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다

by zero square

나는 그를 만난다. 내 시야에 그의 실루엣이 들어오는 순간,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들어오는 순간, 혹은 그의 샴푸냄새가 한순간이라도 내 코에 스치는 순간, 나는 그를 만날 거다. 그를 만나지 못해도 좋다. 소복이 쌓인 눈길에 찍힌 그의 발자국이라도, 오래된 노래방 벽면에 유성매직으로 써진 그의 이름만 본다 해도 좋을 거다. 그럼 그 발자국 위에 다시 내 발을 찍어 누르며 나는 따라 걸을 거다. 두 마디는 족히 남을 정도의 큰 발자국을 따라 나의 계절에 맞지 않는 운동화자국을 겹겹이 쌓으며 나는 나아갈 거다. 그렇게 걷다 보면 그 끝에 있는 건 너다. 너의 신발이다. 작아서 안 들어가느니 좀 크게 사서 신발끈을 꽉 조이겠다던 너의 구두가 있을 거다. 오래됐지만 꼭 특별한 날에만 신었던, 주름보다도 먼지가 더 많이 쌓이던 그 구두가 있을 거다. 밑창에는 물큰하게 녹은 눈발이 진흙과 섞여 바닥을 적시고 있을 거다. 그럼 나는 끝나버린 발자국 앞에, 너의 구두 앞에 서서 한참 망설인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어찌할 줄을 모른다. 곳 울 것 같은 사슴눈을 하고 네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차라리 발자국이 끝나지 않았다면, 추운 겨울길을 끝없이 따라 걸었다면, 아무도 없는 곳까지, 남극점 끝까지 나 홀로 걸을 수 있다면 좋았으련만. 너의 신발은 어느 주택가의 현관에 놓여있을 거다. 노부부가 사는지 유난히 보일러가 강한 그 집에서 내 귀는 뜨겁게 달궈질 거다. 그럼 퉁퉁 부은 내 손의 김각이 얼얼하게 돌아오고, 너보다 먼저 노부부가 나와 인사하겠지. 내가 누군지보다 밥은 먹었는지 먼저 물어보겠지. 갓 쩌낸 호박고구마를 쥐어주겠지. 나는 너무 뜨거워 어쩔 줄을 모르겠지. 그만 물집이 잡힐지도 모르겠다. 이제 잠시뒤면 나는 그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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