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 괜스레 기분을 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매일매일 미루는 것들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음을 알지만 애써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다.
아이가 휴가 때 가져온 복분자주로 인해 알콜릭 느낌이다.
복분자주와 트레비를 3:7 비율로 섞어 마시니 에이드 느낌으로 가볍게 마시기 좋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호주 시드니였다.
영국을 방불케 하는 시드니는 초보여행자에게는 감탄사를 절로 불러왔다. 낮에는 관광과 쇼핑을 하고 놀았지만, 모두가 일하러 나간 저녁시간은 낯섦과 어색함이 밀려오는 시간이었다.
마트를 가는 것도 혼자서는 겁이 났기에 박스채 챙겨 둔 맥주로 저녁을 대신했다.
호주에서 국민 맥주로 알려진 라거 계열 VB(Victoria Bitter)를 매일 1병씩 마셨다. 안주는 필요하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이 찌면 흔히 안주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 꼬박 한 달을 저녁에 안주도 없이 맥주만 마신 나는 얼굴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살이 올랐다. 맥주공주였던 그때는 저녁에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이상할 만큼 매일 찾았다. 난 그때 알콜릭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중에도 맥주로 저녁을 채우던 때가 또 있었다.
퇴근 후 아이가 잠든 후 1잔!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받는 그 한 잔을 포기할 수 없었다.
호주에서도 그랬듯 습관처럼 한 잔을 마셔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지켜보던 엄마는 정신 차리라고 한마디를 하셨다. (지극히 엄마 시선으로) 알코올중독자 같다면서...
그리고 지금.
나의 불안함을 알코올로 위로받으려 바보 같은 방법을 택하고 있다. 애써 일찍 잘 수 있다는 핑계를 만들면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복분자의 비율을 살짝 높여보지만 내게는 3:7의 비율이 딱 좋다.
마지막 1병을 남겨두고 있으니 이걸 다 마시고 나면 나는 내 손으로 알코올을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겨우 1잔으로 기분을 내며 일찍 잠을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