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교사 지도를 잘 따르지 않는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아이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평소 학교 생활을 충실히 해오다가 본인이 부당하다 싶은 일에 따르지 않는 경우, 평소 생활 습관이 잘못되어 지속적인 교사의 지도에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경우, 교사 지도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 교사를 우습게 보고 적대적으로까지 하는 경우.
세 가지 사례 중 앞의 두 가지 사례는 그래도 낫다.
첫 번째 사례는 학생이 부당하게 느낀 일에 교사와 학교 차원에서 같이 논의해가며 학생과 타협점을 찾으면 된다. 그러면 학생도 자신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 점에 만족할 것이고, 여러 사람이 같이 논의하여 합리적 타협점을 찾은 만큼 이를 교사나 학생이 거부할 가능성도 낮다.
두 번째 사례는 생활 습관에 대한 부분이다. 평소 지각이나 수업태도 불량 등 몸에 밴 잘못된 생활 습관은 원래 쉽게 고치기가 힘들다. 그래도 두 번째 사례의 아이는 교사를 적대시하거나 학교 지도를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 차츰 좋아질 가능성은 있다. 또한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이의 뇌에서는 성찰과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이런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인지하고 점차 수정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 번째 사례 아이들의 경우에는 도저히 지도가 불가능하다. 실제 각 학교에는 정말 지도가 어려운 전교에서 손꼽히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들이 반으로 배치된 반은 일명 '폭탄반'이라고 하여 어떤 교사든 담임을 맡기를 부담스러워한다. 지도를 하는 과정에서 사사건건 아이나 학부모와 부딪쳐야 하고, 아이의 행동이나 태도가 학급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교사에게 반항하거나 적대적인 행위는 교사의 자존감마저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이에 이런 학생의 담임을 맡는 교사는 처음 학교에 전입 와서 학교 실정을 잘 모르는 분이거나 상대적으로 자기주장이나 발언권이 약한 분이 맡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누가 담임을 맡든 이런 학생들의 담임을 맡게 되면 다른 교사에 비해 2-3배 이상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아이들일수록 학업을 넘어서 기본적인 학교 생활 자체에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체육 활동이나 동아리, 각종 행사에조차 제대로 참여하지 않으며 학교에서 하는 대부분 활동에 대해 부정적이고 갑갑해한다.
반면에 이들은 밖에서 일탈 행동들을 통해 자신들의 억압된 욕구를 해소한다. 이들이 밖에서 하는 일탈 행동이란 음주, 흡연, 절도, 문신, 도박, 외박, 성 관련된 것 등이 있다. 이런 행동들은 평소의 규칙적인 학교 생활과는 완전히 위배되는 것으로 이들 뇌에는 도파민이 분비되어 순간의 짜릿함과 쾌락을 주게 된다. 또한 여기에 분비된 도파민은 이들이 더욱더 자극적인 행동을 강화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한번 마약을 한 사람은 영원히 못 끊는다'는 말처럼 이들이 반복적으로 맛 본 쾌락은 결국 하나의 습관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와 봤자 교사의 지도를 따를 리 만무했다.
이들에게 학교란 그렇지 않아도 부정적인 곳인데 교사의 타이름이나 지시는 그저 자신들의 행동을 가로막는 태클일 뿐이다. 그래서 교사의 통제력이 조금 약해진다 싶으면 곧바로 학교를 벗어나 마음대로 외출하기 일쑤였고, 수업시간에도 들어가지 않고 복도를 배회하거나 운동장 밖에 나와서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놀기도 하였다. 이런 아이들의 생활태도에 대해 교사들은 생활 교육위원회나 상담 등을 통해 지도했지만 이들은 심드렁하게 반응하거나, 심한 경우 적대적이고 반항적으로까지 행동했다.
" 뭐가 문젠데요? 수업시간에 내가 뭘 하든 그냥 결과 처리하라고요! 제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세요!"
" 맨날 천날 부모한테 일러바치기나 하고 있고! 그게 교사가 할 짓이에요? 그 XXX는 용서치 않을 거예요!"
" 우리 보고 오라 가라 하지 말고 그 선생님 직접 오라 하세요. 우리는 여러 명이고 그 선생님은 혼자잖아요."
" 자꾸 이런 식이면 저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무슨 행동 하든 그냥 선생한테 돈주고 합의 보면 끝 아닌가요?"
최대한 순화해서 표현한 것이지만 이런 아이들과 상담을 할 때 이들 말에는 거친 욕설과 비속어도 굉장히 많았다. 그렇다고 교사의 지시가 강압적이거나 딱히 부당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아이들이 그렇게 느꼈을 뿐이었다.
