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엄마도 둘, 아빠도 둘
“은지야! 준비됐어?”
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제주 가정위탁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들리자마자 은지에게 휴대폰을 건네고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은지예요. 저 여덟 살 됐어요! 음…, 그런데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어요.
저 낳아주신 000 엄마(친엄마) 만나고 싶어요!”
은지는 또박또박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갓 여덟 살이 됐는데 자기소개를 하고, 부탁이 있다고 얘기하고,
친엄마 이름을 말하고, 만나고 싶다고 하는 게 다 큰 아이 같았다. 너무나 반듯하고 밝은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요즘 계속해서 은지의 출생과 성장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잠자리에 누워 어깨를 토닥이며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고 있다. 아기 때 토끼 똥같이 동글동글한 똥을 눈 이야기, 처음으로 엄마를 그렸는데 삐뚤빼뚤 해님 같이 그렸던 이야기….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는데도 은지는 여전히 재미있어한다.
밤마다 더 길게, 더 자세하게 해 달라고 조른다. 이야기를 우려내고 우려내던 날, 은지가 친엄마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럼 엄마가 내일 가정위탁센터에 전화해 줄 테니까 은지가 부탁해 볼래?”
“네! 좋아요!”
은지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친엄마를 한번 만나게 할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친엄마를 만난 지 1년 반쯤 지났으니까 은지도 기억이 안 날 것 같았다.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다가 살짝 물어봤다.
“은지야! 000 엄마 생각나?”
“네! 생각나요! 하얀 옷 입고 왔었잖아요? 나한테 프리파라 스티커 책도 주고.”
은지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땐 너무 젊은 엄마를 보고 한동안 말을 못 했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야 ‘하얀 옷 입은 언니’라고 했다. 은지가 보기에도 친엄마가 언니처럼 보였나 보다.
“은지가 000 엄마랑 XX원(미혼모시설)에 살 때, 배은희 엄마가 은지를 만나러 갔었거든. 은지 뺨이 호빵처럼 빵빵했었어. 너무 귀여워서, 은지 한번 안아 봐도 될까요? 물어봤는데 000 엄마가 은지를 보물처럼 꼭 껴안고 옆으로 돌아앉았어.”
스무 살에 낳은 첫 아이, 미혼모 시설에서도 애지중지 보물처럼 길렀던 아이다. 그런 보물을 떠나보내던 날, 000 엄마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연신 훔쳤다. 은지를 태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XX원 앞에서 내내 손을 흔들었다.
은지는 버려진 게 아니라 지켜진 아이다. 스무 살 엄마는 어린 은지를 안고 대책 없이 미혼모 시설을 퇴소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엄마가 아픔을 감내하기로 한 것이다.
은지의 뽀얀 피부와 짙은 눈썹은 000 엄마를 닮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손재주가 많은 것도 000 엄마를 닮았다. 지켜진 아이 은지는 클수록 친엄마를 닮아가는 것 같다. 당연하면서도 신기하다. 이렇게 제 뿌리를 찾고 또 지키려고 하겠지.
은지의 출생과 성장에 대해 다 이야기하고 나니까, 은지가 내 친구 같다. 이젠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은지도 자신이 버려졌다는 생각보다는 소중하게 지켜진 특별한 아이라고 믿는 것 같다.
와! 그럼 나는 엄마도 둘이고, 아빠도 둘이네?
밝은 목소리에서 희망을 읽는다.
이렇게만 자라주길.
가정위탁제도란? 친부모의 질병, 사망, 수감, 학대 등으로 친가정에서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위탁가정에서 일정기간 동안 양육해 주는 제도다. 입양은 친부모가 친권을 포기해야 되지만 가정위탁제도는 친부모의 사정이 나아지면 친가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