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내가 몸담고 있는 우리 고등학교 2학년의 경우 시험기간은 4일 시험과목은 하루 최대 3과목씩 시험을 봐야 한다. 반면 인근의 어느 중학교 2학년은 시험기간이 단 하루이고 그것도 시험과목이 영어 수학 두 과목만 시험을 보면 된다.
학교급별로 시험 과목량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중학교는 절대평가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학생들의 과도한 경쟁과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중학교는 성취도에 근거한 절대평가제 방식을 도입했고 이에 따라 중학교에서 지필시험은 큰 비중을 차지하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따라서 각 중학교에서는 지필시험이비교적쉽게 출제되거나 아예 보지를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절대평가제 도입 후 어느 학교 어느 과목의 최우수 학생(A등급 , 90점 이상)이 전교생의 절반이고 일부 과목 평균점수가 80점을 육박하는 상황은 바로 이런 현실을 대변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다고 해서 아이들이 공부 스트레스를 덜 받거나 아이들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점이다.
그 이유는 중학교와는 다르게 고등학교는 지필시험 위주의 상대평가를 여전히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이들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들어오기 무섭게 낯선 고등학교 평가방식에 다시 적응을 해야만 한다. 고등학교 시험은 줄 세우기 식 상대평가에 객관식이다 보니 변별력을 위해 시험 문제를 꼬고 또 꼬아서 난이도는 급격히 올라가고 아이들은 학습에 흥미를 잃어가게 된다.
또 80-90점 나오던 친구들은 입학 후 첫 시험에서 갑자기 40-60점대로의 참담한 점수 하락을 맛보게 되면서 아이들은 큰 좌절을 겪고 학업에 회의감을 느낄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이런 현실을 미리 파악하고 있는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고등학교 내신과 수능에 대비해 사교육을 안 시키려야 안 시킬 수가 없게 된다. 실제 내가 몸담았던 학군지 중학교의 경우에도 당시 절대평가제였는데도 불구하고 2학년 아이들 절반 이상이 끼니도 거른 채 밤 10시까지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사실상 고등학교 상대평가와 대입 준비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셈이었다.
결국 고등학교와 중학교 평가방식의 이런 차이는 학부모들에게 신뢰를 안 주고 불안심리를 유발하여 더욱더 사교육에 의존하게 만들 뿐이었다.
깨진 장독에 물 붓기란 말이 있다. 장독에 물을 채우려고 아무리 물을 부어봤자 깨진 장독에는 결코 물이 온전히 담길 수 없다는 뜻이다.
입시제도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스트레스와 학업부담을 덜어준다고 교육부에서 아무리 중학교부터 변화를 줘봤자 지금의 대입제도가 굳건히 있는 이상 그 어떤 변화도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입시제도가 문제라면 가장 큰 문제점이자 거물인 대입제도부터 손봐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공정성'이라는 명분으로 고등학교 내신과 수능에서 수십 년째 객관식 상대평가 원칙을 고수해왔다. 이런 시험제도는 정답자와 오답자를 명백히 가리고 석차 및 줄 세우기 식 방식으로는 아주 편리한 방식이다. 그러나 효용성은 그뿐이다. 현재의 시험 체제는 아이들에게 창의적 사고를 유발하는 것도, 협업과 탐구력, 자기표현,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과거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문제풀이 및 문제 해결 방식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수능과 내신 모두에서 객관식 시험의 대입제도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이제는 그 일본마저 IB와 같은 대안적인 시험제도를 연구 적용하려 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시험제도를 고수하면 고수할수록 우리나라 교육도 그 효용성이 다하고 계속 낙후될 거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