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위험하지 않나?

20년 전의 나를 만나는 시간여행

by 소소한 특별함

요즘은 습관처럼 '알바' 사이트를 들여다본다.

5월까지 유보시켜 두었던 나의 계획들은 불쑥불쑥 불안함을 키운다.

혹시 좋은 기회를 놓칠까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려 오늘도 사이트에 입장했다. 그러던 중 알바 하나가 눈에 띄었다. '사람 앞에 서는 것이 서툴러 연습이 필요하니 들어주고 피드백'을 해달라는 것이다.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1시간 + 커피. 부드러움보다는 냉정함이 더 발달한 내가 하면 호된 연습이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 위험하지 않나 싶어 엄지로 화면을 쓸어 올리며 다음 장면으로 넘겼다.


자연스럽게 나는 20년 전 호주 유학 시절이 떠올랐다.

나의 유학 생활은 사람을 경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여권을 잃어버리고, 고가의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유학생들 사이에 퍼져있었다.

물건을 잃어버린다고 어딘가에 신고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언어의 부재, 타국민에 대한 배타적 일처리 등으로) 잃어버린 물건은 포기를 하고, 여권은 재발급받는 것으로 쓰린 마음을 달래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아주 잠깐 무늬만 면세점이었던 곳에서 알바를 했다. 무늬만 면세점이라 표현한 것은 한국인 관광객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예약 시에만 매장 오픈을 하는 속임수가 있는 곳이었다. 매장의 사장은 당연 한국사람이었다.

시간대비 지급액이 달라 사장에게 물으니, 식사시간 30분인데 40분을 사용했다던지,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해 탈의시간을 제외했다던지 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시간을 제외시켰다. 그 다음번에는 수첩에 꼼꼼히 적어둔 것을 보여주며 제대로 된 급여 지급을 요청했더니 한 마디 한다.

"한국 사람들 중에 급여 제대로 달라고 따진 사람 없었다고."

그 후 내가 알게 된 건 무비자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적은 값을 준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유학생을 상대로 등 처먹는 못된 사장들이라 한참 욕을 했지만 여하튼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기에 주장할 수 있었다. 사장은 나의 급여로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았다.

적어도 이곳에서 만큼은 사람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더 짙어졌다.


한국으로 돌아올 무렵쯤 너무도 어린 룸메이트가 왔다.

그냥 봐도 세상물정 모르는 대학생 정도로 보였지만 본인은 나름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다 왔다며 스스로를 전적으로 믿었다.

귀가가 불규칙적이고, 새벽에도 들어오는 모습들이 다소 의아했던 어느 날 내가 물었다.


'무슨 알바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구인광고 잡지를 보고 이것저것 한다고 한다. 1년 넘게 살면서 매주 보던 그 잡지에서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상한(?) 알바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얘기 들어주는'것이었다. 만나는 장소는 다르겠지만 조건은 같았다. n시간 + 음료.

그 대상자들은 당연 이성이었다.


너무 위험하지 않나?


위험하다는 선입견이 없었다면 내게도 그 공고가 보였을까. 룸메이트에게는 보이고 내게는 보이지 않았던 건, 어쩌면 내 안의 높은 불안감이 만든 사각지대였을 것이다. 20년이 흘렀어도 사람을 대하는 불안의 모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사람을 판단하는 나의 감각을 믿는다.

알바 사이트를 통해 20년 전의 나를 만나는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Gemini_Generated_Image_r6umvgr6umvgr6um.png AI 도구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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