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수업을 하며 '올해는 나다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정작 '나다움'이 뭔지를 잘 모르겠다.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발을 선물 받았다.
단화 느낌이지만 앞무늬가 체크로 되어있던 가죽소재였다.
운동화가 아닌 이상 새 신발을 신을 때면 언제나 발이 불편했지만 이 신발은 유독 심했다.
뒤꿈치가 까져 신발에 피자국이 났지만 나는 밴드를 붙이다던지, 저녁에 약을 바르는 것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가죽이니 길들여야 하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가볍게 여기며, 아침이 되면 뒤꿈치가 까졌다는 것을 잊은 채 다시 그 신발을 신고 나왔다.
언제나 양말 밖으로 묻은 피를 보며 친구들이 밴드를 권해주기도하였다.
어차피 피났는데 뭐,
어차피 다쳤는데 뭐,
어차피 일어난 일인데 뭐.
그게 나였다. 그때의 나는 나를 살피는 것이 어떤 건지 지금보다도 모를 때였다.
한참 자랄 때 엄마에게 자주 들었던 말 중에 '고집이 세다'는 말이 기억난다.
직장생활을 했던 엄마는 언제나 부재중이었고, 한 살 많은 언니는 내 눈에 철부지였다.
어떤 고민이나 걱정을 함께 할 어른이 내게는 없었다. 항상 혼자 결정했다. 나름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이라 그 후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엄마에게 비취는 그런 모습은 과정보다 결과 중심이다 보니 '고집이 세다'라고 통합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그때의 고집스러움은 습관처럼 지금도 남아있다.
몇 해전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려 책 읽기를 시도하였다. 책을 통해 안정을 찾으려 의도된 접근이었지만 그 성과는 지금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중이다.
문제의 답을 찾으려 읽기 시작한 책은 아니었지만 책 속에는 언제나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답이 담겨있었다.
이게 정답이야 하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내게 '고집 세다'는 주변에 어른이 없이 혼자 결정을 해야 했던 삶을 대하는 태도였고, '나다움'이란 의지하기보다 혼자 결정하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