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희극이구나
나는 시댁과 아주 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은후 왕래가 없이 살고 있다. 아마 아이돌때 일이니 나는 호르몬의 노예였고 그들은 나의 행동이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였다.
우리 남편은 평화 주의자이다.
그런 상황에서 남편은 단절을 선언했다. 그가 부모를 만나지 않는건 아니지만 나는 그들과 도려내 졌다. 분명한건 편하지 않다. 명절이 그리고 일년의 행사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왕래가 없다는건 추억이 없기에 나에게 정말 남같다. 둘째가 태어나고도 모른척하는 시댁을 남편은 "옆집 아줌마가 애 낳으면 너는 챙겨주냐?" 이말로 정리를 끝냈다. 이런 남편이랑 살기에 나도 점점 회피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첫째가 12살이니 10년 넘은 단절이다.
이런걸 쓰며 푸념을 하려는건 아니지만 나의 감정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첫아이가 우리 친정엄마의 말에 따르면 아주 "유별난 아이" 였다.
아마 나도 우리 엄마도 처음 맞는 아이가 어려웠으리라. 그리고 기질적으로 자기 주장이 날때 부터 강했던것인지도 모르겠다.
딸을 키우며 남편이랑 이야기 한다. 우리가 참 어른이 된다고.
딸의 문제는 때때로 나를 폭풍으로 몰아갔다. 남편과 나는 아이문제에는 회피라는것을 할수 없이 폭풍의 눈에 서서 맞아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등교 거부가 있었고, 학교 폭력이있었고, 선생님의 전화, 아이의 힘듬, 그리고 왕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그런말도 했었다
" 사거리에서 옷벗고 춤춰서 이문제가 풀린다면 나는 저 사거리에 나체로 춤을 추겠다고"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서 생각하면
아이의 성장이 대견해진다.
그 시간이 생각나기 보다
우리 아이가 자란게 보인다.
학교를 잘가고, 손을 들어서 뭔가를 참여하고, 아직 단짝이나 친구 문제는 있지만 노력하는 아이가 보인다.
참 이상하다 힘든일은 어디가고 아이의 발전이 기억된다.
분명 하나하나 쉽지 않은 일들이 있고 앞으로도 있을껄 알지만 희망적인 생각도 든다. 분명 아이는 잘해내리라.
순간 정말 쉼표같은 포인트에서 내가 숨을 고르며 아마도 나는 그 순간을 남기는 모양이다.
참 고마운 딸이고 고마운 순간들이다.