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시작되는 숨바꼭질

너도 늙어봐라!

by 소소한 특별함

거울 앞에 설 때면 손가락이 바빠진다. 조명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꼭꼭 숨어있던 흰머리가 반짝이며 존재감을 드러낼 때, 묘한 희열마저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제법 늘어난 흰머리를 보며 이걸 뽑는 게 맞는지, 아니면 그대로 두어야 할지 망설인다. 여전히 뽑기를 강행하며 늙음의 상징처럼 보여지는 나의 나이를 부인하고 있다. 화장대 앞, 전신거울 앞 그리고 욕실까지. 온 집안의 거울 앞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한 번 시작된 수색은 쉽게 끝나기 않는다. 가르마를 따라 좌우로 살피는 횡단이 끝나면,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은 치켜뜬 채 머리칼을 들추며 뒤통수를 중점으로 수색이 시작된다. 이때는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결의에 차 부릅 뜬 눈의 피로감쯤은 감수해야 한다. 머리 위로 벌을 서듯 오랜 시간 올라가 있는 팔이 고통은 감당해야 한다. 잠시 휴전을 맺듯 손을 씻으려 들어간 욕실 거울 앞에 서면 휴전은 끝이다. 외출을 준비하며 마지막 점검처럼 매무새를 다듬다가도 수색은 이어진다.

흰머리를 뽑아내는 그 짧은 순간의 희열과, 깊숙이 박혀있던 뿌리가 보일 때면 이건 아니잖아! 하는 한숨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스친다.

엄마의 머리맡에 앉아 흰머리를 하나하나 찾아내던 때가 있었다. 용돈으로 회유를 하며 엄마는 주기적으로 흰머리 뽑기를 요청했다. 이제는 위치가 바뀌어 내가 중학생 아들에게 요청한다. 눈을 치켜뜨며 힘겹게 발견된 뒤통수의 한 가닥을 부탁했건만, 무심한 아들이 한 마디 한다.


나는 흰머리를 왜 뽑아!


그때 한 가닥의 흰머리를 뽑기 위해 다섯 가닥쯤 되는 검은 머리의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섬세하지 못한 아들의 손을 빌리지 않게 되었다. 지금껏 혼자만의 수색을 이어오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들의 전략을 높이 산다.


나에게 흰머리는 늙음을 확인시켜 주는 도구이다. 여기저기 신체의 기능이 쇠퇴해 가는 다른 감각들에 비해, 눈에 확연히 보이는 흰머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어쩌면 이건 흘러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은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거울 속에서 시간을 붙잡고 싶었겠지.


이제는 그 애틋하고 치열한 마음을 담아, 무심한 아들에게도 한마디를 해본다.


너도 늙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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