게 할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친엄마를 만난 지 1년 반쯤 지났으니까 은지도 기억이 안 날 것 같았다.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다가 살짝 물어봤다.


“은지야! 000 엄마 생각나?”
“네! 생각나요! 하얀 옷 입고 왔었잖아요? 
나한테 프리파라 스티커 책도 주고.”


은지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땐 너무 젊은 엄마를 보고 한동안 말을 못 했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야 ‘하얀 옷 입은 언니’라고 했다. 은지가 보기에도 친엄마가 언니처럼 보였나 보다.


“은지가 000 엄마랑 XX원(미혼모시설)에 살 때, 배은희 엄마가 은지를 만나러 갔었거든. 은지 뺨이 호빵처럼 빵빵했었어. 너무 귀여워서, 은지 한번 안아 봐도 될까요? 물어봤는데 000 엄마가 은지를 보물처럼 꼭 껴안고 옆으로 돌아앉았어.”


 스무 살에 낳은 첫 아이, 미혼모 시설에서도 애지중지 보물처럼 길렀던 아이다. 그런 보물을 떠나보내던 날, 000 엄마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연신 훔쳤다. 은지를 태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XX원 앞에서 내내 손을 흔들었다.  

2020년 2월. 은지


은지는 버려진 게 아니라 지켜진 아이다. 스무 살 엄마는 어린 은지를 안고 대책 없이 미혼모 시설을 퇴소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엄마가 아픔을 감내하기로 한 것이다.


은지의 뽀얀 피부와 짙은 눈썹은 000 엄마를 닮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손재주가 많은 것도 000 엄마를 닮았다. 지켜진 아이 은지는 클수록 친엄마를 닮아가는 것 같다. 당연하면서도 신기하다. 이렇게 제 뿌리를 찾고 또 지키려고 하겠지.


은지의 출생과 성장에 대해 다 이야기하고 나니까, 은지가 내 친구 같다. 이젠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은지도 자신이 버려졌다는 생각보다는 소중하게 지켜진 특별한 아이라고 믿는 것 같다. 


와! 그럼 나는 엄마도 둘이고, 아빠도 둘이네?

밝은 목소리에서 희망을 읽는다. 

이렇게만 자라주길.


가정위탁제도 홍보 포스터(보건복지부)


가정위탁제도란? 친부모의 질병, 사망, 수감, 학대 등으로 친가정에서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위탁가정에서 일정기간 동안 양육해 주는 제도다. 입양은 친부모가 친권을 포기해야 되지만 가정위탁제도는 친부모의 사정이 나아지면 친가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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