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하는 문장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by 소소한 특별함

장점이 뭐예요?

음식은 어떤 걸 좋아해요?


라는 문장 앞에서 나는 주저한다.


'나'를 중심에 놓는 질문만큼 어려운 답변이 없다.

이번 주 글쓰기의 주제는 힘이 빠질 때마다 삶이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준 '나를 지탱하는 문장'에 관한 것이다.

아무런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이 나를 지탱했지?

엄마가 되고 나서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버틴 것이 명백한데 아이를 떼어놓고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 또한 문장과 비교할 수 없는 생명체이기에 더욱더 어렵다.


문득 중학교 때가 생각났다.

그때 학교에서는 뿌리 찾기라는 명목으로 00집안 00대손을 확인하는 과제가 있었고, 한 달에 한 번씩 편지 쓰기가 있었다.

그때 나의 편지쓰기 대상은 아버지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는 주님의 기도 첫 소절이다.

나는 지금도 이 대목에서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 기억에 없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주님을 찾기보다 정말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아버지를 떠올렸다.

편지의 첫 소절은 언제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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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교실에 모여있던 아이들이 나를 보자마자 흩어지는 모습에서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굳이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은 회피였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학급 동료가 쉬는 시간에 나를 조용히 불렀다.


'너 제네들하고 어울리지 않는 게 좋겠어'

'엉?'

'너 책상 서랍에 있는 편지 꺼내서 모두 돌려봤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나는 친구들에게 말한 적이 없다. 그러나 모두가 알게 된 것이다.

부끄러울 일은 아니었지만 부끄러웠다.

그때만 해도 호구조사를 손들고 하던 때라 나는 학기 초마다 죄인의 마음으로 시작해야 했다. 애써 감추고 있던 비밀이 그렇게 들통나고 말았다.


학급 동료의 도움으로 나를 보자마자 흩어졌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편지가 공개된 이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대상으로 편지 쓰기를 하지 않았다.

지금도 주님의 기도를 외울 때면 문득 나의 아버지를 연상하곤 한다.

여전히 지켜보고 계신가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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