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퀀트의 독일 여행

7. 위로

by 파워 퀀트

오늘은 2025년 6월 1일이다.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Flex Power GmbH)에 들어온 지도 1년이 됐다. 처음 들어올 때 1년 계약직으로 나는 시작했다. 전력 트레이딩 (Power Trading)이 무엇인지 들어본 지도 못한 채 이 회사에 들어왔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기에서 발생한 전기를 시장에서 민간이 거래한다는 개념을 이해하는 데도 첫 달을 꼬박 보냈다. 영어로 된 자료들을 읽으며 공부했다. 한국어로 된 좋은 자료가 있을까 구글에서 검색을 해보았지만, 한국전력이라는 공기업이 전력을 통제하는 한국에선, 이런 자료가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유럽의 전력 시장 글을 써보자 다짐했고, 그 결과가 이 시리즈이다).


회사에 들어왔을 때 한국인도 나밖에 없었다. 한국에는 없는 유럽 시스템을, 한국인인 나 혼자서 계속 공부하다 보니 가끔 고립갑을 느끼기도 했다. 먼 타국에서 쓸쓸히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가끔 소설책에서나 읽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첫 달이 지나고 나서 퇴사를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학생이었던 시절에, 돈이 궁했던 나 자신을 생각하며 월급 받는 지금이 더 낫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도, 지친 나를 내가 위로하며 퇴사와 현실 안주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반년이 되었을 때 CEO를 찾아갔다. 빈약한 지식으로 내가 만든 모델이 돈을 계속 잃고 있었을 때다 (이에 대해선 짧게 브런치에 을 쓴 적이 있다). 고립갑에 좌절감까지 더해졌었다. 더 이상 나 스스로의 위안으로는 부족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현실 (그리고, 감정)을 누군가와 이야기해야만 했다. 나는 CEO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퇴사를 할 각오를 했다.

그리고 면담 자리에서 CEO는 해맑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그냥 이 회사에 대한 제 생각을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나는 이 문장을 이야기했을 때, 괜스레 위축된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더 당당해지기로 했다.

"그래요. 저도 궁금하네요. 어떤 이야기인가요?"

"먼저 저는 이 회사에 뽑혀 퀀트로 일하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어요. 저를 뽑아주신 것도 감사하고요."

"회사를 위해 일해준 민호 씨에게 저희가 감사하죠"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퇴사이야기를 하나. 그래도 난 밀어붙이기로 했다.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근데 이제 지치려고 해요. 저는 가끔 주말에도 일하고 야근도 해요. 월급은 거의 최저임금을 받고, 보너스도 계약직은 안 받잖아요. 남들보다 일은 더 하는 데 왜 그만큼 보상을 못 받죠?"

일이 힘들다고 퇴사를 하려고 했던 내 입에서 월급, 보너스가 나왔다. 나도 조금 당황했고, CEO도 어깨를 움츠리며 다리를 떨었다.

"민호 씨. 그렇게 열심히 일해줘서 정말 감사해요. 우리 임원진들도 표현은 안 했지만 민호 씨의 그런 모습을 항상 봐왔어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일 할 필요 없어요. 회사가 수익을 조금 덜 내더라도 저는 이 회사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아요."

나는 잠깐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좋은 수익을 내라고 압박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돈을 잃고 있었다). 내가 괜히 나를 밀어붙였다. 빨리 이 분야에 퀀트로서 전문성을 갖춰 내 입지를 회사에서 굳히고 싶었다 (비록 계약직이더라도).

감사하게도 CEO가 그다음 말을 이었다.

"민호 씨. 계속 함부르크에 있을 건가요?"

"네."

"그럼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고 해요. 물론 이번 달에 보너스도 받을 거고요."

퇴사를 하려고 시작했던 면담이 이 회사에 소위 말해, 말뚝을 받는 면담으로 바뀌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만약, 내가 보상을 더 받든 말든 퇴사하겠다고 했으면, 나는 이 글을 쓰고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 깊은 본심에선 퇴사를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힘든 내 처지를 누군가한테 위로받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그렇다, 나에겐 금전적인 위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ㅋㅋㅋ).


이 면담은 12월 초에 이루어졌고, 2주 뒤 회사에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다. 아래 사진에도 보듯이 나는 활짝 웃고 있다. 요즘 내가 많이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이 날 파티에서 자주 들었다.

Screenshot 2025-06-01 100425.png 중간에 회색 후드티를 입고 두 손을 무릎에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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