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으로 이사와 아이의 동선을 줄이기 위해 인근 학원 정보가 필요했다.
아이는 피아노를 계속 이어서 하고 싶어 했다. 아파트 단지이다 보니 교습소 형태의 학원을 원했지만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학원을 찾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이곳은 기존 살던 곳과 친구들과의 관계도 너무 달랐다.
물론 어릴 때부터 살던 곳이기에 우리 집 아이는 놀이터에서 또는 학원에서 어떤 구성으로 놀던 상관없이 누구 하고나 친구가 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이곳은 누구 하고나 친구가 될 수도 없었고, 누구나 친구가 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엄마가 마침 같은 단지라 아이들의 친구관계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나의 생각을 얘기했다. 그러나 그 엄마는 아이가 이곳에서 나고 자랐기에 그것이 특별히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엄마를 중심으로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렇게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에게 새 친구를 구성원에 넣으려면 엄마들끼리 동의를 받아야 했다. 남의 나라 얘기였고, 남의 동네 얘기로만 들리던 것들이 내게 현실이 되었다. 집에서 온전히 아이만을 돌보며 생활하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어떻게든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 엄마에게 우리 아이를 구성원으로 넣어달라 했지만 거절당했다.
단지 내 교습소 형태의 피아노 학원에 대해 물었을 때도 그는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을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1층에서 우연히 그 엄마와 마주쳤다. 아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이 4층이라 교재 전달하러 왔다고 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다닌 곳이라며, 그제야 '원장님이 너무 좋아~' 한마디를 덧붙인다.
시간이 흐르며 잊고 지냈던 이사 초기의 기억들이 그 순간 어이없을 만큼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꿈에 그리던 '같은 동 학원'을 바로 코앞에 두고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부리나케 달려가 상담을 받았지만, 원장님은 한 달 후 멀리 이사를 간다고 했다. 그 집 엄마가 왜 이제야 입을 뗐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도대체 왜 그래야만 했을까?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나는 그녀를 '자주 안 봐도 될 사람'으로 치부해 버렸고, 그 후 그녀의 말들은 더 이상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런 나의 무심한 태도 때문이었을까. 그 엄마의 언제나 웃음 섞인 목소리로 나를 향해 '특이해!'라는 말을 남발하곤 했다.
중학생이 되어 같은 반에서 두 아이가 만났지만 난 그들끼리 친하게 지내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며칠 전, 우연히 그 엄마와 다시 마주쳤다. 어느덧 두 아이 모두 성장해 군대를 가 있는 상황이었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며 앞으로는 자주 보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끝으로 헤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반가웠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이후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무엇 때문일까 곰곰이 되짚어보다 비로소 생각났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가. 그는 자기의 정보는 나누지 않으면서, 남의 정보는 살살 긁어내어 기어이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다시 만난 반가움 뒤에 가려진 익숙한 불편함. 그는 여전히 반가움과 경계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마주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