이런 아이들은 가정에서 부모의 손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아이들은 가정에서도 부모에게 반항적이고 적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똑같았다. 생각해보면 가정에서의 이런 모습이 학교 선생님에 대한 태도에까지 전이된 것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부모님께 매번 상담 전화를 드려도 달라지는 것은 딱히 없었다.
"집에서도 통제가 안되네요. 어떡하면 좋죠?"
"조금 더 아이와 말해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부모는 집에서 아이를 조금 더 신경 써보겠다 이야기해보겠다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딱히 없었다. 부모가 그런 말을 할수록 아이는 자기 좀 내버려 두라고 반항적으로 나오고 가출하여 일탈 행동을 더욱 심하게 한다고도 하였다. 상담센터나 대안학교를 가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이런 아이들일수록 자신의 심리나 정서상태를 감추기 위해 각종 행동검사나 조사에서도 방어적으로 나오거나 치료나 치유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이런 아이들의 부모 심정도 이해는 된다. 이 아이들이 자퇴를 하고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날수록 사실 나쁜 환경에 더욱 빠져들어 행동이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전 통계에서 청소년 범죄의 40% 이상이 전체 청소년 4%에 불과한 학교 밖 청소년(자퇴생)에게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한다.
결국 현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교권을 강화하는 일.
결국 돌고 돌아 학교에서 이런 아이들의 적대적 행동을 줄이는 방법은 교권을 강화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다. 이는 학교에서 교사는 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전문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투입된 사람인 반면에, 학생은 교사의 지도를 통해 올바른 행동을 배우고 바람직한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목적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가르침을 주고 지속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관계인 것인데, 이를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학교를 설립한 그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교사가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권리인 교권은 그런 의미에서 무겁고 엄중하게 보호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좀 전에 말한 아이들의 저런 거친 발언('우리는 여러 명이니까 선생님이 직접 오라. 내가 뭘 하든 간섭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 피해 주면 돈 주고 합의 보면 그만이다')도 따지고 보면 아이들이 교사의 지위를 자기들과 별 차이없다고 생각한 데에서 문제가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아이들이 '선생님과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 선생님은 우리 지도를 위해 존중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선생님의 교권을 침해하는 것은 나에게 큰 불이익이 될 수 있다.' 등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면 과연 저 정도 수준까지의 발언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을까?
특히 이런 아이들일수록 중고등학생이 되면 신체적인 성장이나 물리적인 힘은 교사를 훌쩍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아이들은 더욱 교사의 지도를 우습게 알고 무시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이들이 교사 지도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거나 교권을 침해하는 일은 본인에게도 상당한 페널티가 되고 책임져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인지시켜 주면서 경각심을 심어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수년간 교육계에서는 학생 인권을 강조하며 교사들에게 '체벌금지, 학생에 대한 차별금지, 학생에 대한 부당한 대우나 지시 금지' 등을 강조해왔다. 이에 따라 최근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하여 지시봉조차 들고 다니는 교사를 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장에서 이렇게 학생 인권에 대한 홍보나 강조는 지속적으로 많았던 반면에, 교권보호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이나 홍보는 거의 전무했다는 사실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교사는 분명히 '교권'이란 게 있는데도 이를 활용하지도 못하고 있고,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보고도 그저 무기력하게 반응하거나 이제는 이들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회피 전략마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이 다른 학교로 전출 갈 때 가장 중점적으로 알아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 학교 문제 아이들의 비율이라고 하니 이는 그만큼 문제 아이에 대한 지도가 교사들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음을 말한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올해 생활교육위원회(생활지도)를 맡았는데 정말 힘들 때가 많았다.
결국 교사들이 문제 아이들을 서로 안 맡으려 하고 문제가 있음에도 이를 무기력하게 방치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이런 아이들은 더욱더 통제 밖 청소년이 될 것이고 앞으로의 사회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가 스쿨존에서 시속 30km 미만 속도로 가거나, 길가에 쓰레기를 함부로 던지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꼭 국민들의 높은 도덕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거기에는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때 CCTV 확인을 통해 벌점이나 벌금을 내야 하고, 쓰레기를 불법 투척한 경우 그에 따라 본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 많다는 두려움과 경각심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학교의 교칙이나 교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일부 아이들에게 교사는 그저 '수업하면서 밥벌이하는 사람' '학생인권이 강화된 지금 우리와 별 차이도 없는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인식을 돌리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교권에 대한 연구와 홍보, 적극적인 법 개정 노력과 교육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교사는 전문성을 가지고 아이들 지도를 위해 학교현장에 투입된 사람들이다. 이에 따라 이들에게는 나이 여부를 막론하고 법적인 권한인 교권을 부여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와 존중, 교육적 지도에 대한 권위 부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