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겨울에 꽁꽁 얼어붙어 칙칙했던 분위기와 사뭇 다른 빨간색을 띤 딸기가 유난히 돋보인다.
그러나 내게는 그리 좋지 않은 어떤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20년 전, 내 몸 안에 또 다른 생명이 찾아왔던 늦은 봄의 이야기다.
허약했던 나는 임신과 동시에 혼절하는 상황이 잦았다. 속수무책인 상황 속에서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건 보통 16주 이후에나 복용하는 철분제를 미리 처방해 주는 것뿐이었다.
먹는 것도 수월하지 않았던 그때 '딸기'가 먹고 싶었다.
정말 딸기가 먹고 싶었는지, 딸기의 그 빨간 빛깔로 기분을 달래고 싶었는지 지금에 와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미션을 받은 남편은 서둘러 나가는 듯 보였지만 너무도 빠르게 돌아왔다.
그러나 손에는 딸기가 없었다.
계절적으로 여름을 향해가고 있기에 딸기가 없을 때 이긴 하지만 그때도 하우스 딸기는 존재할 때였다. 더군다나 조금만 걸어 나가면 국내 매출 최고라고 하는 가장 큰 마트가 있었다. 그보다 가까이에는 '재래시장'이 있었지만 그의 마음이 급했는지 거기까지는 가지 않은 듯했다.
딸기 대신 해맑게 웃으며 '딸기우유'를 내미는데 어이가 없었다.
해맑게 웃는 그의 표정에는 '나 잘했지!!'가 너무도 강하게 묻어있었다.
당황스럽고 서운했다.
큰길의 대형마트까지 나서는 마음을 왜 내지 못했을까?
편의점 이곳저곳을 더 둘러볼 수는 없었던 걸까?
나 잘했지라는 마음을 담은 웃음을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흔히들 임신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단순히 호르몬의 변화로 감정기복이 심해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시기의 예민한 감각은 아주 작은 일조차 평생 지워지지 않는 서운함으로 남기 때문이다.
임신 중의 작은 소동은 평생을 두고 '우려먹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내게는 그날의 딸기우유가 그랬다. 내가 느낀 건 딸기를 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아니라, 나를 위해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서운함이었다.
그날 이후 딸기도 딸기우유도 한참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빠르게 돌아오며 건네는 차가운 대체품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려 돌아온 빈손의 미안함이 내게는 더 따뜻한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