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와 혁명_예소연
제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나로서는 딸인 주인공이 아버지 암 병간호를 하며 느낀 생각들이 인상깊게 다가왔고, 구세대인 운동권(PD, NL이 나오고 ㅎ)과 요즘세대의 사고의 만남이 흥미로웠던 작품. 실제로 작가의 아버지가 2024년 6월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병원에 오는 대다수의 조합은 부모가 암이고, 자녀는 보호자로서 오는 조합인데
나는 지금 내가 암이고 보호자로서 엄마가 가고 있어(신랑이랑 번갈아) 본의아닌 불효를...저지르고 있다.
항상 시뮬레이션처럼 그려보는 보호자로서의 삶. 간호. 얼렁 낫고 건강해져서 훗날 부모님의 병간호를 제대로 하고 싶다. (그전에 안아프시게!! 물론!! 암같은거 안걸리게! 걸려도 빨리 낫게!!)
p.11
태수씨는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하다고.
그러면 나는 태수시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 복도를 빙글빙글 돌았다. 병원은 꼭 두 손바닥을 반듯이
펼쳐놓은 것처럼 정확히 대칭구조였다. ....태수씨와 나는 데칼콜마니 같은 그 병원 복도를 밤새도록 돌았다.
종종 가래 뱉는 소리도 들리고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병원에서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울었다.....
p.13
누가 뭐래도 우리는 투쟁을 해야한다. 자본의 배를 불리는 식으로는 사회가 올바르게 굴러가지 않는다. 나는 태수씨가 어떤 비밀조직의 회동에 연루되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무척 멋있게 느껴졌다. 어린 나이에도 태수씨의 일을 어떤 식으로든 지지해줄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노동이라든지 투쟁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무척 멋들어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p.16
다 살리자고 하는 일인데. 다 살리자고 하는 일인데도 엄마와 고모는 척을 졌다. 태수씨를 지독하게 사랑해서 서로를 끔찍하게 미워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태수씨가 뭐라고 우리는 그토록 태수씨를 사랑한단 말인가?
p.18
다 알면서도 참고 사는거야...나는 태수씨의 삶도 치열하면 치열했지 참고 견디는 방식으로 이어져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어쩌면 한 사람의 역사를 알면 그 사람을 쉬이 미워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P.20
결국 암에 걸린 것은 태수씨였다. 병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웠고 삶은 지독히도 내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아니, 내 삶을 단 한번이라도 손에 쥔 적이 있었던가. 삶은 언제나 나를 쥐고 흔들뿐이다.
(내가 이 메뉴를 만들기로 결심했던 구절..)
태수씨는 MRI 찍는 것을 포기했다. 커다란 통속에 들어가는 것이 꼭 숨통을 조이는 것만 같다고 했다. 아티반을 주입했는데도 통 속에서 고함을 지르고 몸부림을 쳐서 간호사 세명이 들러붙어 진정시켜야 했다. ...
P.21
나는 그런 태수씨의 질문에 대충 대답하며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오래도록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잘못한 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냥 적당히 돈 없고 적당히 뭘 모른채 살아왔을 뿐이다.
P.23.
우리 가족은 그렇게 속없이 살아왔어도, 기쁠 때 기뻐할 줄 알고 화낼 때 화낼줄도 알고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태수씨가 아픈 뒤로도 조금씩 기뻐했다. 우리는 태수씨가 아프고 나서 태수씨의 먹는 것과 싸는 것에 집중하고 다 함께 즐거워했다. ...개인의 모든 식생에 집중하게 되었고 작은 변화 하나에도 심장이 내려앉거나 자그만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
P.24
누구의 사랑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한 트럭의 미움 속에서 미미한 사랑을 발견하고도 그것이 전부락 말하는데. 더군다나 나는 태수씨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태수씨가 아프고 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P.28
"그냥 죽고싶은 마음과 절대 죽고싶지 않은 마음이 매일매일 속을 아프게 해. 그런데 더 무서운게 뭔지 알아?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온갖 것이 나를 다 살리는 방식으로 죽인다는거야. 나는 너희들이 걱정돼. 사는 것보다 죽는게 돈이 더 많이 들어서."
P.28
"엄마 인기 많았네""엄마도 NL이었거든""아빠는 PD였다며""그런데 어떻게 연애를 했어?"
(훗 우리는 반대임 ㅋㅋㅋ)
...나는 아직도 NL이 무엇이고 PD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태수씨와 엄마를 살아있게 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세상의 중심을 논하는 방식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똑딱핀을 만들며 그들은 무슨 도모를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나는 여태까지 도모해온 일들을 떠올리려고 노력하다가 포기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거창한 일은 생전 해본 적이 없었다...
P.31
차장님은 10년동안 같은 회사에 있어서 그런지 모든사람들은 다 회사사람들과 비교하게 됐는데, 어쨌든 다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나는 차장님이 그래서 좋았다. 요즘애들, 옛날 애들 가리지 않고 맞춰가는 그 유도리가 진짜 멋으로 느껴졌다. ...삶을 살아고자하는 뜻, 의지, 그런것들. 비록 미적지근할지언정, 중요한 건 분명히 그런게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차장님 평생 차장님으로 남아주시며 안돼요? 그러자 차장님이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럴것 같지?
(아 나같군..-_-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