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갈구한다.

by 소소한 특별함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다가도 문득,
농도 짙은 응원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온다.
내 나름의 소신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도
아주 가끔은 길을 잃고 휘청이기 마련이니까.

네가 하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결국에는 잘될거라고 말해주는 다정함과
언제까지고 곁에 우뚝 서서 응원해주겠다는
든든한 목소리의 형태를 목격하게 될 때면,

어디서부터 솟아났는지 모를 긍정적인 힘이
불끈불끈 차오르다 못해 넘쳐나기도 하는 거다.

- 하태완, 아무런 대가 없이 건네는 다정 -



네가 하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결국에는 잘될거라고 말해주는 다정함의 경험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주변에 좋은사람들이 많기에 언제나 친구를 포함한 이웃들에게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나는 가족들에게서 받는 위로를 너무도 간절히 원하기에 그들의 위로에 무게감이 없다.

언제나 빈자리인 가족에게서의 따스한 말, 격려, 위로가 나는 지금 너무도 절실히 필요하다.



생활가장이였던 엄마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언제나 일을 하고 계셨다.

둘째들의 공통점을 나라고 피해갈 수 없었지만 나는 언제나 '언니를 이겨먹으려는 애' '욕심많은 애'였고, 언니한테 '양보 하지 않는 애'였다.

동생임에도 언니에게 양보 해야하는 것을 먼저 배웠다.

하교 후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언니와 나 둘뿐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우리들에게 각자가 맡아야 하는 역할을 준 듯하다.

내가 숙제가 되어있지 않으면 동생을 잘 살피지 않았다고 언니가 혼났고, 집안이 어지럽혀져 있으면 내가 혼났다. 그렇게 집안일은 나의 몫으로 자리잡았고, 언니는 속된말로 손하나 까딱하지 않는 보기드믄 K-장녀로 성장했다. 나는 그 어떠한 것에도 싫다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할만큼 착한 딸이였다. 무엇이든 의당해야하는 일인 줄 알았다.


직장생활을 언니보다 먼저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뒹글뒹글 천하태평 삶을 유유자적하는 언니에게 빨리를 맡겨본 적도 걸레질과 밥먹은 설거지도 맡겨본 적 없다.

주말에 하루 온 종일 집안일을 하며 직장생활을 하였다.


언니는 그런 나에게 언제나 모진말을 하였고, 엄마는 그런 언니와 나 사이를 중재하지 않으셨다.

(이크~ 나 콩쥐였나...?!)

혼자 바둥바둥 살아내는 모습을 엄마는 잘했다. 대견하다 하지 않으셨다.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였기에.


지금 생각하면 나 또한 살아남기 위해 '착한 딸'을 택했고, 언니도 나름 살아남기 위해 택한 게으른 k-장녀가 아니였을까 싶다. 언니는 게으러도 괜찮았고, 나는 게으르면 안되는 엄마의 기준에 이쁨 받기 위해서 어쩔 수없이 택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때 뭐라도 괜찮아, 뭐든 잘될거야 너라면 할 수 있어 라는 가족의 지지가 있었다면 내 마음이 지금처럼 허전하지 않을 것 같다.

가족중심의 사회에서 가족들의 외면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은 타인의 시선보다 혹독하다.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하는 마음을 먹기까지 너무도 오랜시간 공들였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갈구한다.

네가 하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결국에는 잘될거라고 말해주는 다정함. 나의 상황이 어떻든 곁에서 언제나 응원해주겠다는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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