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사랑이 좋은 겁니다. 무의식의 사슬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눈부신 성장의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힘들 때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왜 그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그 사람이 자꾸만 건드리는 나의 아픈 부분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 상처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살펴보세요. -파리의 심리학 카페- 중에서
파리의 심리학 카페에서는 사랑은 억눌린 자아와 숨겨진 상처를 채워줄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처음엔 상대방이 모든 것을 채워줄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환상이 서서히 벗겨지고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오랜 상담 공부를 통해 저는 사랑이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상처와 욕구가 반영된 심리적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저는 저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비로소 제대로 된 사랑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갔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저 자신을 잘 몰랐습니다. 사랑의 조건은 상대가 저를 좋아해 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깨닫게 된 것은 제가 상대를 '이성'으로 보기보다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대신할 대상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환상은 제가 그리는 사랑의 형태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바랐던 사랑은 이상화된 아버지의 모습처럼 무한한 보호와 희생, 그리고 끝없는 따뜻함이었습니다.
그런 기대 속에서 시작된 사랑은 늘 부족하기만 하였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노력해도 제 마음속 공허함을 채울 수 없었고, 결국 쉽게 질려버리곤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제가 그토록 갈망했던 것은 현실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상화된 환상이었습니다.
"좋을 때다, 좋을 때야"라며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던 시절에도 저는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깨달았다면, 나를 좋아해 주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사랑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상임을 알았다면, 조금 더 나 자신을 내려놓고 현실적인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었겠지요.
사랑은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하는 과정입니다. 상대방을 통해 나의 상처와 결핍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치유하는 여정입니다. 이제는 압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상적인 환상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 속에서도 함께 성장하며 균형을 찾아가는 것임을 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아직도 모솔인 아들에게 사랑을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인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깨졌을 때의 슬픔은 얼마나 깊은지를 경험하길 바랍니다. 아프고 힘든 순간들을 견뎌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할 기회를 얻길 바랍니다. 엄마처럼 서툴고 부족했던 사랑에 머물지 않길 바라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