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이런 모습이었을까?

by 소소한 특별함

택배가 도착했다. 수신자는 아이 이름. 품목의 표시는 없지만 유리주의 표시가 있다.

며칠전 주문한 화장품이 도착했다 생각하고 의심없이 포장지를 뜯었다.

내것이 아니었다.


'아니 왜 아이는 본인의 택배를 집으로 보낼까??'


최근들어 업체로부터 체험단 요청이 늘었다. 모르는 업체는 검색을 통해 걸러내는 작업 거치고, 제품의 필요 유무를 가르며 답변을 선택한다. 그러나 어떤 걸 응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앰플' 포스팅의 요청에 응했나? 아닌가? 하던 참엔 도착한 아이 이름의 택배다.

쇼핑몰의 아디를 공유하고 있기에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 아이에게 보내며 상황 설명을 카톡으로 하였다.

아이는 박스를 뜯는 동영상이 필요했다며 어쩔 수 없다고 말을 하는데 나는 영 개운치않다.

그런데 궁금했다.


어떤 경우일 때 뜯는 동영상이 필요한거지?


핸드폰이 반납되기 직전의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물건의 하자를 위한 기록용이라고 한다.

집으로 택배를 보낼 경우 사전에 언급을 해달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어쩐지 이것이 처음이 아닌 느낌이다. 언젠가도 이와 똑같은 상황의 어렴풋한 기억이.


아이의 목소리에 짜증 담겨있는듯 하여 물었다.

"엄마가 뜯어서 짜증났어?"

"아니~"

"그런데 말투가 왜그래!"


나는 언제나 아이의 말투로 시비를 건다. 아이는 매번 아니라고 답변하지만 나는 짜증스럽게 느껴진다.

나의 문제겠지?

아이 또한 이런 경우 그냥 넘기는 경우가 없이 꼭 시비(?)를 건다. 마치 나의 잘못을 놓치지 않고 짚고 넘어가겠다는 듯이.

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이런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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