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복무하는 사단의 신병교육대대. 내가 이곳에 오기 불과 몇 달 전, 이곳에선 수류탄 사고로 사망한 훈련병이 있었다. 선임들은 지금 까지도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때론 그때의 일을 후임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허나, 그 당신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절대로 그날의 일을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아니, 이 금기를 차마 꺼내지 못한다. 그날, 훈련병이 긴장을 과하게 한 탓이었을까. 안정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었을까. 애초에 이런 훈련자체가 시행되선 안됬던 걸까. 훈련병은 수류탄을 던지지 못하고, 손에 쥔 채로 몸을 웅크려버렸다. 이를 본 간부는 빠르게 손을 뻗어 훈련병의 손에서 수류탄을 빼앗으려 했다. 수류탄이 지래 겁을 먹은 걸까. 불완전 폭발은 그 둘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굉음과 함께, 훈련병은 흔적조차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게 마술쇼라면 제발 이제 쇼를 끝내달라고, 사라진 물건을 다시 내놓으라고 싹싹 빌어야겠지. 허나, 그 자리엔 오직 방탄조끼와 그 안의 몸통만이 남아, 한 때 인간이 이 자리에 있었다는 걸 증명한다. 이윽고 하늘에서 방탄핼맷이 떨어진다. 엄청난 굉음 뒤 믿을 수 없는 적막과 고요 속에서 방탄핼맷이 떨어지는 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저 멀리 사로에서 들리던 총성도 잠시 멈춰 귀를 기울인다. 수류탄교장에서 사격장까지 덮사면을 따라 붉은 페인트가 흘러내린다. 그날, 아니 그 이후 몇 시간 뒤 뉴스에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훈련병 1명 심정지, 간부 1명 부상.' 뉴스에서는 그 저리에서 즉사한 사람에 대하여 심정지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그 훈련병은 몸통만이, 오직 심장만이 남아 보낼 곳 없는 피를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을 터인데. 그에게 손을 뻗은 간부는 수술 이후 손에 반영구적인 장애를 얻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휴직 중인데, 종종 부대에 나와 복직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가 수술을 마치고 처음 부대에 와서 경례를 할 때, 펴지지 않고 웅크려있는, 잔뜩 위축되어 있는 그의 오른손을 보고, 전 대대장은 눈물을 흘렸다. 내가 본 적 없는 전 대대장은,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울었다. 오열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날의 대대장은 더 이상 지휘관이 아닌 전우였고, 그저 한 명의 인간이었겠지. 그때 복무 중이던 의무관 역시 아직까지 그날의 충격에 휴직을 이어가고 있다. 그날 우리 중대는 훈련병이 없는 공반기였다. 창 밖에선 한 번도 울린 적 없는 엠뷸런스의 사이렌소리가 들려왔고 본적 없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선임들은 노래를 틀고 작업을 하려 했는데, 간부 한 명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당장 노래 끄라고. 그리고 우리는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다 막사 내로 들어가라는 명을 받았다. 아무도 나오지 마라. 그게 우리가 수행해야 할 유일한 명령이었다. 그 이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그 옆 사격장에 있던 조교들도 덮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는 피를, 멈출 생각을 안 하던 엄청난 양의 피를 보고 말았기에 정신과 치료가 필요했다. 그 장면을 본 선임들이 아직도 나와 같이 생활 중이다. 그 사고가 있던 중대에게 수류탄이란 단어는 금기어다. 지금까지도 그들에게 수류탄이란 단아를 꺼내면 그들은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가슴안쪽을 쿡쿡 찌를 게다. 나는 그를 본 적이 없다. 나는 그와 다른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고 있다. 나는 아직도 수류탄교장에 올라갈 때면, 그가 있던 호 안에 설 때면, 조금 차분하고 슬픈 눈으로 잠시 서서 그 자리를 바라보곤 한다. 그 자리의 모두에게 잠시 묵념하고 애도를 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