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항암일기

삼중음성 유방암 극복기

by 챙미

1. 그렇게 유방암에 걸리다.



나는, 40대중반의 워킹맘이다.

故노무현대통령의 정책으로, 2000년대 초반에 들어간 공공기관이 2010년 중반에 지방이전을 하고..

지방이전 하기 직전에 첫아이를, 하고 난 후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주중엔 울산에서 주말은 못다한 육아를..그렇게 쉬지 않고 20여년 넘게

살았다. 2014년에 이전을 하였으니(뱃속엔 둘째 아이가 있는채로..) 그리고 휴직 한번 없이 매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삶을 정신없이 살았다.

주중에도 바빴지만, 주말은 더 바빴다. 이동하는 차안에서 잠을 보충하고. 또 환경이 바뀌니 주중에는 아이들이 옆에 없어 불면증을 앓았고, 그걸 만회하려고 운동도 미친듯이. 음주도 미친듯이 했었다.

체력이 좋다고 자신했었어서..하루 이틀 안자도 괜찮다고 자신만만해했고

그걸 만회하려고 커피는 때려마셨다. 날밤을 새게 되면 새벽에 걍 회사로 가서 운동을 해버리고 그날 저녁에 곯아떨어진 날도 많았다. 검진을 해도 항상 HDL 수치가 높습니다. 운동을 많이한 결과입니다. 이정도 얘기만 있어서. 내가 암에 걸릴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결혼-출산하며 스트레스를 겪긴 했었다. 고시합격한 아들을 가진 시어머니의 유세와 간섭(툭하면 이혼시킨다 우리 아들 판사다. 그 뒤에 옷벗은 뒤론 변호사다. 로펌다닌다..)은 아이 둘을 낳으면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릴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왜 난 임신해서 그렇게 울었을까. 그당시엔 약했으니까)

스트레스 받으면 받는대로 푸는 법도 체득해서, 체력을 기반으로 많이도 싸돌아다녔다. 등산이 유행하면 등산을, 골프를, 테니스를, 요가를 다 했으니까. 그러면서 이런걸 즐길줄 아는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운동하고 나서 자기 직전에 술한잔하며 흥겨운 기분도 만끽했고.

그렇게 잘 살았왔다고 생각했다. 나름. 아이들은 커갔고. 가정생활도 그럭저럭 (사랑하나? 그건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혼도 귀찮아서 안하기로 생각) 유지했고, 가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좀 더 크게 느껴진 적도 많았으니까. 그러다 20년 넘게 한 직장생활에서도 위기는 있었다.

2024년 6월 아직도 기억나는 그날, 뜬금없이 윤석열 대통령이 대왕고래 시추 계획을 발표한 것을 보고 말이지. 나는 2023년부터 그 시추를 위한 계약을 준비했었는데, 진짜 오랜만에 하는 시추에 나는 처음해보는 프로젝트라 조용히 사고없이 실패하더라도(시추는 어차피 성공가능성이 낮았으니) 마무리를 잘하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를 해왔었더랬다. 배를 구하는 계약이 꽤 커서 게다가 시추하는 입장이 을인지라, 입찰에 들어올지도 미지수였고 배를 못구하면 관련 제반 다른 계약들도 다 소용없는 지라.(시추를 한번할때 관련 계약만 40-50건이다). 그래도 흥미로웠던 프로젝트고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다 열심이고 배울 점이 많아서 으쌰으쌰하며 준비를 했었다. 그 와중에 윤씨가 끼어들었고..그날 이후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몰려오는 요구자료에 기사대응. 위에서의 닥달에. 그저 사고없이 조용히 끝나기만 바랬었는데. 계약에 있어 발생한 모든 이슈에 추궁을 당하고 욕을 먹고. 방송을 보다 출근해서 업무를 하다 위에서 주는 핀잔에 눈물이 왈칵 난적도 많았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고. 2024년말 난 승진에서 누락했다. 승진할 타이밍에 생긴 온갖 사고. 책임 추궁. 승진에 누락해서 위로를 받는데 그무렵에 오만일이 다 발생해서 사실 그렇게 슬프진 않았다. 12월에 비상계엄을 보고, 2025년초 항공기 사고를 보았으니 그거보단 낫지 않은가. 울먹이는 나한테 신랑이 "그래도 비행기에서 죽는거보단 승진 누락이 낫자나"라고 위로같지 않은 위로를 건냈다.


그래도 억울했나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정은 커져서 2025년 상반기는 더 정신없이 보냈다.

누락시킨 사람들은 그걸 정당화해야하니 내 단점을 더 불을 키고 찾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한사람만 나를 미워한다 생각했는데, 조직화가 되니 인사발령을 정당화하기 위해선 나는 능력없는 사람이 되어야만 헀다. 물론 실패한 프로젝트를 한 사람도 되어야 했고.


