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알파 세대라 할만큼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 사랑이 유별나다. 그들은 잠시라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가 없으면 불안해하고 늘 해당기기를 자기 곁에 두고 수시로 이용해야만 적성이 풀린다.
학교에서도 이런 아이들의 욕구와 시대 흐름을 인식한 탓인지,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 사용에 관한 규제가 점차 완화되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현재 초등학교에서는 수업 시작 전 휴대폰을 거두는 학교가 거의 없고, 이런 분위기는 중학교도 비슷하다고 들었다. 우리학교를 포함한 고등학교에서는 휴대폰을 거두는 학교들이 꽤 있는데 고등학교도 이런 분위기가 점차 사라질 예정이다.
학생 학부모가 일과 중 휴대폰이나 전자기기 소지에 관해 인권위에 민원을 제기하면 대부분의 경우 학생 학부모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기기(휴대폰 포함)는 개인의 사적 물품이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소지를 허용치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쉬는시간 점심시간 등의 시간에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 하는게 인권위의 주장이다.
그래서 전자 기기를 거두지 않는 학교에서는 수업시간 교사의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전자기기를 소지는 하되 사용은 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의 이런 조치도 큰 효력이 없는 것이, 요즘 아이들은 알파 세대라 할 만큼 자기의 모든 행동을 전자기기와 함께 한다. 그들은 인터넷 강의 뿐만 아니라 독서, 교과서, 문제지, 심지어 노트필기까지 태블릿PC에 의존하고 있다. 그들에게 수업시간 태블릿 PC는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품인 것이다.
나름 MZ세대 교사인 나는 태블릿PC로 수업시간 필기가 과연 제대로 될까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한 아이의 태블릿 PC를 가져와서 검사해보았다. 그런데 정말 놀랬다. 아이들은 노트펜으로 국영수사과 모든 과목의 필기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를 잘하고 있던 것이었다.
전자 기기가 교과서이자 노트 그 자체인 학생들에게 수업시간 전자기기 사용을 과연 금할 수 있을까? 상황이 이러다보니 학교에서도 수업시간 태블릿PC 등의 전자기기 사용 또한 점차 허용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 아이들의 성적은 과연 좋았을까?
하지만 예상했던대로 수업시간 전자기기 사용을 많이 하는 학생일수록 학업 성적은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다. 잘은 몰라도 그들은 수업시간 가지고 있던 전자 기기를 100% 수업 보조 도구로만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간중간 교사가 틈을 보이거나 감시를 안하면, 아이들은 눈치를 보며 전자기기를 만지는 경향이 많았는데 이는 아마 수업 외적인 용도로 사용해서였을 것이다.
반면 학업성적이 좋은 최상위권 학생일수록 수업시간이나 자습시간만큼은 전자기기를 멀리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여전히 종이로 된 책을 보며 공부했고, 수업시간 교사의 얼굴과 목소리에 집중하며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전자기기를 가까이할수록 실제 공부에 집중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또 본인들도 통제가 안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겠지만 실제 전자기기는 각종 게임이나 웹툰, 유투브, 영화 등 아이들이 보고 즐길 것이 너무나도 많다. 특히 측좌핵에서 도파민 분비가 활발한 청소년일수록 중독 성향은 강하여 한번 전자기기에서 재미난 것을 발견했으면 절제력이 크게 떨어지고 계속 하고 싶어한다. 당연히 학업 집중력은 떨어지게 된다. 이런 아이들에게 "스스로 조절 잘해봐" 하며 수업이나 자습시간 전자기기를 허용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전자기기에 관한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도 없다. 특히 갈수록 디지털 사회가 가속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전자기기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한다는 것은 디지털 인재를 키워내겠다는 국가의 방침과도 모순되는 꼴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런 휴대폰이나 태블릿PC에 대한 절제와 자기주도학습 능력이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고 해도 여전히 시험지는 종이로 인쇄되고 있고 많은 교과서와 문제지도 책으로 나오고 있다. 특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려면 문제나 지문을 끝까지 읽고 이해하고, 이에 대해 깊이 사고하거나 추리하는 등의 문제 해결력이 요구되는데 이는 절대 태블릿 PC 등의 전자기기로는 성취할 수가 없다. 해법은 여전히 종이로 된 두꺼운 책에 있다. 그리고 이 책들을 성공적으로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뛰어난 문해력이 요구된다.
역설적으로 그런면에서 디지털 시대에 뛰어난 학업성취를 위해서는 종이로 된 책과 가까워짐이 요구된다. 책에서 즐거움을 찾고 책을 통해 사고력을 키우고 책을 통해 구상할 줄 알아야 아이들은 공부를 잘할 수 있고 좋은 학업 성취도를 보일 수 있다. 이에 비해 전자기기 사용은 추가적인 자료를 찾거나 쉬는시간 학업에 지친 심리를 달래주는 정도의 보조수준으로만 활용해도 충분하다.
시대는 전자기기를 부르고 있지만 오늘날 학교의 학업성취에 관한 것들은 여전히 종이로 된 텍스트에 의존한다. 아마 이런 경향은 학교의 모든 교과서나 기자재가 디지털화되는 시대가 되어도 큰 변화가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