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버틀러 「비폭력의 힘」| 독서건강노트 001
2024년 11월
겉보기엔 평화로워 보이는 세상도, 사실 평화롭지만은 않습니다.
혹시 수잔 콜린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헝거 게임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 이야기에서 가까운 미래의 미국은 파넴이라는 독재 국가로 변모합니다. 그곳에서 정치의 중심은 캐피톨이며, 시민들은 귀족처럼 특권을 누립니다. 캐피톨은 민중의 반란을 막기 위해 12개 지역에서 남녀 한 명씩, 총 24명의 젊은이를 뽑아 서로 싸우게 하는 "헝거 게임"을 개최하죠.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나토(NATO)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최근 북한에서 죄 없는 군인들이 파병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응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핵무기라는 "살상 무기의 공포"가 억제력으로 작용하여 일본 열도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적으론 핵무기가 "이미지"에 그치기를 바랄 뿐입니다. 실제로 버섯구름이 떠오르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그러기를 바라고, 그래서 대리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건 게임이 아닙니다. 실제로 목숨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국제 관계 문제를 개인적인 시각에서 다루면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직면한 이 "헝거 게임" 같은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윤리관과 도덕적 태도를 지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만약 전쟁이 우리의 문제로 다가왔을 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고 항의할 것인가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항의가 폭력적인 방식이라면, 우리는 결국 이분법적인 대립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고 "헝거 게임"은 계속될 것입니다.
주디스 버틀러는 비폭력을 주장할 때 종종 정치적 영역에서 회의적인 반응을 마주하게 된다고 합니다. 좌파 진영에서는 오직 폭력만이 사회적, 경제적 변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폭력이 그러한 변화를 위해 자유롭게 사용 가능한 전략 중 하나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폭력을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용어 자체가 논쟁거리가 되곤 합니다. 버틀러는 비폭력적 태도를 지키는 것이 인간관계와 사회 질서의 유지를 위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논의합니다. 그녀는 “환상”의 개념을 통해 우리가 타인을 규정하고 바라보는 방식이 어떤 때는 무의식적인 공격성을 내포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ジュディス・バトラー「非暴力の力」P.11 |주디스 버틀러 「비폭력의 힘」P.11
그리고 버틀러는 자기 방어와 폭력적인 태도를 유발하는 요인에 대해 논의합니다. 그녀는 “역사적·인종적 도식,” 예를 들어, 백인이 흑인을 규정하는 것처럼, 주체와 타자의 관계성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환상’이 일종의 코드화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인종 문제는 일본인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운 예일지도 모르지만, 남녀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연애 관계에서도 남성이 여성을, 여성이 남성을 규정하는 환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환상’은 사랑과 증오의 양면성을 지니며, 타인에 대한 무의식적인 욕망이나 공격성을 매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버틀러는 그 ‘환상’에 내재된 공격성을 넘어서는 길을 제시합니다. 세상을 보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환상’을 가지고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그럴 때, 버틀러의 글을 통해 스스로를 억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쟁의 위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필독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은 제가 일본에서 생활하며 일본어로 집필한 독서 소감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기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함께 실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작은 힘이 된다면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일요일 오후, 시애틀에서 시작된 ‘별다방 커피’에서 크리스마스 블렌드를 마시며 책을 끝까지 읽었다. 문득 떠오른 건 옛 연인에게 반했던 이유였다. 45도 각도로 햇살이 비치는 가운데 그녀가 손을 흔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책상 위로 비치는 햇살을 바라보며, 그때의 감정을 떠올렸다. 그냥 그렇다고.
2024년, 이탈리아 팔레르모의 어느 성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