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엄마를 똑같이 닮아 있다

by 소소한 특별함

햇살에 건조가 잘 된 아이의 빨래를 걷으며 집에 없음을 실감한다.

아이의 첫 휴가에 나는 많은 기대를 했다.


모두가 흔하다 하는 달팽이 크림조차 손에 들려 있지 않음에 내 탓을 했다.

'내가 잘 못 키웠지...'


자라는 내내 정리되지 않는 방으로 오랜 시간의 실랑이가 며칠의 군대생활로 바뀌었을 거라 기대했다.

'제대 후에도 뭔가 달라질 거란 기대는 버려야겠다.'


모처럼 아이에게 밥을 차려준다는 기쁨은 3할에 불과했다. 7할은 언제나처럼 짜증이었다.


음식 하는데 오랜 시간을 들이는 것에 나는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음식의 묘미는 만드는 것에 온갖 정성을 쏟는 것에 반해 먹을 때는 젓가락만 들면 입으로 쏙 들어가는 간편함에 있다고들 한다. 그만큼 음식을 완성하기 위해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일 게다. 우리의 여러 종류의 '장'들이 오랜 숙성시간을 견뎌야만 깊은 맛을 내듯이 말이다.


나는 마늘을 직접 빤다던지 파를 다듬는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에 시간을 내지 않는다.

이런 봄날에 된장국에 들어가는 냉이는 향으로 구분하지 땅에서 뜯으라 하면 모두가 풀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주방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된 음식을 먹는데 15분가량으로 끝날 때면 꾹꾹 눌러왔던 화가 최고조에 달한다.


아이가 군대를 간 후 끼니때마다 혼자서 먹을 때 찌개를 끓이고, 음식을 만들면서 나는 뿌듯했다.

'혼자서도 잘 챙겨서 먹네 다행이다.' 하면서.

그런데 모처럼 '엄마'자리로 돌아와 아이를 위해 식사준비를 하는데 짜증 남에 스스로 놀랐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마지만 나는 아들에게 인정을 구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주방에 있었음을, 그것은 온전히 너를 위한 것임을....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니 엄마에게 받고 싶은 인정욕구였다.

딸로서 채워지지 못했던 어떤 것을 나는 아들에게 대신하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엄마의 짜증 섞인 설거지 모습에 나는 괜스레 겁을 내고 움츠러들었다.

돌아보면 그건 엄마가 엄마 자신에게 내는 짜증이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걸 알지 못했다.

그 시절 겁먹었던 나의 모습이 이토록 선명한데, 지금의 내가 그때의 엄마를 똑같이 닮아 있다.

KakaoTalk_20260320_233905445.jpg




작가의 이전글내가 내린 '허당미'의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