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하나로 평생을 살아온 엄마에게 나는 아픈 손가락을 넘어 당신 자존심을 건드린 그래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딸이 되었다. 당신도 살아가야 하는 버팀목이 있어야하기에 큰 딸의 눈치를 보며, 큰 딸의 비유를 맞추며 마지막 자존심을 큰딸에게 의지한체 지내고 계신다.
엄마의 바램대로 하나 뿐인 언니와의 관계도 끊고 산지 10년이 넘었다.
피해자는 없고 온통 가해자만 존재하기에 시간은 약이되지 못했다.
나는 왕래를 하지 않아도 어릴 때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이는 스스로 할머니를 찾아갔고, 아이에게는 엄마를 대신 할 유일한 존재로 있는 할머니이기에 그 관계는 각별하다. 그런 아이가 성년이 되어 입대를 앞두고 있다.
어쩌면 아이에겐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없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용기내어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서로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아이에게만 시선을 두고 밥을 먹는 공기는 써늘했다. 밖의 날씨는 화창했지만 내 시야에 비취는 모습들은 온통 회색빛이였다.
아이의 퇴소식날이 다가오면서 지난번 만남에서 참석하겠다던 엄마의 말이 떠올라 함께 가야 하는 건지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딸만 키웠던 엄마는 남의 집 아들들 면회를 즐거워하시며 동행을 서슴치 않았었다. 그럼에도 첫 손주의 퇴소식에 참석하실 수 없음에 아쉬움이 크지 않을까 싶어 동행을 결심했다. 그러나 미리부터 연락해 함께 가자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언니랑 함께 가고싶다고 했던 상황이라 서로가 약속을 할 시간의 여유를 주고 싶지 않았다. 아들의 퇴소식이지만 내가 객으로 전락되는 상황이 불보듯 뻔하기에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지며 어둑해지는 시간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내 핸드폰속에 엄마와의 통화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역시나....'
엄마는 내 전화를 받지않은지가 벌써 여러 해인데 난 그걸 잊고 있었다.
귀가가 늦어지는 아이가 염려되 전화를 걸었을때 받지 않으면 나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무응답은 엄마의 따가운 눈초리였고, 외면당하고 있다는 부정적 감정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 증거였다. 문열고 들어서는 아이에게 화를내고 있는 나는 차마 엄마와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던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의 모진 말은 내게 가슴 깊숙이 대못으로 박혀있다. 나 하나 마음 바꾼다고 달라질 가족관계는 더이상 아니다. 그럼에도 내일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연로하신 엄마를 원망으로 가득채워 보내드리고 싶지 않아 용기내어 글쓰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