정신과를 찾았고, 심리상담소도 찾았지만 잠이 안오는 것은 나아지지 않았다. 새벽 테니스를 시작했고, 점심에는 요가를 저녁시간엔 걷기를 해도 잠이 안왔다. 주말에 올라와서도 정신없이 지냈다. 그러던 중에 가슴에 멍울이 급격하게 커지는 것을 느꼈다.


3월에 멍울이 잡혔는데, 무시했다. 주중엔 울산에 있고 주말엔 올라오니 무슨 병원을 가야할지 어디를 가야할지도 몰랐다. 그냥 생리주기에 맞쳐서 시간이 지남 없어지겠지 생각하고 지냈던 것 같다. 오히려 더 정신없이 일을 벌렸고, 콘서트에 등산에 아이들 데리고 놀이공원에 다니느라 바빴다.

그러다 6월초가 되도 멍울이 안없어져서 엄마한테 털어놓았다. 엄마가 "미쳤나봐, 당장 병원가봐"라 헀고, 그날로 검색을 해서 아 이럴땐 유방외과를 가야하는구나 알았다.


울산에 내려와서 출근을 하고, 근처 유방외과에 전화를 해서 문의를 하니 바로 오라고 말을 해서, 그날 초음파를 했다. (6월9일) 크기가 3.5센치로 커서, 제거를 해야한다고 모양이 암은 아닐거 같긴 하나 그래도 모르니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결과는 긴급으로 요청해서 3일안에 나온다고 해서 나는 외출에서 복귀해서 그냥 아무렇지 않게 근무를 했다. 친한 직원이랑은 말은 하고 귀찮게 됬다고 생각만했었다. 맘모톰도 번거로운데 왜 이런일이 일어났지? 결국 스트레스에 내가 진 것인가 생각하고 걍 건강을 챙겨야겠다 생각만 했지...그때까지만 해도 암일 거라는 생각은 1도 안했으니까. 결과는 12일에 나왔는데 그 전날 회도 먹고 술도 마시고 했었다. 머 어차피 암이면 못마시자나? 생각하고 말이지...웃으면서 동료들한테 나 이거 제거하고 올게요 하고 초음파한 병원으로 갔었다.

1일 입원할거래서 가방에 짐을 싸고 그 담날 금요일인지라 올라가야지 생각에 가볍게 갔었다. 의사가 날보더니 차분하게 말을 한다. "생각보다 결과가 안좋아서요...악성이네요."

그뒤론 시간이 멈춰서 잘 기억이 안난다. 눈물도 안났으니까. 아 그럼 어쩌죠? 하고 듣는데 종합병원으로 가야한다고 예약을 잡으라고만 알려줘서 나와서 여기저기 검색을 했다. 예약하고 있는 동안 남편 친구들 동료들 동생한테 연락이 왔고 나 암이래 말하면서 걍 어이없어 했더 기억이 난다. 동생한테는 차마 엄마아빠한테는 말을 못하겠다 그러니 동생이 자기가 대신 말해준다고 하더라. 그러고 남편이랑 통화하다 눈물이 나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줄줄 울었다. 아직도 생각하면 눈물나는 그 순간.


조직검사 결과지는 영어로 되어 있었고 사진을 찍어 보낸 후론 난 예약을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동료들이 연락이 와서 그냥 밥부터 먹어요! 말에 네네, 이러고 약속장소로 갔다. 삼겹살 집에서 원래 하기로 했던 모임이 열렸고 분위기는 침울했다. 동료 생일파티 자리였는데 암이라는 소식에 주기적으로 침묵이 찾아왔고 그날 알았다. 아직도 그사람들한테는 고맙고 미안하다. 나도 어찌해야할지 몰랐으니까.

사람들이랑 있는데 딸아이가 연락이 왔다. 카톡으로 "엄마 암 아니지?" 하는데 아무런 답도 못하겠더라. 가족들도 내가 조직검사한건 알고 있었고 그날 시술도 하고 담날 집에 간다는 것까지 알고 있엇으니까.

그냥 치료 어찌 되는지 알아보고 말해야겠다 생각에 가만 있었는데, 친정엄마한테 듣고 딸이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아 벌써 암이 먼지 알정도로 컸구나 실감도 헀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이걸 다 봤으니 분위기가 좋을리가...


울산 숙소에 혼자 돌아와서는, 그날밤을 샜다. 조직검사지를 검색해서 돌리고, 그래도 동종계통인 수의사인 남동생이 누나 정신차려 누나 지금 핵등급도 높고 분화도도 높아서 빨리 치료를 받아야해란 말에 예약을 땡기는게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국립암센터는 7월 18일 초진이 가능하대서 예약을 해두고, 그 뒤로 가능한 병원을 다 검색을 했다. 신랑이 전화가 와서 그담날 이대목동 가능한 자리가 떴다고도 헀다. 아 그래 옮기자. 하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다음날 올라가는 기차표를 예매하고 그날밤은 꼬박 새웠다. 새벽에 걍 기차역으로 향하면서 가족들이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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